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박공유 허용범위 확대와 투숙객 안전 확보 등 제도정비 병행”
“비의료기관이 제공하는 건강관리서비스 범위·기준을 설정(하기 위해) 비의료 건강관리서비스 매뉴얼 마련, 의료법상 의료행위 유권해석 강화”
정부가 지난 24일 내놓은 ‘혁신성장과 일자리 창출 지원’ 대책 가운데 규제혁신 관련 주요 내용입니다. 이 이상 구체적인 실행계획은 없는데, 그나마도 과거에 이미 발표했거나 지금 시행 중인 것들이 대부분이어서 ‘재탕·맹탕’이란 십자포화를 피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카풀·에어비앤비 합법화 이슈가 걸린 공유경제의 경우 정부는 “큰 방향성은 제시했다”지만 기존 업계의 반발에 오히려 1년 전보다도 후퇴했다는 평가도 나옵니다.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좀 더 나갔으면 하는 생각이 있었다”며 “솔직히 우리의 현실이고 실력”이라고 한 이번 규제혁신 방안, 뭐가 문제였을까요.
이번 대책에는 투자 확대, 공공기관 단기일자리 5만9,000개 지원, 유류세 15% 한시 인하, 핵심규제 혁신 등의 내용이 담겼습니다. 총 16쪽짜리 대책 가운데 규제 혁신 분량은 단 2쪽입니다. △건강관리서비스 및 혁신의료기술·제약 활성화 △의료서비스 접근성 향상을 위한 원격협진 확대 △공유경제 확대 △해양·산악관광자원 개발을 위한 특구 조성 등 총 4개 꼭지로 구성돼 있는데요. 새로운 내용은 해양관광진흥지구·산림휴양관광특구를 지정하겠다는 것이 사실상 전부입니다. 나머지는 이미 정부가 과거에 신산업 활성화·규제혁신 과제로 발표해 진행 중이지만 감감무소식이거나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한 내용이 그대로 담겼습니다.
◇1년째 제자리걸음 공유경제
최근 다시 ‘뜨거운 감자’가 된 공유경제가 대표적입니다. 일부 택시업계의 반발이 극심한 카풀 서비스를 두고 정부는 이번에도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했습니다.
이번 대책에서 정부는 “신교통서비스를 활성화하되 기존 운수업계 경쟁력 강화 등 상생방안 마련을 병행하겠다”고만 했는데요. ‘카풀’이란 말은 꺼내지도 못한 채 ‘신교통서비스’라는 모호한 용어를 썼습니다. 지난해 12월 ‘2018년 경제정책방향’을 발표하면서 “유상 카풀 서비스 운영기준과 택시·카풀업계 간 공존방안을 (올해 3월까지) 마련하겠다”고 밝힌 데 비하면 오히려 한 발짝 물러난 모양새까지 납니다.
여기에는 최근 총파업까지 불사한 택시업계의 반발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소관 부처와 정치권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후문입니다. 고형권 기획재정부 1차관은 지난 23일 정부세종청사 브리핑에서 ‘신교통서비스’의 뜻과 카풀 서비스 관련 구체적인 방안을 묻는 질문에 “(신교통서비스라는) 표현도 관계부처 간에 많은 협의와 조정을 거쳐서 나온 표현”이라며 “예를 들어서 설명하면 또 여러 가지 다른 어려움이 있을 수 있어서 더 나아가서 설명하지 않겠다”고 난색을 표했습니다.
에어비앤비와 같은 숙박공유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번 대책에서 숙박공유 관련 내용은 “허용범위 확대와 투숙객 안전 확보 등 제도정비 병행”이란 한 줄이 전부입니다. 지난해 12월 ‘2018년 경제정책방향’에서 정부가 밝힌 “공유 민박업 신설로 숙박공유를 허용”하겠다는 입장에 비하면 다소 모호합니다. 이 역시 기존 숙박업계의 반대와 이를 의식한 정치권의 영향으로 보입니다. 최근 국회는 ‘규제프리존특별법’ 대신 ‘지역특화발전특구에 대한 규제특례법 전부개정안‘을 통과시켰지만, 여기에는 도시에서 숙박공유를 내·외국인이 모두 이용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는 내용은 빠졌습니다. 결국 정부는 관광진흥법을 개정해 숙박공유 허용범위를 넓히는 대안을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업계는 ‘속이 터진다’는 입장입니다. 국내 첫 숙박공유 스타트업인 ‘코자자’의 조산구 대표는 지난 24일 김 부총리를 만난 자리에서 “7년간 (숙박공유) 사업을 하면서 이른바 ‘에어비앤비’ 법이라는 것이 하나도 바뀌지 않았다”며 “가슴이 터지는 심정”이라고 토로했습니다. 승합차 공유서비스인 ‘벅시’의 이태희 대표도 “(카풀 서비스 업체인) 카카오모빌리티나 쏘카가 아닌 벅시가 간담회에 초대된 것은 사회적 논란이 없어서 아닐까 한다”며 “뒤집어 생각하면 새 사업을 할 경우에 이런 자리에 초대를 받지 못한다는 것”이라고 꼬집었습니다.
