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는 한 인간에게는 작은 발걸음이지만 인류에게는 위대한 도약입니다(That‘s one small step for a man, one giant leap for mankind).” 미국의 닐 암스트롱(1930~2012년)이 지난 1969년 아폴로11호를 타고 인류 최초로 달을 밟으며 한 말이다.
우여곡절 끝에 달에 첫발을 디딘 암스트롱의 인간적 고뇌를 다룬 ‘퍼스트맨’이라는 영화를 보면서 그의 말에 여운이 남는다. 우주를 다뤘지만 ‘그래비티’나 ‘인터스텔라’처럼 공상과학(SF) 영화가 아니라서 밋밋하고 지루한 감이 있지만 냉전기 미국의 ‘아폴로 계획’과 소련의 ‘루나 계획’을 떠올릴 수 있어 의미가 있었다. 우리나라도 미국이 달 궤도를 도는 국제우주정거장을 오는 2022년부터 구축할 때 일정 부분 참여하기 위해 한국항공우주연구원에서 제안서를 보내놓아 관심을 끈다.
앞서 미국은 1972년 아폴로17호, 소련은 1976년 루나24호를 마지막으로 유인 달 탐사를 중단했다. 이미 여러 차례 우주비행사가 직접 달을 밟은데다 각자 천문학적 예산 투자를 지속하는 것이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당시 우주를 향한 여정은 소련이 먼저 시작하고 더 오래 했다. 1957년 스푸트니크1호 위성을 지구궤도에 쏘아 올려 미국에 큰 충격을 안겼다. 소위 ‘스푸트니크 쇼크’다. 1959년 1월에는 무인우주선 루나1호를 달 가까이 보냈고 1961년에는 유리 가가린이 인류 최초로 지구를 한 바퀴 돌고 돌아왔다. 그는 “지구는 푸른빛이다. 멋지고 경이롭다”는 말을 남긴다. 이에 위기감을 느낀 미국의 존 F 케네디 대통령은 1961년 “1960년대가 끝날 때까지 인간을 달에 착륙시켰다가 무사히 지구로 귀환시키겠다”고 밝히며 ‘제미니 계획’ 등을 거쳐 아폴로 계획에 들어간다.
하지만 1967년 아폴로1호 훈련 도중 화재로 3명의 우주비행사가 목숨을 잃는 비극이 발생해 1년 반 이상 아폴로 계획이 중단된다. 그러다 1968년 10월 아폴로7호가 260시간 동안 지구를 163바퀴 돌 때 처음으로 TV 생중계가 이뤄졌다. 그해 12월에는 아폴로8호가 달 주위를 한 바퀴 돌며 우주인 3명이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귀환하는 데 성공했다. 1969년 아폴로9호는 지구를 돌며 사령선과 착륙선 간 도킹 훈련을 했고 아폴로10호는 달을 31바퀴 돌며 착륙선이 달에 9㎞까지 접근했다 귀환했다.
드디어 1969년 7월21일 아폴로11호의 닐 암스트롱과 버즈 올드린이 발사 5일째 ‘고요의 바다’에 내리며 인류가 처음으로 다른 천체를 밟게 된다. 마이클 콜린스는 사령선에서 달을 돌며 사진을 찍었다. 그해 11월에는 아폴로12호가 ‘폭풍의 대양’에 내려 34㎏의 돌을 재취했다.
아폴로13호는 1970년 4월 산소탱크가 파손돼 달 착륙을 포기하고 돌아왔고 아폴로14호는 1971년 초 달의 ‘프라마우로’에 내려 손수레로 42㎏의 돌을 가져왔다. 아폴로15호는 1971년 여름 달에 착륙해 ‘로버’라는 차를 활용해 착륙선에서 9.6km거리까지 탐사했다. 아폴로16호는 1972년 4월 20시간 넘게 달에 머물며 95kg의 돌을 채취했고 그해 12월 아폴로17호는 지질학자인 H H 슈밋과 생쥐 20마리를 싣고 달에 다녀왔다.
아폴로 계획에는 무려 250억달러(요즘 기준 수백조원)가 투입됐으며 총 6번, 12명의 우주비행사가 달에 착륙했다. 지진계와 태양열바람 측정기, 레이저광선 반사기를 설치하고 달의 흙과 돌을 가져왔다. 이 흙으로 식물을 키웠더니 지구의 기름진 땅에서보다 갑절이나 빨리 성장했다. 달이 지구와 비슷한 45억~46억세이며 지하자원도 많고 인력이 얼마나 되는지도 파악할 수 있었다.
여전히 암스트롱이 달에 내린 것은 미국의 조작이라는 음모론도 있으나 아폴로 계획을 살펴보면 그런 말은 온당치 않다. /고광본선임기자 kbgo@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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