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호화폐 종류 2,081개에 시가총액은 2,038억달러(약 232조원).’
31일은 비트코인 창시자 ‘나카모토 사토시’가 9쪽짜리 논문을 발표한 지 10년째 되는 날이다. 국내에서는 지난해 말 암호화폐 투기 광풍 논란이 불거지면서 실명거래 의무화와 암호화폐공개(ICO) 전면 금지 등 정부가 대대적인 규제에 나섰지만 해외에서는 여전히 암호화폐 투자에 대한 찬반 논란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특히 ICO 허용 등 암호화폐 정책에 우호적인 싱가포르나 스위스 등은 암호화폐를 기반으로 한 블록체인 기술과 관련 산업이 빠른 속도로 자리를 잡고 있어 국내에서도 블록체인 산업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암호화폐 시장을 키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30일 암호화폐 정보제공 사이트 코인마켓캡에 따르면 비트코인이 나온 지 10년 만에 암호화폐 시가총액이 200조원을 넘어섰고 종류만도 2,081개에 달한다. 지난 2013년만 해도 시가총액이 22억달러에 불과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5년 새 100배 가까운 성장이다.
암호화폐 시장이 이처럼 급성장했지만 국내외에서는 여전히 암호화폐는 블록체인 산업을 키우는 마중물인지, 아니면 과거 튤립 열풍과 같은 투기수단에 불과한지에 대한 찬반양론이 격하게 맞붙고 있다.
긍정론자들은 블록체인을 ‘제2의 반도체’ ‘제2의 인터넷 혁명’으로 일컬을 정도로 중요하고 이를 활성화할 수 있는 게 암호화폐라는 점을 강조한다. 국내에서 금지된 ICO를 단계적으로 허용하겠다는 제주도의 노희섭 미래전략국장은 “암호화폐와 블록체인 산업을 서로 떼어내 생각할 수 없다”며 “블록체인 산업 육성을 위해 암호화폐 시장을 같이 키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암호화폐 전도사로 알려진 오정근 건국대 교수는 “ICO가 투자자 보호 문제가 여전히 남아 있지만 자본시장을 통해 자금을 마련하기 어려운 블록체인 스타트업이나 신생기업에 새로운 조달처로 급부상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투기를 부추기는 암호화폐의 가격 변동성을 이유로 암호화폐의 한계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홍기훈 홍익대 교수는 “암호화폐는 가격 등락폭이 크기 때문에 ‘화폐’의 기능을 할 수 없다”면서 “새로운 고위험·고수익 투자자산일 뿐”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에서 특히 암호화폐 투자가 많은 것은 그만큼 액티브펀드와 같은 다른 고수익 투자수단이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해외에서도 암호화폐를 둘러싼 낙관론과 비관론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올해 초 열린 세계경제포럼(WEF·다보스포럼)에서는 오는 2025년까지 전 세계 은행의 80%가 블록체인 기술을 도입하고 2027년 전 세계 총생산(GDP)의 10%가 블록체인에 저장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반면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로버트 실러 예일대 교수는 “비트코인에 대한 관심은 유행병 같은 열풍이자 투기적 거품”에 불과하다고 일축했다. 하와이 마노이대 연구팀은 비트코인 사용이 계속 증가할 경우 2033년에는 화씨 4도를 올릴 만한 수준으로 지구온난화가 가속화될 것이라며 환경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편 비트코인은 2008년 10월31일 ‘비트코인:개인 간 전자화폐 시스템’이라는 제목의 논문이 온라인 암호학 커뮤니티에 공개되면서 대중에 알려졌다. 이 논문의 저자이자 비트코인의 창시자인 나가모토 사토시는 여전히 실존 인물 여부가 판가름나지 않았지만 블록체인과 암호화폐의 개념을 전 세계에 널리 퍼뜨렸다. 논문에는 머지않아 블록체인이라는 기술을 통해 중앙통제가 없는 투명한 거래 체계가 실현될 것이라는 주장이 담겼다. 블록체인이란 데이터를 중앙서버에 집중 보관하지 않고 분산저장하는 기술로 공개형인 퍼블릭 블록체인과 폐쇄형인 프라이빗 블록체인으로 나뉜다. 이 중 퍼블릭 블록체인의 경우 블록체인을 형성할 때 참여자에게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수단으로 암호화폐가 지급된다.
비트코인은 처음 알려졌을 당시만 해도 큰 관심을 받지 못했다. 2011년 초반까지만 해도 1비트코인의 가격은 1달러 안팎에 불과했다. 암호학계에서는 그 잠재 가능성을 충분히 인정하고 있었지만 금융시장에서는 비트코인의 시장성을 낮게 보고 있었던 셈이다. 그러던 비트코인이 시장의 주목을 받은 시기는 2013년이었다. 포브스에서 ‘비트코인의 해’라고 칭한 2013년에는 미 암호화폐거래소 코인베이스가 사상 처음으로 비트코인 거래 규모 100만달러를 돌파했다. 하지만 2014년 해킹으로 일본의 거래소 마운트곡스가 파산하는 사태가 벌어지면서 시장은 출렁였고 2015년부터 꾸준히 시장 규모가 커졌다가 지난해 말 1비트코인 가격이 2만달러에 육박하며 정점에 이르렀다. /김기혁·박민주기자 coldmetal@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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