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수합병(M&A)이 기업의 성장을 열어주는 보증수표가 아니라는 것은 여러 사례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자동차부품 기업 A사는 전장부품 기업으로의 전환이라는 ‘풍운의 꿈’을 갖고 센서 벤처기업을 인수했다가 사업화 실패로 모기업의 재정 상태까지 어려움을 겪었다. 대기업 B사는 M&A로 신성장동력을 창출하자는 비전을 내세웠으나 ‘어디서, 어떤 기업을 인수하겠다’는 방향이 없었다.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수없이 많은 타깃만 검토하는 비효율을 낳게 됐다.
두 사례는 공통적으로 M&A에 사전 준비가 부족해 실패한 것으로 볼 수 있겠다. 신성장동력 확보 수단으로 M&A를 활용하려는 기업은 ‘왜, 무엇을’이라는 관점에서 M&A 준비 단계를 거칠 필요가 있다. 즉 산업 환경의 변화 속에 어떤 성장의 모습을 지향할지 또는 어떤 변화를 모색할 것인가를 정의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기업이 보유한 핵심 역량을 잘 정의하고 이에 따른 성장 비전의 제시라 할 수 있다.
이렇게 핵심 역량을 정의한 후 성장 방향을 정립했다면 이후에는 어떤 사업영역에서 성장을 추구할 것인가에 대한 답을 찾아야 한다. 이때 중요한 키워드는 ‘연관성’이다. 여기서 연관성이란 핵심 역량에 기반해 새로운 산업에 진입할 때 기존 산업과 유사성일 수도 있고 새로운 역량을 접목할 경우는 솔루션 관점의 연관성일 수도 있다. 실제 PwC 글로벌의 통계에 따르면 M&A를 성공적인 성장 수단으로 활용한 기업의 약 83%는 기존 사업과 인접한 영역으로 진출한 것으로 나타났다. 기존 사업과 ‘너무 멀리 떨어진 사업’으로 진출했다 쇠락의 길을 걸은 우리나라 기업도 많다는 점은 핵심 역량과 인접 사업으로의 진출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방증한다.
M&A 준비의 마지막 단계는 진출하고자 하는 사업영역 내에서 타깃 후보를 검토하는 것이다. 후보 검토 과정에서는 ‘현실적으로 M&A를 추진할 수 있는가’의 관점에서 타깃을 검토해야 한다. 이러한 판단을 위해서는 타깃의 ‘재무적 형편’을 우선 살펴보고 자금 니즈를 확인, 지분구조를 검토해 엑시트(exit)를 원하는 재무적 투자자의 지분이 없는지 등을 우선 살펴보는 과정 등을 거쳐야 한다.
최근 고객사를 방문하면 ‘어디 좋은 회사 없는지, 좋은 매물 있으면 소개해달라’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사실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솔직히 가슴 한구석이 답답하다. ‘도대체 좋은 매물이란 어떤 기준에서 판단해 이야기해야 한단 말인가’ 하고 말이다.
시장에 좋은 물건은 많다. 하지만 ‘내가 맘에 드는, 내가 필요한, 나에게 좋은 물건’은 따로 있다. 아니, 따로 고민해서 정해야 한다. 기업 역시 윈도 쇼핑하듯 출현된 매물을 열심히 검토하거나 좋은 물건을 소개받기보다 먼저 자사의 본질적 핵심 역량은 무엇인지, 그에 맞는 새로운 사업영역은 무엇인지, 그 영역 내에서 살 만한 타깃은 없는지부터 고민해야 한다. 개인이 쇼핑 리스트를 작성하듯 기업도 성장을 위해 M&A를 활용하고자 한다면 ‘준비’부터 시작하자.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