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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어지는 '백신 자급률 70%'

28종 중 국산화 성공 15종뿐

결핵·소아마비는 전량 수입

필수백신 불구 해마다 공급대란

2년내 5종 추가개발 필요한데

대다수가 임상 초기단계 그쳐

판매량 보장 등 전향적 정책 필요

0435A18 국산 백신 자급률 추이(35판)




#. 지난해 9월 아이를 출산한 최지민(32)씨는 한동안 신생아 결핵(BCG) 백신을 구하지 못해 밤잠을 이루지 못했다. 생후 4주 이내에 접종해야 하는 피내용(주사형) 결핵 백신은 정부의 무료 예방접종 대상이지만 일선 병원에서 품귀 현상이 빚어졌기 때문이다. 전량 수입에 의존해온 일본과 덴마크 제약사의 현지 공장에 생산 차질이 생긴 게 결정적인 이유였다. 산모들의 불만이 잇따르자 정부는 상대적으로 고가인 경피용(도장형) 결핵 백신에 대해 한시적으로 무료 접종을 시행했고 올 6월 중순에야 덴마크에서 피내용 결핵 백신을 수입해 공급을 재개했다.

정부가 오는 2020년을 목표로 내건 ‘국산 백신 자급률 70%’가 후속 백신의 임상시험과 연구개발이 더디게 진행되면서 사실상 암초에 걸렸다. 정부 방침에 따라 국내 제약사들은 백신 국산화와 글로벌 진출을 위해 사활을 걸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무리한 목표를 내건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3일 업계에 따르면 주요 백신 28종 중 국산화에 성공한 백신은 현재 15종이다. 지난해 SK바이오사이언스(옛 SK케미칼 백신사업부)가 대상포진 백신을 세계 두 번째로 상용화했고 올 1월 GC녹십자가 성인용 파상풍·디프테리아(Td) 백신 개발에 성공했다. 백신 자급률은 올 들어 역대 최대인 53.5%로 올라섰다.

하지만 대표적 필수 백신으로 꼽히는 결핵 백신과 소아마비 백신은 전량 수입하는 탓에 해마다 공급 대란을 빚고 있다. 지난해 소아마비 백신이 전 세계적으로 공급 부족을 빚자 정부는 만 4~6세가 대상인 추가접종 기간을 두 차례나 연기했다. 당시에도 외국계 제약사가 기존에 생산하던 단독백신의 공정을 혼합백신으로 변경한 것이 원인이었다.

현재까지 인류가 백신 개발에 성공한 질병은 모두 28종이다. 우리 정부는 세계보건기구(WHO) 기준에 따라 이를 필수 예방접종(19종), 기타 예방접종(5종), 대테러·대유행(4종)으로 구분하고 있다. 하지만 언제라도 확산할 수 있어 생명에 위협을 가할 가능성이 높은 필수 예방접종 백신은 19종 중 9종만 국산화에 성공했고 나머지 10종은 외국 제약사가 생산하는 백신을 전량 수입하고 있다.



정형준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정책국장은 “백신 자급률은 국민의 건강권과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에 전적으로 민간기업에 개발을 맡기는 대신 정부 차원의 실효성 있는 정책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국산 백신 자급률을 높이려면 국내 제약사가 조기에 백신 개발에 성공할 수 있도록 전폭적인 지원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말했다.

백신 자급률 70%를 달성하겠다는 목표는 지난 2000~2001년 발생한 이른바 ‘홍역 대유행’을 기점으로 본격화됐다. 당시 2년에 걸쳐 전국적으로 5만5,000여명의 홍역 환자가 신고됐고 7명이 목숨을 잃었다. 역학조사 결과 백신 접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드러나자 정부는 취학기 아동을 대상으로 홍역 백신 접종을 일제 실시했고 백신 자급률을 획기적으로 높이기 위한 대책 마련에 착수했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정부의 목표대로 오는 2020년 백신 자급률 70%를 넘어서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고 입을 모은다. 자급률 70%를 달성하려면 앞으로 2년 내 5종의 백신을 추가로 개발해야 하는데 대다수가 임상시험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어서다. 백신은 살아 있는 균주를 원료로 하는 바이오의약품의 일종이어서 적지 않은 비용과 시간이 소요된다는 점을 정부가 간과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백신 대란이 해마다 되풀이되자 정부는 지난달 처음으로 ‘필수 예방접종 백신 수급 안정화 대책’을 마련했다. 국가 차원에서 선제적으로 백신 소요량을 산정해 3~5년에 걸쳐 외산 백신을 장기계약 방식으로 구매하고 공급 부족이 예상되는 백신은 3~6개월분을 미리 구입해 비축하겠다는 게 골자다. 하지만 관련 예산이 10억여원에 불과해 여전히 근시안적인 정책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국내 제약업계의 한 관계자는 “국산 백신의 기술력은 세계 최고 수준으로 올라섰지만 글로벌 백신 시장은 대상포진 백신 같이 생명에 지장을 주지 않는 질환을 예방하는 ‘프리미엄 백신’으로 이동하는 추세”라며 “국내 기업이 백신 시장에서 화이자·사노피·GSK 같은 글로벌 제약사와 경쟁하려면 정부가 단순히 임상시험 비용을 지원하는 것에서 나아가 최소 판매량을 보장하는 등 전향적인 정책을 도입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이지성기자 engin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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