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미국산 원유 수입 전면중단 등 미국의 주요 수출품인 에너지 부문으로까지 ‘탈(脫)미국’ 움직임을 본격화한 것은 자국 경제의 타격을 감수하고라도 미중 무역전쟁에서 쉽게 물러서지 않겠다는 입장을 드러낸 것으로 풀이된다. 중국은 원유 수입 중단과 대두 수입 다각화 등으로 무역전쟁에서 항전 의지를 절대 굽히지 않겠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지난 4년 동안 미국의 제재에 시달려온 러시아 역시 달러화 거래 의존에서 벗어날 방침을 검토하고 나섰다. 미국의 일방적 관세 부과와 경제제재 압박으로 동병상련을 앓는 중국과 러시아가 군사동맹을 강화하는 한편 금융 분야에서 협력 가능성을 모색하면서 탈미 공조체제를 구축하려는 분위기다.
로이터통신은 3일(현지시간) 중국 국유기업인 자오상쥐에너지운수(CMES)의 셰춘린 대표가 홍콩 글로벌해운포럼 연례회의에 참석해 “무역전쟁의 영향으로 미국산 원유와 대두 수입이 중단됐다”면서 “대두의 경우 남미 등에서 대체수입처를 물색하고 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통신에 따르면 미국산 원유의 중국 운송이 지난달부터 중단된 상태다.
지난달 발표한 3차 대미 보복관세 목록에 액화천연가스(LNG)를 포함한 중국이 원유 수입마저 전면 중단한 것은 미국이 중시하는 에너지 분야에서 탈미국을 가속화해 미 경제에 타격을 주겠다는 의도를 드러낸 것으로 분석된다. 앞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직접 나서 ‘경제자립’을 선언했듯이 중국 경제에서 미국 의존도를 최대한 줄이려는 움직임의 일환으로도 볼 수 있다.
중국의 대미 직접투자 흐름도 감소세가 뚜렷하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올 들어 9월까지 중국 자본의 미국 기업 인수합병(M&A) 규모는 26억7,000만달러로 지난해(59억달러) 대비 55% 줄었고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던 2016년(344억달러)에 비해서는 92%나 감소했다. 중국해양석유총공사(CNOOC)는 미국 멕시코만에 있는 석유 자산 일부를 매각하는 방안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중국의 탈미국 행보에 러시아도 보조를 맞추기 시작했다. 이날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러시아는 최근 주요 산업의 달러화 거래 의존도를 줄이는 탈달러화 계획을 가동했다. 러시아 국영 VTB은행의 안드레이 코스틴 총재는 최근 공개석상에서 주요 은행과 기업들이 달러화 대신 다른 통화로 결제할 것을 제안했으며 이에 러시아 재무부와 중앙은행 등이 적극적인 지지를 표명했다고 FT는 전했다.
원자재와 에너지 수출 의존도가 큰 러시아는 자국의 힘만으로는 탈달러화 정책 성공을 자신하기 힘들다. 원자재와 에너지 수출 시장에서 달러화 거래가 압도적이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이에 따라 중국을 비롯해 터키 등 미국과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 국가들과 공조해 탈달러화 계획에 속도를 내겠다는 생각이다.
위안화 국제화에 무게를 두고 있는 중국은 러시아의 탈달러 결제 움직임을 내심 환영하는 모습이다. 미국 의존도가 컸던 대두 등 주요 농산품 수입처 다각화에서도 러시아와의 협력이 가시화하고 있다. SCMP는 러시아의 극동투자수출지원청이 대두 경작농지 등에 대한 중국 투자 유치에 나서고 있다고 보도했다.
한편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중국 정부가 이달 중 30억 달러 규모의 달러 표시 국채를 발행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중국의 달러채 발행은 2004년 이후 세 번째로, 올해 들어서만 두 번째 발행이 된다. WSJ은 “미국과의 무역전쟁 중에 달러화 국채 발행에 나선 것은 미국의 경제 압박에도 불구하고 중국 경제가 중장기적으로 안정적인 흐름을 유지할 수 있다는 자심감을 글로벌 시장에 드러내기 위한 의도”라고 분석했다. /베이징=홍병문특파원 hb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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