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의 좌편향 이데올로기 경제정책이 우리나라 경제와 민생을 망치고 있습니다. ‘소득주도 성장’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된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 근로시간 단축 등이 좌편향 경제정책의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일자리수석을 없애고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을 시장의 원리를 믿는 사람으로 즉각 교체해야 합니다.”
지난달 2일 취임해 25일로 취임 54일째를 맞은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는 이날 국회 의원동산 사랑재 앞 잔디밭에서 서울경제신문 취재진과 마주 앉아 “대표가 된 후 수많은 중소 상공업 단체 관계자, 기업인, 일반 국민들을 만났는데 그들은 한결같이 이대로 가면 우리나라 경제가 망한다는 위기의식을 갖고 있었다”며 이같이 말했다. 지난 26년간 당대표 3번, 국회의원 4선, 경기도지사, 보건복지부 장관 등을 지낸 그는 한국 정치사의 대표적인 ‘구루’다. 손 대표는 화창한 가을 날씨 속에 1시간가량 진행된 인터뷰 내내 일체의 문서를 보지 않고 보좌진의 도움도 받지 않은 채 10여개의 질문에 거침없이 답변을 이어갔다.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서는 관록과 경륜이 묻어났다.
손 대표는 에둘러 가지 않고 급등한 최저임금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하며 해법도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소상공인·중소기업·자영업자 중에는 최저임금을 지불할 능력이 없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러니 직원을 자를 수밖에 없고 실업자는 늘어날 수밖에 없는 것이죠. 음식·도소매·시설관리업에서만 1년간 32만개의 일자리가 사라졌습니다. 편의점만 해도 지난 2017년 평균 고용인원이 4.5명이었는데 2018년 3.5명으로 줄었습니다. 오죽하면 한정식집 주인 아주머니가 주방에서 일할 사람을 못써 단품 메뉴만 내놓겠습니까.”
그는 “올해 16.4% 오른 최저임금을 내년에 또 10.9% 올리게 되면 이들은 살 수가 없다”며 “최저임금 인상을 취소하면 가장 좋겠지만 사회적 합의라 그럴 수 없다면 최소한 인상 시점이라도 6개월 늦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바른미래당은 이를 당론으로 채택해 입법 작업을 추진할 방침이다. 아울러 최저임금의 지역·직종별 차등화에도 당력을 쏟을 계획이다.
손 대표는 현재 위반 시 처벌이 유예되고 있는 근로시간 단축과 관련해서는 상황을 따지지 않고 강제해서는 안된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는 일률적인 근로시간 단축이 언론의 근무환경에 미칠 여파를 예로 설명했다. “근로시간이 단축되면 애 있는 기자는 도움이 될 겁니다. 그러나 써야 할 기사를 안 쓸 수도 없고 충원이 안 되면 다른 기자들은 일이 더 늘 수 있습니다. 개별 수입은 줄겠죠. ‘저녁이 있는 삶’도 먹을 게 있어야 살 것 아닙니까.”
손 대표는 한발 더 나아가 문재인 정부의 좌편향 경제정책의 틀을 송두리째 바꿔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자리수석과 일자리위원회를 없애고 장 실장과 김 경제부총리 등 경제 수장을 바꿔야 한다는 게 그의 판단이다. “현 정부에서는 ‘평등한 기회, 공정한 과정, 정의로운 결과’라는 구호만 난무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경제는 시장에서 움직이고 일자리는 기업이 만든다는 게 평범한 진리입니다. 정부가 하면 무리수가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시장을 존중해야 하고 시장을 무시하는 사람은 교체해야지요. 국민이 믿고 맡길 만한 사람을 세워 경제의 틀을 바꿔야 합니다.”
정치 구루에게 가을바람과 함께 정치권에 일고 있는 ‘범보수 통합’ 물결에 대해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손 대표는 자유한국당이 추진하고 있는 내년 초 통합 전당대회와 관련해서는 “얘기할 가치가 없다”면서도 “한국당이 하고자 하는 보수 대통합은 결국 분열될 수밖에 없다”며 말을 이어나갔다. 그는 “한국당 의원이 112명이라고 하지만 ‘중구난방’”이라며 “한국당이 말하는 보수 통합을 하고 나면 결국에는 극우·냉전보수, 소위 ‘꼴통 보수’만 남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화제는 자연스럽게 정계 및 선거제도 개편으로 옮아갔다. “앞으로 정치개혁의 기운이 일어날 것입니다. 우리나라 지형을 보면 맨 왼쪽이 정의당, 그다음이 더불어민주당입니다. 오른쪽이 한국당이라고는 하지만 그들은 결코 중도개혁 세력을 대표할 수 없습니다. 개혁보수와 합리적 진보가 통합돼 거대한 ‘중도’ 진영을 이룰 겁니다. 중도가 뭐냐고 묻는다면 오른쪽도 왼쪽도 아닌 ‘옳은 쪽’이라고 볼 수 있겠죠. 그 중심에 바른미래당이 있을 것입니다.”
손 대표는 다당제는 이제 거스를 수 없는 대세라는 점도 강조했다. 그는 “다당제를 제도화하는 게 바로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 등의 선거제도 개편이 될 것”이라며 “내가 생각하는 우리나라의 가장 바람직한 정치체제는 ‘독일식 합의제 민주주의’”라고 밝혔다. 독일식 합의제 민주주의는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기반한 체제로 이 제도 하에서는 ‘승자독식 양당제’보다 ‘다당제 협치’가 힘을 얻게 된다. 물론 ‘제왕적 대통령’은 존재할 수 없다. 청와대의 제왕적 통제가 한국처럼 센 곳이 없다는 게 손 대표의 진단이고 그런 만큼 제왕적 대통령제를 폐지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손 대표가 잠시 커피를 한 모금 마시는 틈을 타 조심스럽게 답보 상태인 지지율에 대한 얘기를 꺼냈다. 그는 “지금 미약한 것은 사실이지만 연연할 이유는 없다”며 “국정감사가 끝나면 사무처 연수회를 할 텐데 그러면서 사무처가 하나가 되고 내부 혁신을 하고 나면 바른미래당의 가능성을 높게 평가하는 사람들이 늘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최근 조직강화특별위원회 회의에 참석했는데 우리 최고위원들이 추천한 위원 가운데 30대가 3명이나 된다”며 “미래를 보고 나간다는 확고한 의지와 신념이 있기 때문에 현재의 지지율은 별로 우려할 필요가 없다. 다가오는 총선이 지나면 바른미래당이 제2당이 돼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해 질 녘 인터뷰 말미에 2008년 대통합민주신당, 2010년 민주당에 이어 올해 바른미래당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손 대표에게 바른미래당의 지난 8개월에 대한 자평을 요구했다. “국회의원 30명 정당이 할 수 있는 역할 이상을 했습니다. 국회 특수활동비 폐지와 특별위원회 구성에도 앞장섰어요. 판문점선언과 평양공동선언, 남북군사합의서 비준과 관련해서도 한반도가 평화로 나가는 길에서 국론 분열, 남남 갈등을 막기 위한 차별화된 목소리를 냈습니다. 이념 스펙트럼이 넓다는 지적이 나오는데 시간이 지나면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겁니다.”
/임지훈·송주희기자 jhlim@sedaily.com 사진=송은석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