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개월 가까이 공석이던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CIO)에 내부 출신인 안효준 BNK금융지주 총괄운용본부장(CIO)가 선임됐다. 투자은행(IB) 업계와 정치권에서 마지막까지 유력한 후보로 거론되던 주진형 전 한화증권 사장은 국민연금 노동조합, 사무금융노조의 반대와 병역 문제에 발목이 잡혀 낙마했다.
8일 IB 업계에 따르면 안 총괄운용본부장(사진)은 이날 오후 임명장을 받고 국민연금 CIO로 선임됐다. 안 신임 CIO는 국내외 자산운용 경험이 풍부한 운용 전문가다. 서울증권 해외운용팀장, 대우증권 홍콩지점 주식운용팀장, 국민연금 해외증권팀장·주식운용실장 등을 거쳤다. 이로써 지난해 7월 최순실 사태 등의 여파로 강면욱 전 CIO의 자진 사퇴 이후 1년 3개월 동안 비어 있던 국민연금 CIO 자리는 내부 출신이 맡게 됐다. 임기는 2년이며 성과에 따라 추가로 1년까지 연임할 수 있다.
국민연금은 지난 2월 공모절차를 개시했으나 곽태선 전 베어링자산운용 대표 등 3명의 최종 후보자 가운데 적격자가 없다는 이유로 지난 6월 재공모를 결정했다. CIO 공모에는 30명이 지원했고 총 13명의 면접을 거쳐 안 총괄운용본부장 등 5명이 최종 후보에 올랐다. 국민연금은 이들을 대상으로 인사검증을 해왔다. 가장 유력하게 거론되던 주 전 사장은 운용경험이 없는데다 친정부 인사로 거론되면서 국민연금 안팎의 강한 반대에 부딪혔다. 병역 문제도 걸림돌이 된 것으로 알려졌다. 곽 전 대표도 병역이 문제였다.
국민연금 CIO 인선은 끝났지만 643조원에 달하는 국민 노후자금을 운용하는 기금운용본부를 둘러싼 과제는 산적해 있다. 전문가들은 신임 CIO가 수익률과 독립성 양대 부문 모두에서 상처가 난 조직을 빠르게 추슬러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우선 땅에 떨어진 수익률이다. 국민연금은 지난해 말에 비해 9조원 가까운 돈을 날렸다. 국민연금에 따르면 7월 말까지 국내주식 수익률은 -6.01%로 한 달 전인 6월 말(-5.30%)보다 0.71%포인트 더 하락했다. 같은 기간 수익률 하락에 따른 국민연금 보유주식 평가액은 123조 1,000억원으로 이는 지난해 말(131조5,000억원)보다 8조 4,000억원 가량 줄어든 것이다. 국민연금의 국내 주식 수익률 하락이 시장 평균보다 더 나빴던 만큼 새로운 포트폴리오를 짜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전직 국민연금의 한 관계자는 “주식투자 비중이 대형주 위주로 되어 있는데다 대체투자도 소극적이었던 것이 사실”이라며 “신임 본부장은 기존 투자를 점검하고 신규 투자 여부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금운용본부의 독립성 문제는 가장 큰 숙제다. CIO 선임 과정에서 청와대 등 정치권의 개입설이 불거졌던데다 새로 도입된 스튜어드쉽 코드의 투명한 적용이 어떻게 이뤄질지에 시장의 관심이 크다. 5명의 최종 후보 중 안 총괄운용본부장이 선택된 것도 정치적 논란에 따른 부담감이 컸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안 총괄운용본부장은 다양한 해외투자 경험과 국민연금에서 3년간 주식투자를 경험한 내부출신이다. 전직 국민연금본부장은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은 투자의 수익성과 안정성을 도모하는 게 가장 큰 임무”라면서 “후보 중에 그래도 대규모로, 해외 투자에 대해 고민해 본 사람은 안 본부장일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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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튜어드쉽코드 역시 도입만 결정됐지 구체적으로 투자 과정에서 누가 지휘하고 어떻게 적용할지는 정해지지 않았다. 안 본부장이 출근하면 가장 먼저 챙겨야 할 과제다. 국민연금 관계자는 “큰 틀에서 사회적 책임을 지키는 기업에 투자하라는 원칙이 있지만 구체적인 기준이 뭔지, 사회적 책임을 지키는 기업에 투자했다가 수익률이 떨어지면 문제 삼지 않는 건지 등 스튜어드십 코드가 활성화 되려면 결정해야 할 사안이 많다”고 말했다.
복지부가 지난 5일 발표한 기금운용위 개편안도 논란이 크다. 복지부는 전문성을 높인다며 운용위원을 학자 위주로 구성하겠다고 했지만 기존에 사용자·근로자 등을 대표한 위원들이 대표성이 떨어진다며 크게 반발했기 때문이다. 기금운용위 자체의 권한이 높아지고 스튜어드십 코드를 구체적으로 실행할 기금운용위 하위 기관인 수탁자책임위의 위상이 강화된다면 기금운용본부장의 역할은 축소될 수 밖에 없다는 점도 고민거리다.
/임세원·김상훈기자 why@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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