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슨은 미래 전기차 수요 1위인 중국과 각종 자동차 관련 인프라가 뛰어난 한국 대신 싱가포르를 첫 생산기지로 선택했다. 세계 최대 전기차 시장인 아시아에 생산기지 설립을 검토하며 한국과 중국도 선택지 중에 하나였지만 한국은 각종 규제와 인건비, 강성 노조의 부담에 일찌감치 탈락했고 중국은 최근 미중 무역전쟁 리스크가 부담스러웠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23일 업계에 따르면 다이슨 최고경영자(CEO)인 짐 로완은 최근 사내 공지를 통해 “싱가포르에 다이슨 전기차 생산시설을 건설하기로 확정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다이슨 창업자인 제임스 다이슨이 전기차 시장 진출을 선언하며 연구개발(R&D) 계획을 언급한데 이은 후속조치다. 그 동안 일각에서는 다이슨이 R&D에만 그치고 구체적인 생산 투자 계획은 없을 것이란 회의적 시선을 보냈다. 짐 로완 CEO는 “싱가포르 공장은 전기차 생산과 조립을 위한 단계로 나아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이슨은 싱가포르 전기차 생산공장에 제조역량과 인력을 총 집결시킬 계획이다. 기존 싱가포르에 있던 제조시설과의 연계를 꾀하고 연구인력을 두 배 가량 확장하는 방식이다. 다이슨은 이미 싱가포르에 첨단 모터 생산시설을 비롯해 연구 및 디자인 개발팀 등을 두고 있다. 관련 직원만 1,100여명에 달한다. 다이슨 측은 “기존 시설의 확장이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생산 시설을 추가로 짓는 것”이라며 “구체적인 공장 규모나 투자 금액은 밝힐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영국의 전기차 연구팀 400여명과의 협업도 이뤄진다”고 덧붙였다.
다이슨은 최근 서울경제신문과의 단독 서면인터뷰를 통해 ‘다이슨 전기차’의 미래 모습을 비교적 구체적으로 설명한 바 있다. 당시 제임스 다이슨은 “다이슨이 축적해온 배터리·모터 기술, 영상 데이터 처리 기술, 로봇 공학, 기류 제어 등이 모두 활용될 것”이라며 “스포츠카나 저가용 자동차가 아닌 첨단 기술이 적용된 자동차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이슨 전기차가 테슬라나 벤츠·도요타 등과 겨뤄볼 만한 프리미엄 제품군임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다이슨은 전기차 출시를 위해 애스턴마틴·BMW 등 글로벌 완성차업체의 인재를 꾸준히 영입했다. 2015년에는 배터리 전문기업 삭티3를 9,000여억원에 인수하기도 했다. 현재 다이슨이 공식적으로 밝힌 투자 계획 규모만 25억파운드(3조 6,845억 원)에 달한다. 테슬라가 최근 5년간 연구개발에 쏟아부은 투자금(약 18억8,000만파운드)을 넘어선다.
다이슨의 공격적인 전기차 투자는 전기차와 수소전기차를 미래 성장산업으로 보고 있는 한국 등 기존 완성차 업체는 물론 자동차 배터리 업체에도 위협이 될 전망이다. 특히 중국 일부 업체들이 다이슨의 배터리를 적용하기 위해 많은 공을 들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전기차 산업의 판도를 흔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완성차 업계에서도 다이슨의 전기차 시장 진출에 긴장하고 있다. 전기차의 경우 복잡한 내연기관과 수천개의 부품으로 이뤄진 기존 완성차에 비해 훨씬 단순한 구조인 만큼 후발주자들의 선전이 기대되는 분야란 평가다. 미국 테슬라, 중국 BYD 이외에 벤츠·BMW·아우디·도요타 등 기존 완성차업체들까지 앞다퉈 전기차를 선보이며 시장 규모도 빠르게 커지고 있다. 정부지원 증가와 함께 △가격 인하 △기술 발전 △소비자 인지도 증가 등이 이뤄지면 내연기관 자동차 시대가 빠르게 저물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지난 2011년 90만대 수준이었던 전기차(하이브리드 포함)는 2020년 851만대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같은 기간 순수 전기차는 3만1,000대 수준에서 433만4,000대로 늘어날 전망이다.
다이슨은 싱가포르 선정 배경에 대해 “합리적이고 경제적인 이유”라고 설명했다. 세계 최대 규모의 전기차 시장이 될 아시아를 공략하기에 최적의 입지라는 것이다. 싱가포르는 네덜란드에 이어 세계은행이 꼽은 두 번째로 사업하기 좋은 국가(2017년 기준)이기도 하다. 전기차에 필요한 첨단 소재 및 부품 업체들이 많고, 전문 엔지니어 및 과학자를 영입하기에 유리한 곳으로 평가받는다. 다이슨이 싱가포르·말레이시아·필리핀에서 완제품 조립·생산을 이어가며 쌓은 네트워크도 다양하다. 다이슨 측은 “지난해 매출 35억파운드, 순이익 8억100만파운드로 전년대비 각각 40%, 27% 성장했는데 이 같은 성장의 73%는 아시아에서 비롯됐다”면서 “글로벌 첫 생산기지로 아시아를 선택한 이유 중 하나”라고 말했다./신희철기자 hcshi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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