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총액 1조달러를 돌파한 애플의 매출 70%가 아이폰에서 나온다. 그렇지만 아이폰에 대한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다는 지적은 나오지 않는다. 아이폰은 애플의 자체 운영체제(OS)인 iOS를 바탕으로 아이튠즈·앱스토어와 같은 서비스와 이용자경험(UX)을 결합해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창출했다.
철강·조선·자동차 산업의 경쟁력 약화와 반도체 분야의 공급과잉 우려가 더해지면서 국내 제조업의 부가가치를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특히 미중 간의 무역분쟁 심화로 각국의 무역장벽이 높아지며 수출에 목을 맸던 우리 제조업의 평균가동률은 지난 8월 기준 75.7%로 떨어졌다.
전문가들은 제조업과 서비스업을 결합해 추가적인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서비타이제이션(servitization)’ 모델 도입을 서둘러야 한다고 주장한다. 4차 산업혁명의 흐름인 ‘융합’을 위해 대기업들이 좀 더 과감하게 인수합병(M&A) 시장에 뛰어들어야 한다는 점도 강조한다. 김진형 인공지능연구원장은 “조선산업 위기에 대비해 선박 양도 후에도 빅데이터로 배의 수명을 늘려주거나 새로운 기술을 적용하는 서비스를 도입했다면 한국 조선산업의 경쟁력은 더욱 커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비타이제이션 수단 아닌 생존=제조 한국의 기반인 자동차 산업은 글로벌 시장에서 성공을 거둔 1990년 초반 이후 변화가 없다. 생산→판매→사후서비스(AS)로 이어지는 구조에 갇혀 있다. 반면 4차 산업혁에 일찍 눈을 뜬 업체들은 개발에서부터 생산·판매·UX 등을 하나로 묶어 부가가치 창출을 극대화한다. 차량 공유 서비스에서 GM은 ‘메이븐(Maven)’, BMW는 ‘드라이브 나우(DriveNow)’, 다임러는 ‘크루브(Croove)’를 통해 제조업과 서비스의 융합을 시도하고 있다. 자동차 판매를 줄일 것이라는 막연한 걱정보다는 사업 모델의 판을 바꿨다. 우버가 1,200억달러의 기업가치를 만들었지만 한국의 자동차 공유 서비스는 여전히 불법이다. 산업연구원에 따르면 한국 제조업의 서비스 생산유발계수는 0.23으로 프랑스(0.52), 미국(0.41), 독일(0.40), 일본(0.40)은 물론 중국(0.29)과 멕시코(0.25)에도 뒤처진다.
인공지능(AI)과 사물인터넷(IoT) 등 정보통신기술(ICT)을 활용한 생산성 향상도 시급하다. 독일의 엘리베이터 생산 업체인 티센크루프는 마이크로소프트와 손잡고 지능형 빅데이터를 활용해 엘리베이터가 오작동을 사전에 점검해 인건비를 대폭 줄이고 신규고객을 확보했다. 강남현 부산대 교수는 “4차 산업혁명의 근간은 제조업과 ICT의 융합을 통해 스마트 제조업으로 패러다임을 바꾸는 것”이라고 “제조업과 서비스의 결합은 수단이 아닌 생존”이라고 강조했다. 제조업과 ICT 기술력의 결합은 낮은 인건비를 바탕으로 추격하는 중국 등과의 격차를 벌릴 수 있다. 미국경쟁력위원회의 ‘2016 글로벌 산업 경쟁력 지수’에 따르면 종합순위 1등은 중국이지만 인적자원과 혁신정책 및 인프라 부문에서 미국이 98.7점으로 중국(47.1점)을 두 배 이상 앞선다. 미국경쟁력위원회는 “미국이 오는 2020년께 제조업 분야 1위를 탈환할 수 있는 배경에는 연구개발(R&D)에 대한 국가적 투자와 기술력 및 혁신이 자리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협업 늘리고 R&D 효율성 높여야=자율주행차나 AI와 같은 미래산업은 글로벌 협업이 필수과제다. 삼성전자와 현대차가 최근 몇 년간 전장분야·자율주행·AI 등의 스타트업 인수에 사활을 건 것도 이 때문이다. 이 같은 노력에도 삼성전자가 미래산업으로 내세운 AI 분야는 구글이나 아마존과 같은 플랫폼 사업자에게 주도권을 내준 상황이다. 자동차 업계의 미래 먹거리인 자율주행차 또한 구글·인텔 등이 공격적 투자로 유망 스타트업을 싹쓸이했다. 우리 내부에서 협업과 글로벌 M&A에 대한 인식 변화가 필요하다.
정부도 신산업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 대한상의가 지난해 신산업을 추진 중인 700여개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관련 규제로 사업 차질을 경험한 비중이 47.5%에 달했다. 대통령 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가 차량 공유 서비스 등에 대한 해법을 내놓지 못하는 등 이해관계자에게 끌려다니는 사이 제조업 한국의 마지막 활로마저 막히는 모습이다.
가격경쟁력에 대응하기 위한 R&D 효율성도 서둘러 높여야 한다.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R&D비용 비중은 2016년 기준 4.24%로 이스라엘에 이어 세계 2위다. 반면 세계적인 과학전문지 네이처는 2016년 “한국의 R&D 분야가 ‘고비용 저효율’ 구조”라는 분석을 내놓는 등 운용 효율성에 대해서는 물음표가 끊이지 않는다. 특히 R&D 투자액에서 상업화 여부가 가장 중요한 민간이 75.4%(52조3,459억원)의 비용을 지출해 정부 및 공공기관의 투자 확대를 통한 R&D 부문의 기초 다지기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양철민기자 chopi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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