◇자칫하면 ‘불법 딱지’ 헬스케어산업…실적 ‘제로’ 유권해석, 또 대책으로
현행법 해석이 없어 사업화가 막힌 건강관리서비스도 답답하긴 마찬가지입니다. 헬스케어 산업은 고령화 시대에 가장 대표적인 유망산업으로 꼽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걸음마조차 떼지 못한 상태입니다. 의료행위는 의료인만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는 현행 의료법에 위배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가령 스마트폰 앱의 인공지능(AI) 채팅 서비스로 자신의 증상을 묻고 스마트 워치로 혈압을 측정하는 서비스는 외국에서는 이미 흔하게 쓰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불법’의 경계에 있어 사업화가 불가능합니다. 혈압을 측정하고 빅데이터로 증상을 검색해 설명해주는 행위도 ‘의료행위’라고 본다면 의료인이 아닌 일반 기업이 서비스를 했다가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습니다. 어디까지를 의료법상 의료행위로 판단할 것인지에 대한 해석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정부가 이번 대책에서 “현행 의료법상 의료행위와 건강관리서비스 구분이 모호하다”며 “비의료 건강관리서비스 매뉴얼을 마련하고 의료법상 의료행위 유권해석을 강화하겠다”고 발표한 것도 이 때문입니다. 방향은 맞습니다. 문제는 이 대책도 9개월 전 발표의 ‘재탕’인데다, 이미 가동 중인 유권해석 서비스가 유명무실한데도 개선점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정부는 지난 2월 ‘현장 밀착형 규제혁신 추진방안’을 발표하면서 올해 3월까지 민관합동 법령해석팀을 신설해 ‘원스톱 유권해석’을 해주겠다고 밝혔습니다. 이번 대책 내용과 사실상 같습니다. 하지만 3월까지 신설하겠다던 법령해석위원회는 기존 계획보다 두 달 늦은 5월에야 출범했습니다. 위원회의 구성과 운영방침, 회의 일정, 안건 등은 모두 비공개입니다. 정부는 이익집단의 로비를 우려해 비공개로 운영한다는 입장인데 정작 업계에서는 불확실성이 커 활용하기 어렵다는 얘기가 나옵니다. 스타트업의 경우 위원회의 존재조차 잘 모르는 경우도 많은데다 자칫 ‘불허’ 판단을 받았다가 사업이 원천 봉쇄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입니다.
활동 실적도 ‘제로’입니다. 10월 말인 현재까지 회의는 네 차례 열렸고 유권해석 요청도 단 1건 들어와 이제 논의 시작 단계입니다. 신속한 유권해석도 어렵습니다. 복지부 관계자는 “의료계·법조계·시민단체 등 이해관계자가 워낙 많아 논의에 시간이 걸린다”고 말했습니다.
이번 대책에는 이런 미비점에 대한 개선점은 전혀 담기지 않았습니다. ‘비의료 건강서비스 매뉴얼을 마련하겠다’는 내용이 있지만 이 역시 업계의 요청에 따라 유권해석 사례가 쌓이고 난 후의 이야기여서 실효성이 없습니다. 복지부·기재부 관계자는 “‘유권해석 강화’란 기존 법령해석위원회를 그대로 운영한다는 뜻”이라며 “의료법 개정이 없는 한 유권해석을 선제적으로 하기는 어렵다”고 전했습니다.
정부도 속내는 답답합니다. 김동연 부총리는 지난 25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이번 규제혁신 방안이 실망스럽다는 야당 의원들의 질타에 “미흡한 점이 없지 않다”며 “큰 방향은 제시했지만 방향 자체에 대해서도 논란이 많았고 이견이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규제혁신을 두고 당정청 협의 과정이 원활했느냐는 질문에 김 부총리는 “좀 더 나갔으면 하는 생각이 있었다”며 본인의 생각을 관철하지 못했음을 우회적으로 인정하기도 했습니다. 정부는 올해 안에 공유경제 활성화 방안을 재차 발표할 계획입니다.
당장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 업계와 전문가들은 청와대와 정부가 이견 조정 역할을 제대로 해달라고 당부합니다. 조영무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규제 혁신은 리더십의 영역”이라며 “어디서도 나쁜 소리를 안 듣겠다고 하면 바뀌는 게 없다”고 꼬집었습니다. 이어 “외국에서도 ‘우버’를 처음 도입할 때 기존업계의 반대가 있었지만 일반 가계나 소비자의 편익이 더 크고 그를 통해 우리 경제가 더 큰 이익을 얻을 수 있다고 판단했기에 밀고간 것”이라며 “강력한 국민적 지지를 얻은 리더십으로 타개해갈 필요가 있지만 우리는 그 기회를 이미 놓쳐가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빈난새기자 binther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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