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재정부가 24일 내놓은 ‘혁신성장과 일자리 창출 지원방안’은 기득권의 집단 반발이 큰 승차공유(카풀)와 숙박공유, 원격의료 확대 등 규제 혁신은 한 단계도 진전시키지 못했다.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최근 혁신성장과 관련해 ‘정면돌파’ 의지를 내비쳤지만 이번 방안에서 택시업계를 ‘기존 운수업계’, 승차공유를 ‘신 교통서비스’라고 우회 표현하는 등 눈치 보기에만 급급했다. 오히려 부처 간 의견 조율 부족과 이해당사자 설득 실패를 드러낸 꼴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
기재부는 이날 “신 교통서비스와 관련해 소비자 선택권 제고를 위해 활성화하되 기존 운수업계 경쟁력 강화 등 상생 방안 마련을 병행하겠다”고 밝혔다. 택시업계가 최근 서울 도심에서 카카오의 카풀 도입에 반대하며 대규모 집회를 벌이고 숙박업계가 반발 움직임을 보이자 한걸음 물러난 모양새다. 연내 공유경제 활성화 대책을 내놓겠다고 했을 뿐 범위와 시기, 방법 등은 언급조차 하지 못했다. ‘맹탕 대책’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고형권 기재부 1차관도 지난 23일 사전 브리핑에서 공유경제 대책과 관련해 “관계부처 사이에 많은 협의와 조정을 거쳐서 표현했다”며 대책의 한계를 사실상 인정했다.
에어비앤비 같은 숙박공유 허용 범위 확대와 관련해서도 “투숙객 안전 확보 등 제도 정비를 병행하겠다”는 원론적 입장을 밝히는 데 그쳤다. 정부 내부에서조차 실현 가능성을 낮게 보고 있다. 내국인을 상대로 도시 지역에 숙박공유를 허용하는 관광진흥법 개정안이 2년째 국회 계류하는 등 숙박업계뿐 아니라 정치권 설득이 쉽지 않은 탓이다.
의료 분야에서도 의사가 환자를 직접 원격 진료할 수 있도록 하는 핵심적인 규제혁신 방안은 쏙 빠졌다. 대신 도서벽지 등 의료 취약 지역의 치매·장애인·거동불편 환자로 대상을 국한해 의사와 의료인 간 협진을 확대하겠다는 내용만 담겼다. 원격진료 분야 규제개혁에서 ‘뜨거운 감자’인 의사와 환자 간 직접 원격 진료는 손도 못 댄 셈이다.
스마트 헬스케어 같은 스마트기기를 활용한 건강관리 서비스 규제도 마찬가지다.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의 인공지능(AI) 채팅 서비스로 증상을 설명해주거나 스마트 워치로 혈압을 측정하는 것을 ‘의료행위’라고 본다면 의료인이 아닌 일반 기업은 서비스를 할 수 없다. 의료행위는 의료인만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는 현행 의료법에 위배되기 때문이다. 어디까지를 의료법상 의료행위로 판단할 것인지에 대한 해석이 필요한 이유다. 하지만 정부는 이번 대책에서 “현행 의료법상 의료행위와 건강관리 서비스 구분이 모호하다”며 “비의료 건강관리 서비스 매뉴얼을 마련하고 의료법상 의료행위 유권해석을 강화하겠다”고만 언급했다. 노동계 반발이 큰 탄력근로제 단위 기간 확대도 “연내 방안을 마련하겠다”는 입장만 나왔다. 조영무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규제 혁신은 리더십의 영역”이라며 “소비자의 편익이 더 크다고 판단될 때에는 강력한 국민적 지지를 얻은 리더십으로 타개하는 게 필요한데 우리는 그 기회를 이미 놓쳐가고 있다”고 말했다. /세종=한재영·빈난새기자 jyha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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