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1위인 미래에셋대우증권도 홍콩에서는 작은 투자은행(IB)에 불과합니다.” (홍콩 소재 글로벌 IB 관계자)
한국의 골드만삭스를 만들겠다는 정부 정책이 본격 시행된 지 1년이 지났지만 아직 한국의 IB와 글로벌 IB 간 격차는 크다. 글로벌 IB 관계자들은 한목소리로 “한국 IB는 전 세계 네트워크와 수십 년간 고객의 믿음을 쌓은데다 대규모 자본까지 가진 글로벌 IB가 되려면 더 많은 시간과 경험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해외 IB가 성장한 배경에는 수십 년 이상 원칙을 지키는 투자와 끊임없는 변화, 자유로운 규제 환경과 조직문화가 있었다.
전 세계 투자 업계를 주름잡는 것은 주로 미국계 IB다. 그중에서도 JP모건체이스와 골드만삭스가 수십 년간 1~2위를 다투며 성장하고 있다. 이들의 역사는 곧 글로벌 IB의 역사다. 리서치 업체인 코얼리션에 따르면 JP모건은 2018년 IB 매출액 1위를 차지했다. 지난 2010년 이후 9년 연속 1위다. 2위는 골드만삭스가 차지했고 3위는 씨티그룹과 모건스탠리, 5위는 뱅크오브아메리카(BoA)메릴린치가 올랐다.
1938년에 설립된 JP모건은 이후 500개 이상의 은행을 인수합병(M&A)했다. 그 결과 현재는 IB·소매금융·신용카드·상업은행·기업금융·자산운용 등 6개 사업 분야가 고르게 전 세계에서 상위를 다투며 시너지를 내고 있다. JP모건의 경우 초반은 IB 위주였지만 이후 상업은행 색채가 더해졌고 이후에는 둘을 결합한 유니버설뱅킹(종합은행)으로 성장했다. 국내 IB 시장이 아직 상업은행과 IB의 경계를 명확히 그은 것과는 다른 환경 덕분에 과감히 변신할 수 있었던 셈이다.
JP모건의 각 사업부는 전 세계에 진출해 있으면서 독립적으로 운영된다. 국내 대부분의 IB가 중앙통제 시스템으로 투자기회를 놓치는 것과 대조된다. 성과에 따른 보상과 승진 역시 아직 국내 IB가 따라잡지 못한 게 현실이다. 다른 업계에 비해 비교적 성과주의가 자리 잡았지만 일부 대형 IB에서는 아직 출신성분을 따지거나 전체 조직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성과 나누기가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JP모건은 최고경영자(CEO)를 비롯한 주요 임직원이 이직하지 않는 문화가 자리 잡고 있는데 이 역시 국내 IB와 다르다.
유동성이 확보된 상태에서만 투자하고 철저히 수익성만 좇으며 임직원의 도덕성을 강조하는 것도 JP모건만의 특징이다. JP모건이 다른 글로벌 IB보다 먼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조짐을 간파하고 서브프라임 모기지 상품에서 가장 먼저 빠져나온 것은 유명한 일화다.
골드만삭스는 IB 영역에만 특화해 전 세계적인 금융기관으로 성공한 케이스다. 1869년에 설립된 골드만삭스는 1900년대 기업공개(IPO)라는 개념을 처음 개척했고 1970년대는 적대적 M&A 방어전략을 펴며 재무자문 분야에서 선구자가 됐다. 1980년대부터 해외진출을 본격화해 아시아 지역의 공기업 민영화의 주역이 됐다.
골드만삭스는 기관투자가의 돈을 끌어와 투자를 주선하는 게 대부분인 국내 IB와 달리 IB 투자수익의 3분의1 이상을 직접투자로 벌어들일 만큼 리스크 관리 능력을 갖췄다. 2015년에는 인터넷은행에 진출하기 위해 GE캐피털 은행의 온라인예금사업을 인수했고 최근에는 스스로를 금융기관이 아닌 정보통신(IT) 기업이라고 자처하며 뉴욕 월가의 가장 적극적인 벤처투자자로 부상했다.
일각에서는 국내 IB가 글로벌 대형 IB를 따라가기보다 특화전략을 내세워야 한다고 지적한다. IB 업계 관계자는 “국내 대형 IB는 아시아태평양 지역 기준으로 봐도 자본 규모가 작으면서 획일적으로 투자하는 경향이 있다”면서 “오히려 미국 내에서도 전문성을 갖고 특화된 라자드나 에버코어 등 부티크 IB 모델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임세원기자 why@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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