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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ience&Market] 4차 산업혁명과 '엄마기계'

박창규 건국대 화학공학부 교수

엄마가 아이들 옷 만들어주듯

니즈에 충실한 각종 기술 등장

수요자 '주권 회복 시대' 발맞춰

소비 콘텍스트 파악에 집중해야





4차 산업혁명의 바람이 거세다. 그동안 우리는 우수한 노동력과 근면과 성실을 바탕으로 세상의 주인공들이 원하는 것들을 만들어주면서 엄청난 경제성장을 이뤄냈다. 그런데 최근 중국이나 동남아 국가가 우리가 차지했던 이 세상의 조력자 역할을 대신하면서 우리 경제성장의 원동력이 설자리를 잃고 있다. 더 이상 우리의 위치를 유지하기에는 역부족으로 보인다. 그렇기에 이 세상의 주인공으로 변화하는 혁명이 필요하다. 이런 측면에서 4차 산업혁명은 천운이다.

문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4차 산업혁명을 잘 모른다는 것이다. 어떤 이는 4차 산업혁명을 인공지능이나 로봇, 가상물리시스템, 빅데이터의 시대, 혹은 사물인터넷이나 블록체인 같은 초연결 시대라고 한다. 심지어 4차 산업혁명과 4차 산업을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4차 산업혁명은 그런 기술들이 아니다. 그런 기술들은 3차 산업혁명 때에도 대부분 다 있던 기술들이다.

옷을 예로 들어 4차 산업혁명을 정의해보겠다. 산업혁명 이전에는 ‘엄마’가 자녀들의 콘텍스트(맥락·상황·의도 등)를 파악해 옷을 만들어줬다. 1차 산업혁명으로 ‘기계’가 옷을 만들었다. 이때부터 유럽을 중심으로 본격적인 산업화가 일어났다. 수요자가 직접 하던 일들은 대부분 기계를 사용하는 공급자로 넘어갔다. 수요자는 엄청나게 편해지기 시작했지만 세상은 공급자 중심으로 바뀌었다. 다양성은 상실됐고 수요자를 특정하지 않은 보편타당한 대중적인 가치들이 추구되기 시작했다. 2차 산업혁명은 전기에너지가 공급되는 ‘전기기계’가 옷을 만들어주는 시대이다. 이때부터 미국을 중심으로 본격적인 대량생산이 일어났다. 기업을 중심으로 한 공급자들은 라디오나 TV 등을 이용해 브랜드와 마케팅 등으로 무장하며 본격적으로 세상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3차 산업혁명은 컴퓨터나 인터넷이 연결된 ‘자동화 기계’ 혹은 ‘정보화 기계’가 옷을 만들어주었다. 세상은 더욱 빨라지고 시공간을 초월한 제품과 서비스가 넘쳐나기 시작했다. 매 산업혁명마다 기득권을 가진 자들을 밀어내고 새로운 주인을 탄생시켰다. 여기까지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다 안다.



4차 산업혁명은 ‘엄마기계’가 옷을 만들어주는 시대이다. 수요자를 특정하는 사람이었던 엄마가 각종 첨단 기술이 적용된 장치나 시스템, 소프트웨어들로 재무장해 옷을 만들어준다. 세 차례에 걸친 산업혁명으로 견고하게 구축됐던 공급자가 주도하는 세상이 혁명적으로 다시 수요자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다. 수요자의 콘텍스트가 다시 고려되고 옷을 직접 디자인하고 만들었던 기능이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불특정한 대중을 만족시키기 위해 일반화하고 객관화했으나 이제는 특정한 수요자를 만족시키기 위한 개인화되고 주관적이고 상대적인 가치의 추구로 변화하고 있다.

그래서 4차 산업혁명을 ‘수요자 주권의 회복 시대’라고도 한다. ‘맞춤’ ‘분권화’ ‘추천’ ‘공유’ 등 수요자 중심으로의 변화는 비단 공학이나 산업에만 국한되는 현상이 아니다. 수요자들은 이미 문화·예술, 미디어, 교육, 인문·사회, 경제, 제도·법률, 정책 등 사회 전반에 능동적으로 참여한다. 사회 곳곳에서 혁명적 변화들이 일어나고 있다.

우리는 이제 다양한 수요자, 바로 콘텍스트가 고려되는 세상을 주도해야 한다. 4차 산업혁명 시대, 이제는 불특정 다수를 위해 그저 좋은 것, 그저 훌륭한 것을 미리 정해 만들어놓고 따라오라는 식은 경쟁력이 없다. 인류는 공급자 중심의 시대에 태어나서 수요자가 주인인 시대를 살아본 이가 없다. 그래서 이 길을 걷는 것이 너무도 어렵다. 대항해 시대처럼, 디지털 생태계 창조자들처럼, 존재하지 않는 수요자 중심의 세계를 향해 나아가야 우리에게 기회가 있다. 우리는 근면과 성실로 성장했던 조력자로서 지위를 과감히 내어주고 용기·비전·결단·과감·도전 등으로 무장한 고구려 광개토대왕의 DNA를 회복해야 한다. 이것이 우리의 후손들을 위해 우리가 할 일이다. 더 이상 주저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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