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개 소형 빌라를 짓는 영세 시공사는 고금리를 물고 건설자금을 마련합니다. 이자가 높으니 얻는 마진은 줄고 그러다 보면 자재비를 아끼게 돼 부실공사 가능성이 커집니다. 소형 빌라 등 다세대주택은 아파트에 전세로도 들어가기 어려운 서민이 사는 경우가 많은데 꽤 높은 금리로 대출을 받아 살 곳을 구했지만 겉은 괜찮아도 안은 온통 하자덩어리인 것입니다. 한마디로 악순환입니다.”
올해 개인간거래(P2P) 금융시장은 부동산 대출 P2P를 중심으로 시끄럽고 떠들썩하다. 지난 5월부터 중소형 부동산 P2P 업체 대표가 사기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거나 검찰에 구속까지 됐다. 급기야 9월에는 부동산 P2P 업계 2~3위를 차지해온 루프펀딩의 대표가 구속되면서 시장이 출렁였다. 불안한 상황이 지속되면서 금융당국도 “P2P는 신용 대출이 바람직하다”며 부동산 대출 P2P는 골칫덩어리라는 식의 메시지를 여러 번 던졌다.
양태영 테라펀딩 대표는 이와 정반대의 주장을 한다. 부동산 P2P도 중금리 신용 대출을 내주는 신용 대출 P2P와 다를 바 없이 자신만의 사회적 역할이 있다는 것이다. 이익에 눈멀어 일어난 일탈과 범죄로 부동산 P2P를 단정 지을 수는 없다는 주장이다. 그래서 집중하는 분야가 중소형 건축자금이다. 테라펀딩은 국내 최초의 부동산 P2P 업체로 지금은 2조원을 훌쩍 넘는 시장에서 압도적으로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제도권에서 떨어진 이들이 부동산 P2P로 중금리대출을 받도록 해 그가 말한 악순환을 선순환으로 전환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양 대표가 금융권에 처음 발을 들인 것은 2008년이다. 부산에서 태어나 자란 양 대표의 첫 직장은 HSBC 부산지점이었다. 여기에서 당시 글로벌 금융위기로 요동치던 부동산시장을 보며 처음 관심을 갖게 됐다. 그는 “부동산담보 여신을 취급하면서 은행이 돈을 빌려줬는데 채무자가 돈을 갚지 못하면 경매로 넘어간다는 점이 흥미로웠다”고 떠올렸다. 그러다 그는 경매로 어느 작은 빌라를 하나 낙찰받고 수리한 뒤 되팔았더니 수익이 났다. 당시 수익 1,000만원이 손에 들어오자 양 대표는 입행 6개월 뒤 바로 은행을 그만두고 경매에 뛰어들기로 했다. 계약직으로 입행한 것이라 그렇게 크게 애정이 간 것도 아니니 미련 없이 떠났다는 게 양 대표의 설명이지만 그래도 갑자기 경매를 본업으로 삼아보겠다는 그의 결정에 주변에서는 의아한 시선을 보내기도 했다.
쏠쏠한 수익을 얻으며 경매시장에 적응해나가던 찰나 양 대표는 갑자기 벽에 부딪쳤다. 그는 “한 번은 좋은 가격으로 유치권이 있는 줄 안 물건을 낙찰받았는데 현장을 여러 차례 방문한 결과 점유하는 사람이 없어 이건 소위 ‘대박’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민법상 유치권이 성립하려면 유치권자는 해당 주택 또는 건물을 점유하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유치권자에게 줘야 할 돈도 없다고 판단했다. 그렇게 낙찰을 받고 잔금까지 냈는데 한 달 뒤 다시 가보니 사람이 살고 있었다. 알고 보니 유치권자였다. 양 대표는 “그가 돈 받을 게 있으니 집을 비워줄 수 없다고 주장해 소송을 하게 됐는데 나는 법률 지식이 없다 보니 막막했다”고 기억했다. 양 대표는 그 경험으로 경매라는 것은 그냥 경매가격을 잘 분석해 입찰하면 끝이 아니라 낙찰 후 사후계획까지 철저히 짜야 한다고 느꼈다. 법률 지식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따로 공부도 하고 법무법인에 들어가 일을 배웠다.
20대 초중반부터 막연하게 사업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가진 그는 2010년 경매와 별도로 사업을 하나 작게 마련했다. 일종의 교육 온라인 플랫폼으로 강사와 학생을 온라인에서 연결해 오프라인에서 수업이 이뤄질 수 있도록 중개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양 대표는 “모객이 생각보다 어려웠고 강사를 계속 수급하는 것도 힘들었다”며 얼마 안 돼 사업을 접었다. 그는 제대로 된 교육 지식 없이 교육 관련 스타트업을 해 실패하게 됐다고 스스로 진단했다.
