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금융권에 따르면 산은이 초기 대응에 실패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안팎으로 제기된다. 이동걸 산은 회장은 지난 22일 열린 국정감사에서 “GM이 4월말 경 연구법인을 분리하겠다는 뜻을 전달해 왔다”고 밝혔다. 지난 7월 GM이 법인 분리를 공식 발표하기 석 달 전부터 이 같은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던 셈이다. 산은은 사전 대응에 나서지 못한 이유에 대해 “GM이 우리가 원하는 수준의 자료를 전달해 주지 않아 영향 평가를 하기 어려웠다”면서 귀책 사유가 GM에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금융권의 평가는 다르다. 산은이 기업 구조조정 업무에서 갑(甲)의 지위에 있는데 익숙해 제대로 된 협상을 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국내 한 은행에 근무하다 퇴직한 기업여신업무 담당자는 23일 “산은이 구조조정 채권단 회의를 소집해 참석해보면 정보도 제대로 주지 않으면서 ‘우리가 방향을 정할 테니 군말 없이 따르라는 식’으로 고압적으로 군다”며 “GM은 국내 은행에 빚을 진 것도 없고 한마디로 아쉬울 게 없는데 소수 주주인 산은 말에 고분고분 따르겠느냐”고 지적했다. 일방적으로 GM 탓을 할 게 아니라 산은의 협상 전략에 문제는 없었는지 재점검해야 한다는 것이다.
연구 법인 설립에 대한 산은의 애매한 태도도 도마에 오르고 있다. 이 회장은 22일 국감에서 오전만 해도 “법인 설립 자체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가 오후 들어서는 “법인 설립을 강행하면 돌이킬 수 없는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법인 설립을 끝까지 저지하겠다는 것인지 아니면 산은의 체면을 살려준다면 허용하겠다는 것인지 가늠하기 어려운 발언이다. 금융권 및 산업계에서 법인이 분리되면 자칫 GM이 약속한 10년 체류도 어려워질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것과 대조적인 입장이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산은이 내부적으로 법인 분리 문제를 ‘마이너’한 일로 대수롭지 않게 봤다가 사태가 커지고 대응 미숙에 대한 질타가 나오자 ‘우리도 꼭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공식 입장을 내고 있는 것으로 본다”고 분석했다. 반대한다고 밝혔다가 결국 법인 설립을 막지 못하면 탈출구가 없다는 것이다.
이 같은 산은의 대응 탓에 한국GM 노조가 집단행동에 나설 명분을 얻게 된 점이 최대 패착이 될 것이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한국GM을 비롯해 국내 자동차 산업의 최대 취약점이 노동생산성 저하인데 산은이 노동 혁신의 돌파구를 스스로 막았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 19일 한국GM 임시주총 때 산은 측 이사들은 노조에 밀려 주총장에 들어서 보지도 못했다. 산은과 GM 경영진 뿐 아니라 산은과 노조의 신뢰도 이미 깨졌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한국GM 노조는 24일부터 청와대 앞에 천막을 설치해 릴레이 노숙에 들어가고, 간부 200여명은 오는 26일 월차를 내는 방식의 ‘간부 파업’을 벌일 예정이다. 문병기 무역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한국처럼 상대적으로 임금이 높은 나라는 노동생산성을 끌어 올리는 방법으로 경쟁력을 키워야 스스로 살아남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산은이 국내 구조조정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업무 전문역량을 키워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산은은 구조조정 과정에서 자회사로 떠맡은 대우건설과 대우조선해양 등에 최고재무책임자(CFO)를 내려 보내는 등 경영 관리에 나섰지만 모두 전문성 부족을 드러내며 한계를 보여왔다. 연구법인 분리가 GM 경쟁력 향상에 필수적인지 여부를 명확히 대답하지 못하는 것도 이 같은 전문성 부족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보는 시각이 많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산은이 폐쇄적인 인력 운용에서 벗어나 외부 산업 전문가를 과감히 고위직으로 발탁하는 등 혁신에 나서야 한다”고 꼬집었다.
/서일범기자 squiz@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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