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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탕 당분 입자크기 의문서 시작...'반도체 TB 시대' 열어

■나노기술의 탄생과 역사

STM 개발로 기술 발전 가속

1991년 '탄소나노튜브' 발견

韓은 3기 나노기술지도 선봬





나노는 그리스어로 난쟁이를 뜻하는 나노스(nanos)에서 나왔다. 어떤 물질을 마치 러시아 인형처럼 계속 작게 만들다 보면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에 도달한다. 우리가 볼 수 있는 게 머리카락 굵기라면 1나노미터(㎚)는 그것의 10만분의1 규모다. 1㎚는 10억분의1m로 원자 3~4개 크기에 해당한다.

재미있는 것은 물질을 나노 단위까지 쪼개면 표면적이 급증하며 모양이나 색깔, 구조, 성질 등이 상당히 달라진다는 점이다. 탄소원자로 이뤄진 흑연이 연필심으로 쓸 정도로 무르지만 나노 단위로 재구성하면 강철보다 100배나 센 탄소나노튜브가 되는 식이다. 또 노란색인 금을 나노 단위까지 계속 자르다 보면 붉은색으로 변한다.

역사적으로 나노기술을 살펴보면 로마제국 시대인 4세기께 승리의 축배를 들기 위해 만든 ‘리카거스컵’은 밖에서 비춘 빛에는 녹색을 반사하지만 컵 안에 빛을 투과시키면 붉은색을 띄었다. 이는 극소량의 금과 은으로 된 수십 나노미터 크기의 나노 입자가 섞여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유리컵에 색깔을 입히기 위해 노력하다가 금과 은을 조금 첨가했던 것으로 보인다. 중세 교회에서 사용한 화려한 유치창(스테인드글라스)에도 금 나노입자가 일부 포함돼 붉은 빛을 띈다. 십자군전쟁(11세기말~13세기말 유럽 기독교세력이 예루살렘 탈환을 위해 중동 이슬람세력을 8차례 공격한 사건) 당시에도 칼에 나노기술이 적용됐다. 이슬람 측(사라센군)이 사용한 ‘다마스쿠스’라는 검은 예리하면서도 바위를 내리쳐도 부러지거나 휘지 않았다. 2007년 피터 파플러 독일 드레스덴대학교 교수가 금으로 된 뱀 무늬가 새겨진 이 검을 투과전자현미경(TEM)으로 분석한 결과, 15%가 변형되더라도 견딜 수 있는 탄소나노튜브 구조로 돼 있는 것을 알아냈다.

현대에 들어 나노기술의 역사는 알베르트 아인슈타인(1879~1955) 박사가 커피를 마시다 설탕을 타는 과정에서 ‘설탕 당분의 입자 사이즈가 얼마나 될까’라는 의문을 품고 분자 크기가 1나노라는 점을 계산한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아인슈타인과 함께 20세기 최고의 물리학자로 꼽히는 미국의 리처드 파인먼(1918~1988)은 캘리포니아공대 교수 시절인 1959년 미국 물리학회 강연에서 본격적으로 나노 시대의 서막을 열었다. ‘바닥에는 충분한 공간이 있다(There is Plenty of Room at the Bottom)’며 아무리 작게 물질을 쪼개도 풍부한 공간이 있다고 밝힌 것이다. 당시 그는 브리태니커 사전 24권에 들어 있는 모든 내용을 머리핀에 기록할 수 있다고 했다. 이후 반도체의 역사에서 수㎝ 크기의 진공관 스위치가 수㎚ 크기의 트랜지스터로 발전하면서 메가바이트(MB·1,024KB), 기가바이트(GB·1,024MB), 테라바이트(TB·1,024GB) 시대로 발전할 수 있었다. 당시는 그저 희망사항에 불과했던 얘기가 현재는 64기가 낸드플래시 메모리 칩에 일간지 800년치를 저장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나노기술은 1981년 스위스 IBM연구소에서 원자와 원자의 결합상태를 통해 단일분자의 이미지를 얻을 수 있는 주사형터널링현미경(STM)을 개발하면서부터 가속도를 낸다. 터널링 현상은 아주 작은 세계에서는 물질이 마치 터널을 뚫고 지나가듯이 벽을 통과하는 것을 말한다. 1985년에는 지금의 약 1㎚의 풀러렌(탄소원자가 5각형과 6각형으로 이루어진 축구공 모양으로 연결된 분자)가 발견되고 1991년 친환경 태양전지 등 다양하게 응용되는 탄소나노튜브(CNT)가 발견됐다. 2000년에는 미국이 국가나노기술발전계획(NNI)을 발표하는 등 미국·일본 등은 1990년대부터 국가적 연구과제로 나노기술을 연구해왔다. 우리나라도 2002년부터 나노기술개발촉진법을 만든 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 범부처 차원에서 올해 ‘제3기 국가나노기술지도(2018~2027년)’를 내놓았다. 극미세 세계를 연구해 친환경 에너지와 바이오헬스케어, 4차 산업혁명 반도체와 사물인터넷(IoT) 분야에서 미래 기술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나노기술은 양자역학의 세계와도 맞닿아 있다. 물질을 나노 단위까지 계속 잘라도 원자가 원자핵과 전자를 제외하면 99.999% 이상 텅 비어 있기 때문이다. 나노공학 전문가인 김용성 서울과기대 나노IT디자인대학원 초빙교수는 “나노의 세계로 들어가 입자의 크기를 한없이 줄이더라도 어차피 입자의 공간은 남는다”며 “부처의 말씀을 다룬 반야심경에 나오는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 空卽是色)’의 세계와 맞아 떨어지게 된다”고 설명했다. 역으로 무한대의 세계인 우주에서도 지구와 태양 사이는 물론 별과 별 사이는 진공상태라는 점에서 나노의 세계와 연결된다. 자연스레 진공을 다루는 나노기술은 우주기술·반도체·초대형가속기기술 등으로 이어졌다. 앞서 토머스 에디슨이 전구를 발견할 때도 그 안의 산소를 제거해 필라멘트가 타지 않고 빛을 발할 수 있었다. 진공관의 발명은 레이더의 개발과 X선의 발견을 이끌어냈다.

인류는 자연스레 자연에서 나노기술을 많이 벤치마크해왔다. 빗방울을 흘려보내는 연잎을 통해 나노 크기로 작은 돌기를 빼곡히 덮으면 코팅 효과가 뛰어나다는 것을 알았다. 모기가 눈의 각막이 매끄럽지 않고 작은 털이 규칙적으로 나 있어 빛이 반사되지 않는 것을 참고해 태양전지를 개발했다. 동식물을 통해 첨단기술로 응용하는 생체모방공학(biomimetics)을 발전시킨 것이다. /고광본 선임기자 kbgo@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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