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질’ 논란으로 촉발된 한진그룹 일가에 대한 검찰 수사가 일단락됐다. 검찰·경찰·관세청 등 총 11개 관계기관이 총동원돼 6개월가량 먼지털이 식 수사를 벌였지만 조양호 회장은 불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게 됐고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는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오너 일가의 부도덕성에 대한 사회적 비판과 별개로 검찰이 여론에만 떠밀려 무리한 수사에 나선 것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온다.
서울남부지검은 국제조세조정에 관한 법률 위반,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배임·사기, 약사법 위반 등 혐의로 조 회장을 불구속 기소했다고 15일 밝혔다. 조 회장은 일가 소유인 면세품 중개업체를 이용해 ‘통행세’를 걷는 등 부당이득을 챙긴 혐의도 받는다.
검찰에 따르면 조 회장은 지난 2003년부터 올 5월까지 대한항공 납품업체들로부터 장비와 면세품을 구매할 때 트리온무역 등 명의로 196억원 상당의 중개수수료를 받아 회사에 손해를 끼치는 등 모두 274억원의 횡령·배임 혐의를 받고 있다. 조 회장은 인하대병원 앞에 일명 ‘사무장약국’을 개설해 1,522억원 상당의 요양급여를 가로챈 혐의와 해외 상속계좌 미신고 혐의도 받고 있다.
하지만 검찰은 끝내 조 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하지 못했다. 7월2일 서울남부지법이 조 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한 이래 검찰은 모친 등을 정석기업 임직원으로 올려 급여 명목으로 20억원을 지급한 혐의 등을 추가했지만 성과를 내는 데 실패했다. 결국 검찰은 수사 의욕에 비해 혐의를 입증할 근거는 부족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조 회장 수사의 발단이 됐던 상속세 탈루 혐의는 공소시효가 만료돼 ‘공소권 없음’ 처분됐다. 아울러 검찰은 ‘물컵 갑질’ 논란을 일으킨 조 전 전무에 대해 폭행혐의는 공소권 없음, 특수폭행과 업무방해 혐의는 혐의없음 처분을 내려 사실상 ‘없던 일’이 됐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사실상 국가기관이 총동원돼 한진그룹을 수사한 셈”이라며 “검찰은 ‘물컵 갑질’로 촉발된 국민들의 부정적 인식에만 기대 무리한 수사를 했다는 지적을 피하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한진 총수 일가가 안심하기는 아직 이르다. 조 회장은 불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지만 횡령·배임 의혹 금액이 274억원에 달하는 만큼 경우에 따라 징역 5년 이상 실형을 받을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또 관세청이 한진 총수 일가의 밀수 혐의를 조사 중이고 서울지방경찰청이 조 회장의 자택 경비 비용 회삿돈 대납 의혹을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넘긴 점 등은 변수다. /서종갑기자 gap@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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