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랏말싸미 듕귁에 달아…’ 세종대왕께서 우리나라 말이 중국 문자와 서로 맞지 않아 새롭게 한글을 창제하실 때, 함께 정비한 것이 있으니 바로 ‘황종(黃鐘)’, 즉 기준음이다. 중국에서는 새로운 왕조가 들어설 때마다 황종음을 정할 정도로 황종은 음이름이면서 일종의 도량형 같은 ‘기준’이었다. 세종대왕은 박연을 시켜 남양에서 나온 국내산 돌로 편경을 만들게 했고 황종을 제정했다. 자주성을 강조하고 균형의 정치를 추구하던 세종대왕에게 악(樂)을 바로 세워 기준을 제시한 것은 정치적 이상을 실현하는 한 과정이었다.
세종대왕 즉위 600주년을 기념한 특별전시 ‘세종대왕과 음·악, 황종’이 세종시 대통령기록관에서 31일까지 열린다. 세종대왕이 던진 ‘황종’이라는 화두에 현대미술가 10명(팀)이 작품으로 화답해 선보였다.
강서경은 세종이 창안한 ‘정간보’의 악보법을 빌려와 이를 나이 지긋한 두 노부부의 대화를 그려냈다. 철제 프레임으로 만든 사각의 프레임은 그들의 대화를 시각화한 것. 틀은 결국 신체를 제한해 움직임을 규정짓곤 한다. 강서경은 지난 6월 스위스 아트바젤이 수상하는 ‘발루아즈상’을 받은 유망작가다.
미디어아티스트 강애란은 악보도 만들고 직접 작곡도 했던 세종대왕의 업적을 빛나는 형태의 ‘책’으로 선보였다. 관객이 책을 만지는 순간 음악과 이미지를 경험할 수 있는 인터랙티브 아트이다.
황종이라는 기준에 대한 작가들의 성찰이 남다르다. 안정주 작가는 “화종음을 무엇으로 잡느냐에 따라 악보는 다르게 연주될 수 있는 ‘열린 것’”이라며 정간보의 이미지를 추상적 이미지의 비디오작품으로 ‘보여준다’. 문준용 작가는 음의 길이를 빛으로 표현해 소리를 눈으로 보게 했다. 작품 안에 들어선 관객은 음악으로 길이를 만들고 부피를 재는 것도 가능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작가 조해리는 옛 악보의 원리를 적용해 길이가 서로 다른 사각의 칸을 옻칠작품으로 보여준다. 음악을 전공한 작가 오민은 기준, 즉 이상을 향해 가는 연습의 태도를 보여준다.
협업작가 김기라×김형규는 작곡가 차선수와 함께 ‘여민락’의 음악을 변형해 반복적인 구성의 댄스음악인 EDM으로 만들었다. 이 음악은 높게 솟은 확성기를 통해 전시장에 울려퍼진다. 동시에 영상작품에서는 동생을 업은 여자아이가 등장하는데, 아이가 넘어지면 음악이 멈추고 다시 일어나 걸어갈 때는 음악이 흐르기 시작한다. 성과 함께 나아가기를 바랐던 600년 전 세종대왕의 정신을 되새기는 작품이다.
/조상인기자 ccs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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