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 주기별로 자산을 다루는 방식은 달라진다. 자녀를 부양하는 자산적립기에는 아껴서 되도록 많은 돈을 적립하고 투자수익률을 조금이라도 높여 최종 자산의 크기를 늘리는 데 힘써야 한다. 반면 정년 이후 자산인출기에는 한정된 자산으로 생존하는 동안 떨어지지 않도록 적절히 나눠 쓰는 것이 핵심 과제다.
똑같은 자산이라도 목돈을 모으기 위해 적립식으로 투자할 때와 거치식으로 투자하고 조금씩 인출해 사용할 때 자산가격 등락에 따른 잔액의 변동은 서로 전혀 다른 양상을 띤다. 적립식은 투자 후 단기적으로 지수가 하락했을 때가 오히려 싼 가격으로 많은 수량을 매입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다. 최종 자산의 크기를 결정하는 관건은 목표 시점이 가까워질 때 지수가 얼마나 상승하느냐다. 반면 목돈을 투자해 놓고 정기적으로 인출해야 한다면 상대적으로 초기 수익률 관리가 중요하다. 적립식과 반대로 인출로 인해 시간이 지날수록 투자 원금이 줄기 때문에 생기는 특성이다. 자산의 액수가 큰 초기에는 작은 지수의 움직임에도 손익 변동폭이 크지만 점차 액수가 줄면 지수 변동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감소한다. 결국 적립기나 인출기나 손익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시기는 투자원금이 많을 때임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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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산인출기에는 평생 모은 자산을 기대여명으로 나눠 연간 생활비를 결정한다. 쉽게 말해 매년 총보유 자산의 n분의1씩 쓰는 셈이다. 투자수익률을 고려하면 좀 더 복잡한 계산이 나온다. 목돈 1억원이 있고 그 4%에 해당하는 금액을 인출할 계획을 세웠다고 가정하자. 첫해에는 400만원을 생활비로 쓸 수 있다. 매년 물가는 상승하기 마련이어서 그 다음 해에도 같은 생활 수준을 유지하려면 400만원에 물가상승률만큼을 더한 액수가 필요하다. 이런 식으로 인출해 사용하다 보면 원금은 언젠가는 고갈되는데 그 시기는 평균수익률과 물가상승률이라는 두 변수에 의해 결정된다. 두 변수가 같으면 약 25년, 연평균 수익률이 물가상승률보다 2%포인트 높으면 약 50년 걸릴 것이다. 60세에 은퇴했다면 변수에 따라 85세에서 110세까지 버틸 수 있는 셈이다. 수명과 물가상승률은 맘대로 조절할 수 없는 것이어서 투자수익률을 높이려는 노력이 장수 리스크에 대응하는 유일한 방법임을 알 수 있다. 100세 시대의 기나긴 여생을 보내기 위해서는 자산인출기에도 일정 수준의 투자수익률을 낼 수 있어야 한다.
절세도 놓치지 말아야 한다. 대체로 자산적립기보다 자산인출기에 세금을 내는 게 세율이 낮다는 것을 잘 활용해야 한다. 이는 스스로 노후를 준비하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당근이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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