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산 신약’들이 부활의 날갯짓을 하고 있다. 많은 자금을 투입해 개발됐음에도 시장에서 성과를 내지 못해 제약사의 속을 태웠던 약들이다. 하지만 성분을 추가하고 치료질환을 늘리는 등 국내 제약사의 장점인 ‘개량’으로 재도약에 성공하는 모양새다.
25일 제약업계에 따르면 주요 국산 신약들이 지난 3분기까지 매출을 전년보다 크게 늘렸다. 출시된 지 5~10년가량 된 약들이 대부분으로 최근 개량을 통해 상품성을 개선한 제품들이다.
대표적인 게 대원제약의 소염진통제 펠루비다. 지난 2007년 국산 신약 12호로 출시됐지만 지난 2014년까지 연 매출이 40억원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던 펠루비는 지난 3분기까지 171억원을 벌어들였다.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2배 이상 벌어들인 셈이다. 올해는 처음으로 단일 제품으로 매출 200억 돌파가 확실시된다.
환자의 눈높이에 맞춘 개량이 주효했다. 대원제약은 지난 2015년 기존 펠루비에 더해 ‘펠루비서방정’을 내놓으며 국내 진통소염제 중 처음으로 해열 적응증을 추가하고 하루 복용횟수를 3번에서 2번으로 줄였다. 그리고 환자가 먹기에 불편하다는 지적에 따라 알약의 크기도 확 줄였다.
일양약품의 역류성 식도염치료제 ‘놀텍’도 지난해 헬리코박테 제균 적응증을 추가하며 3·4분기까지 지난해보다 10% 가까이 늘어난 184억원을 벌어들였다. 놀텍은 국산 신약 14호다.
그런가 하면 기존 약에 성분을 추가해 효능을 극대화하는 방식으로 다시금 성장을 시작한 제품들도 있다. LG화학(051910)이 개발한 국산 신약 19호 ‘제미글로’가 주인공이다. 제미글로와 제미매트를 합한 제미글로 제품군의 매출은 3분기까지 누적 매출은 630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549억원보다 14.8% 증가했다. 제미글로에 또 다른 당뇨병 치료 성분을 추가한 개량형 제품인 제미메트가 매출 증가를 이끌었다. 지난 2012년 제미글로를 출시한 LG화학은 글로벌 제약사 당뇨병 치료제인 자루비아와 트라젠타에 밀려 고전해왔지만, 최근 제미매트 출시로 시장 점유율을 크게 늘렸다.
LG화학 관계자는 “올해 제미글로군 매출은 800억원, 내년에는 1,000억원 정도를 목표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제미글로가 국산 신약 중 처음으로 매출 1,000억원을 넘는 이른바 ‘블록버스터’ 신약이 될 수 있을지도 관심이다.
국산 신약 15호인 보령제약(003850)의 고혈압 치료제 ‘카나브’ 제품군도 3분기까지 매출이 483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406억원보다 20% 가까이 늘었다. 기존 치료제인 카나브에 또 다른 고혈압 치료 성분을 추가한 개량형 제품인 듀카브의 매출인 전년 대비 2배 가까이 늘며 성장의 원동력이 됐다.
국산 신약은 지난 1999년 SK케미칼의 항암제 ‘선플라’를 시작으로 최근 개발된 CJ헬스케어의 역류성 식도염 치료제 ‘케이캡’까지 모두 30개다. 하지만 신약으로 인정받더라도 마케팅 전략의 실패와 경쟁사의 가격 공세 등으로 인해 기대만큼 주목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일부 제품은 별다른 매출을 올리지 못하다가 시장에서 퇴출되기도 했다. 지난 2016년 기준 국산 신약 9종은 생산이 중단됐고 그나마 생산실적이 있는 20종의 연평균 매출은 105억원에 그쳤다. 이 때문에 국내에서는 대형 제약사 외에는 적극적으로 신약 개발에 뛰어들기가 점점 어려워지는 형편이다.
따라서 업계에선 개량을 통해 국산 신약이 재평가받는 최근의 상황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국내 제약사들이 자신들의 강점인 개량으로 국산 신약의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가고 있다”며 “이 같은 노력이 성공하면 신약을 개발하려는 국내 제약사가 늘 것으로 전망되는 만큼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양사록기자 saro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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