그래서 생각한 다음 사업은 가장 잘할 수 있는 ‘부동산 중개 애플리케이션’이었다. 온라인 플랫폼을 만들어본 경험으로 부동산 임대·매매를 하는 수요자와 공급자를 연결해주겠다는 아이디어였다. 애플리케이션 개발이 한창이던 때 양 대표는 다른 부동산 애플리케이션 개발 스타트업 대표와 대화하다가 흥미로운 기사를 읽게 됐다. 미국의 ‘리얼티모굴’이라는 부동산 크라우드펀딩 서비스 업체에 대한 내용이었다. 이를 계기로 지금 테라펀딩의 부대표인 이성웅씨와 함께 크라우드펀딩에 대한 고민을 이어갔으나 쉽게 풀리지는 않았다. 당시 규정상 부동산자금을 모집하려면 부동산공모펀드 사업자가 돼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집합투자 면허가 필요했고 자본금도 터무니없이 부족하기 때문에 불가능하다는 답이 돌아왔다.
결국 부동산 애플리케이션도 사업이 부진해 접게 됐다. 양 대표는 오랜만에 이씨를 만나 이번에는 꼭 성공하겠다는 마음으로 다음 사업을 논의했다. 둘의 최대 관심사는 당시 크라우드펀딩 관련 법안이 발의되면서 국내에서 핀테크가 본격적으로 주목을 받는 현상이었다. 관련 사안을 더 공부하다가 양 대표는 대출형 크라우드펀딩, 즉 P2P 사업을 꼭 부동산공모펀드 형태로 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미 당시 머니옥션이라는 P2P 업체는 연계대부 업체로 등록해 사업을 진행하고 있었고 팝펀딩은 저축은행과 제휴를 맺고 여신·수신을 하는 구조였다. 현재 금융감독원에 P2P 사업자로 신고한 업체들은 머니옥션의 방법을 이용한다. 곧바로 양 대표는 테라펀딩을 2014년 12월 창업했다.
당시만 해도 P2P 업계는 신용 대출 P2P 업체가 대부분이었고 테라펀딩이 유일한 부동산 대출 P2P 업체였다. 하지만 소액 위주의 신용 대출 건보다 부동산 P2P 금액이 기본적으로 차이가 커 얼마 지나지 않아 테라펀딩은 신용대출 P2P의 대출취급액을 상회했다. 9월 말 기준 테라펀딩의 누적대출액은 4,875억원, 대출잔액은 2,117억원으로 둘 다 압도적인 1위 규모다. 연체율은 1% 미만으로 안정적이다. 실패도 해보고 난관에 봉착할 때마다 답을 찾으려 하고 새로운 시도를 이어온 결과다. 양 대표는 “(테라펀딩을) 하려고 여태껏 그렇게 해온 게 아닌가 싶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특히 사회초년생 때부터 경매 분야를 공부해온 것이 양 대표에게 큰 도움이 됐다. 대부분 경매가 나오는 것은 빌라 등 다세대주택인데 이는 시중은행 등 제도권 금융기관에서 영세 시공사에 쉽게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을 내주지 않기 때문이다. 경매를 수년 공부한 양 대표는 부동산시장의 밑바닥 생리를 꿰뚫고 틈새시장을 파고들어 제도권이 닿지 않는 시장에서 자리를 선점했다.
앞으로도 양 대표는 “여전히 제도권 금융으로부터 대출을 받지 못하는 사람이 많아 서비스를 꾸준히 개선해나가면서 확장하고 싶다”며 “또 금융기관이 관심을 갖지 않는 틈새시장은 언제나 존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현재 회원 투자자 수는 수십만 명에 불과하다”면서 “향후 100만명 1,000만명이 모여 전국 곳곳에 안전한 집을 지으면 좋겠다”고 웃으며 말했다. 법정 최고금리 24%를 훌쩍 넘기는 이자를 무는 건설사채를 찾아야 했던 영세 사업자들이 P2P 업체를 통해 중금리대출로 자금조달을 한다면 일반 사람들도 부실공사 없이 튼튼하게 지어진 집에서 살 수 있고 그렇게 악순환이 선순환으로 바뀌어가는 것이 양 대표의 바람이다.
/손구민기자 kmsohn@sedaily.com 사진=송은석기자
He is...△1983년 부산 △2008년 HSBC 부산지점 근무 △2014년 테라펀딩 창업 △2018년 한국P2P금융협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