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치스베오(Cicisbeo)’. 이탈리아어로 18세기에 귀부인을 보호하는 기사 혹은 멋진 남자로 쓰이던 것이 영어와 독일어, 스페인어 등에서 ‘남편 있는 여자의 공공연한 애인’으로 자리 잡았다. 오늘날에는 멋쟁이 호색한 등으로 사용되는 ‘치치스베오’의 진짜 의미를 찾아 역사학자인 저자가 당시의 사료와 문학작품을 샅샅이 뒤졌다.
18세기 이탈리아의 풍자시 ‘하루’에 따르면 미혼인 청년 귀족 치치스베오는 전날 밤 파티 후 늦잠에서 깨어나 유명한 이발사에게 관리받고 공들여 몸치장을 한 후 귀부인의 집으로 향한다. “그녀의 옆에 앉아 점심 식사를 한 후 무관심한 남편을 앞에 두고 자연스러운 분위기 속에서 공개적으로 그녀에게 추파를 던진다.” 공식적으로 허락된 삼각관계 유발자인 치치스베오는 당시 이탈리아의 귀족문화와 계몽주의, 유산 상속과 가족 윤리, 성 풍속 등이 복합적으로 만들어 낸 존재다. 치치스베오가 여성들을 억압하던 가부장적 가족제도 안에서 자유를 선사한 동시에 가정 바깥의 영역에서는 여성의 부정(不貞)을 통제하는 감시자였던 것. 이후 루소의 사상에 기초한 새로운 가족 윤리가 등장하고 프랑스 혁명기 이후 금욕적 분위기가 사교파티를 악덕으로 몰아가면서 치치스베오는 사라졌다. 그의 궤적을 짚어갈수록 여성, 18세기에 비해 크게 나아진 것 없는 여성의 삶이 더 잘 보이게 된다.2만2,000원.
/조상인기자 ccs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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