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세 중소기업과 소상공인들이 ‘불황의 늪’으로 깊이 빠져들고 있다. 표면적으로 각종 저리 대출과 지원금, 연구개발(R&D) 지원, 보증 지원 등 정책자금은 늘어나지만 정작 자금 수요가 있는 곳에는 자금집행이 이뤄지지 않는 기형적인 현상이 고착화되고 있다. 조선기자재 전문기업인 B사의 이우진(가명) 대표는 “조선 ‘빅3’의 1차 벤더들조차 자금을 지원받기 어렵게 된 지 한참 됐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그는 “금융권은 원청기업이 어디인지, 수출 비중은 어느 정도인지 등 원·하청 형태에 따라 분류해놓고 자금을 집행한다”며 “원청의 실적이나 재무 상태가 안 좋으면 해당 하청기업까지 불안한 시각으로 보는 게 금융권의 생리”라고 말했다.
자동차 관련 표면처리업을 하는 나광식(가명) 대표는 “실적이 나쁜 회사는 담보가 없으면 신용보증기금이나 기술보증기금이 보증을 해줘야 하는데 회사 신용등급이 낮아 서로 손사래를 친다”며 “자동차 부품업체들의 경우 국내 대형 자동차업체의 1차 벤더조차 자금을 지원받기 힘들다”고 귀띔했다. 뿌리산업 분야의 한 관계자는 “최저임금 인상으로 타격이 컸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일감까지 줄면서 고통이 더욱 커지고 있다”며 “앞으로도 금리 인상, 원유 등 원자재가 상승 등으로 실적은 더욱 나빠지고 자금 지원은 어려워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정책자금 집행기관에서도 이 같은 현장의 목소리에 수긍한다. 익명을 요구한 정책자금기관 관계자는 “실무선에서 대출을 집행하는 경우 아무리 사업 모델이 좋아도 현금 흐름이 좋지 않으면 리스크를 떠안고 진행하기 어렵다”고 털어놨다. 이 관계자는 “제조업에 대한 정책자금 지원 역시 담보를 잡고 가는 케이스가 대부분”이라며 “신용대출로 가게 되면 근거가 필요하니 이 또한 신용등급 위주로 집행할 수밖에 없다. 시중은행과 뭐가 다르냐고 하겠지만 실무 입장에서는 리스크를 최대한 줄여야 책임 소재를 피할 수 있다고 본다”고 해명했다.
/맹준호·이수민·김연하기자 next@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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