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는 700여년의 유구한 역사에 비해 전하는 문화유산이 적은 편이고 특히 건축 유적은 극히 드물다. 그 와중에 백제 시대의 건축을 유추할 수 있는 귀중한 문화재가 있으니 바로 충남 부여군 내 정림사터에 남아 있는 국보 제9호 정림사지 오층석탑이다. 목조 건축양식을 본떠 제작된 것이 목탑이었고 이 석탑은 목탑의 나무 재료를 석재로 번안해 만든 것이기 때문이다. 정림사지 앞마당을 지키고 선 이 오층석탑은 좁고 낮은 1단의 기단(基壇) 위에 5층의 탑신(塔身)을 갖고 있다.
기단 각 면의 가운데와 모서리에 기둥돌이 끼어 있고 탑신부 각 층 몸돌에도 모서리마다 기둥이 서 있다. 위아래가 좁고 가운데가 볼록한 이들 기둥돌의 모습에서 목조건물의 배흘림기법을 확인할 수 있다. 처마의 네 귀퉁이에서 부드럽게 치켜든 얇고 넓은 지붕돌 또한 단아하다. 전반적으로 목조건물의 형식을 충실히 지키면서도 단순한 모방이 아니라 창의적이고 세련된 완성을 이뤘기에 장중한 아름다움을 풍긴다.
탑의 첫 번째 층 모서리 기둥에 당나라 장수 소정방이 백제를 정벌한 기념탑이라는 뜻의 글귀가 새겨 있다. 신라와의 연합군으로 백제를 멸망시킨 당나라의 입장에서 ‘평제탑’이라 불리는, 백제 입장에서 수모를 겪기도 했다. 국보 제11호 익산 미륵사지 석탑과 함께 현존하는 딱 2기뿐인 백제 시대 석탑이다.
/조상인기자 ccsi@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