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에서는 주택 가격 하락의 부작용을 우려하는 논의가 오갔습니다. 한 금통위원은 “민간소비가 회복세를 이어가고 있는데 주택 가격이 하락하는 일부 지역은 마이너스(-) 자산효과가 나타날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에 한은 집행부는 “일부 지역에서 회복세가 제약될 수 있다”고 답했습니다. ‘역(逆) 부의 효과’에 대한 우려가 제기된 것입니다. ‘역 부의 효과’는 부동산이나 주식 가격 하락이 소비에 악영향을 미치는 현상을 가리킵니다. 이 금통위원의 우려는 현실화되고 있습니다.
부동산과 주가 하락이 겹친 자산 디플레이션((Deflation)과 과도한 가계빚이 폭발하는 부채(Debt) 위기가 동시에 오는 ‘더블 D’의 공포가 엄습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때 심리적 마지노선인 2000(코스피)까지 붕괴됐던 주식시장은 미중 무역분쟁 해소 기대감에 다시 2000대를 회복했지만 대외여건에 따라 언제 다시 급락할지 알 수 없습니다. 아파트 가격은 9·13대책 이후 강남3구를 비롯한 주요 도시에서 내림세로 돌아섰습니다. 심지어 강남 재건축 아파트 가격까지 넉달만에 하락세로 돌아섰다는 소식도 들려옵니다. 여기에 11월 한국은행의 금리 인상이 겹치면 본격적인 자산 디플레이션과 그에 따른 부채 공포가 본격화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입니다. 부동산·주식 등 자산 가치 하락→소비심리 위축 및 부채 부담 증가→소비감소→내수위축→경기침체 심화→자산가치 하락이라는 악순환의 고리가 형성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이런 우려가 아직 이르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현실화될 가능성에 주의해야 한다고 입을 모읍니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경영학부 교수는 “경제가 하강 국면에 들어선 것이 뚜렷한 상황에서 자산 가격 하락까지 겹치면 부채상환 부담이 늘어 소비에 심각한 악영향을 준다”며 “금리 인상과 대출규제 강화로 유동성까지 급속하게 줄어들면 부채위기가 현실화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성태윤 연세대 교수도 “부동산과 주식 가격 하락은 경제주체의 심리를 위축시킬 수 있다”며 “지금은 돈줄을 조이는 속도를 늦추고 경기부양에 더 힘을 쏟아야 할 때”라고 했습니다.
단국대 김태기 경제학과 교수는 현 시점이 경제위기의 2단계라고 진단합니다. 총 5단계의 위기 중 벌써 중간단계에 가까웠다는 얘기입니다.
과거 사례를 보면 통상 증시 급락은 부동산 급락으로 이어집니다. 지난 2007년 말께 국내 증시는 하락세에 접어들었고 당시 ‘불패신화’를 자랑하던 전국 집값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계기로 하락장세에 빠져들었습니다. 집값 급락으로 우리 경제는 깡통 아파트, 하우스푸어 등이 속출하며 극심한 ‘부채위기’에 시달렸습니다. 하지만 당시 우리 경제는 디레버리징(부채 해소)에 실패했고, 향후 경기침체가 지속될 경우 그 대가를 치를 수 있습니다.
이미 부동산 시장은 침체 징후를 보이고 있습니다. 9·13대책 이후 강남 3구의 아파트 값이 지난주 하락세로 돌아섰고 지방의 아파트 값도 10월 들어 3% 이상 빠졌습니다. 일각에서는 최근 부동산과 주식 등 자산 가격 하락이 글로벌 위기 당시보다 더 심각하다는 우려도 나옵니다. 글로벌 위기 때는 우리의 주력 산업이 견고한 성장세를 보였지만 지금은 반도체를 제외한 조선·자동차 등 주력 산업이 위기에 빠진데다 성장률이 2%대로 추락하고 고용참사가 이어지는 등 실물경제가 악화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산 가격 하락은 일차적으로 민간소비에 영향을 미칩니다. 최근 설비 및 건설투자가 마이너스 행진을 지속하는 상황에서 미약하게나마 증가세를 유지하며 경제를 떠받치던 소비까지 악화되면 경기 하강 속도는 더 빨라질 수 있습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에 따르면 주택 가격이 10% 하락하면 민간소비는 2.5~4.5% 떨어진다는 추정도 있습니다. 최근 고용쇼크까지 겹친 상황이어서 민간소비 타격은 더 클 수 있습니다.
특히 부동산은 우리 가계 자산의 절반 이상을 차지합니다. 갭 투자 등 빚을 동원한 투자 비중이 높은 비거주 부동산이 전체 부동산 자산의 25%가량을 차지하고 있어 가격 하락에 따른 충격이 특히 큽니다. 부동산 가격 하락이 빚 상환 압력을 가중시켜 연쇄 매도를 불러오고 가격 하락을 가속화시켜 부채위기를 초래한 2008년 위기가 다시 올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한 경제 전문가는 “부동산과 주식 가격이 하락하면 가계의 자산보다 부채가 많아지는 부실 사태가 발생한다”며 “소득이 높은 가계는 이를 버틸 수 있지만 저소득층은 울며 겨자 먹기로 자산 처분에 나설 수밖에 없고 이는 채무불이행으로 이어져 금융기관 부실로까지 전이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물론 최근 증시 및 부동산 가격 하락은 과잉유동성이 회수되는 데 따른 불가피한 현상이라는 분석도 있습니다. 11월 예고된 기준금리 인상과 금융당국의 대출규제 등이 맞물리면서 시중 유동성이 줄어들 조짐을 보이자 자산 가격 하락으로 이어졌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유동성 회수 속도입니다. 금융 안정을 위해 유동성을 회수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회수 속도가 너무 빠르면 경제에 충격을 줄 수 있습니다.
한국은행도 자산 가격 하락과 금리 인상 등이 취약차주에게 직격탄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습니다. 한은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기준 취약차주의 대출 규모는 지난해 말보다 2조4,000억원 증가한 85조1,000억원, 차주 수는 149만9,000명에 달합니다. 취약차주는 제2금융권을 포함한 여러 금융기관에서 돈을 빌린 저소득(하위 30%) 혹은 저신용(7~10등급)자를 말합니다. 취약차주의 대출에서 비은행의 비중은 65.5%로 비취약차주(41.5%)를 크게 웃돌고 있습니다. 그 만큼 고금리에 돈을 빌린 사람이 많다는 얘기입니다. 실제 9월 기준 일반예금은행의 가계대출 금리는 연간 3.62%였던 반면 상호저축은행 금리는 14.55%로 차이가 무려 네 배에 달합니다. 금리가 오르면 이들의 빚 상환 부담이 가중되고 여기에 자산 가격 하락까지 겹치면 우리 금융 시스템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교수는 “경기침체 국면에 자산 가격 하락과 금리 인상이 맞물리면 서민들이 가장 먼저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며 “자칫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을 뒤따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김능현기자 nhkimchn@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