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10개월째 고수해온 ‘경기 회복세’ 판단을 거둬들였다. 외환위기 수준의 고용 위축과 투자 부진, 장기화하는 미·중 무역갈등과 치솟는 국제유가까지 안팎으로 리스크가 확대되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정부는 경기 진단을 바꾸면서도 “침체는 아니다”라고 강조했지만 일각에선 국내 경기가 이미 정체 국면에 접어들었다고 보고 있다.
기획재정부는 12일 펴낸 ‘최근 경제동향(그린북) 10월호’에서 “최근 우리 경제는 수출·소비가 견조한 흐름을 이어가고 있으나 투자·고용이 부진한 가운데 미중 무역갈등 심화, 국제유가 상승 등에 따른 대외 불확실성이 확대됐다”고 밝혔다. 기재부가 매달 발간하는 그린북은 경기에 대한 정부의 공식 판단을 담고 있다.
기재부는 이번 그린북에서 11개월 만에 ‘회복 흐름’ 또는 ‘회복세’라는 표현을 뺐다. 투자·고용에 대해서는 일시적인 둔화를 뜻하는 ‘조정’ 대신 ‘부진’이란 표현을 썼다. 실제 지난달 취업자 수 증가폭은 4만5,000명에 그쳐 8개월 연속 10만명을 밑돌았고 반대로 실업자 수는 외환위기 이후 최장기간인 9개월 연속 100만명을 넘어섰다. 설비투자는 지난 8월까지 6개월 연속 감소했다. 역시 외환위기 이후 최장기간이다.
고광희 기재부 경제분석과장은 “리스크가 확대되고 있는 점을 상당 부분 반영해 ‘회복세’란 표현을 삭제했다”면서 “현재 고용이 상당히 좋지 않고 미중 무역갈등이 예상보다 길어지고 있다. 또 미국 금리가 올해 12월 추가 인상 가능성이 있고 국제유가도 지정학적 요인 때문에 계속 상승 중”이라고 설명했다.
고 과장은 다만 “정부는 ‘경기 침체’라는 시각에는 동의하지 않는다”며 “현재 상황상 하방 리스크가 계속 커지고 있다는 관점에서 (‘회복세’ 표현을) 삭제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정부 안팎에서 이미 ‘경기가 꺾였다’는 경고음이 커지고 있는 것과 대비된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올해 경제성장률을 2.8%로 낮춰 잡으면서 “현재 국내경기는 전형적인 ‘경기 수축’ 국면”이라고 판단했다. 지난 10일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도 현재 한국 경제가 ‘전반적인 경기 정체’ 상태라는 진단을 내놨다.
침체에 빠진 내수의 돌파구가 보이지 않는데다 한국 경제의 유일한 버팀목인 수출마저 가시밭길을 앞두고 있다. 지난 8월 KDI 설문조사에서 전문가들은 미중 무역전쟁과 보호무역주의 확산 등을 이유로 내년 수출 증가율이 5.1%로 올해보다 0.8% 포인트 낮아질 것으로 봤다. 이인실 서강대 교수는 “산업 경쟁력 저하와 도소매·자영업 부진이 맞물려 고용 악화와 내수 침체가 계속되고 있다”며 “근본적인 경제 구조조정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세종=빈난새기자 binther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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