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바이오기업 애브비가 바이오의약품 ‘휴미라’의 유럽 약가를 최대 80%까지 내리는 승부수를 띄우면서 삼성바이오에피스를 비롯한 바이오시밀러(바이오의약품 복제약) 개발사에 비상이 걸렸다. 자가면역질환 치료제 휴미라는 지난해에만 20조원어치가 팔린 글로벌 매출 1위 의약품으로 유럽 시장 규모만 5조원에 이른다.
7일(현지시간) 주요 외신에 따르면 애브비는 노르웨이의 국가의약품입찰에 휴미라 입찰가를 기존보다 80% 저렴한 가격으로 제출했다. 통상 국가의약품 입찰에는 동일 성분 의약품 중 1종만 선정되기 때문에 오리지널 의약품도 가격 경쟁에 나서지만 사실상 원가 수준인 80% 인하는 파격적이라는 분석이다.
앞서 애브비는 실적발표에서 유럽 시장에서 휴미라의 경쟁력을 이어가기 위해 가격 인하를 검토 중이라고 밝힌 바 있다. 업계에서는 지난달 중순 유럽에서 삼성바이오에피스, 암젠, 산도스, 마일런 4개사가 애브비와의 특허협상을 통해 휴미라 바이오시밀러를 동시에 내놓자 이를 견제하기 위한 수순으로 분석했다. 하지만 애브비가 예상을 뛰어넘는 가격 공세에 나서면서 글로벌 바이오업계는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당장 휴미라 바이오시밀러 ‘임랄디’를 유럽에 출시한 삼성바이오에피스는 비상이 걸렸다. 임랄디는 삼성이 글로벌 매출 1위 의약품 휴미라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야심 차게 개발한 제품이다. 휴미라는 환자가 약을 투약하기까지 4단계를 거쳐야 하지만 임랄디는 2단계만 거치도록 자동으로 약물이 투입되는 편의성까지 개선해 일찌감치 가장 강력한 휴미라 바이오시밀러로 꼽혀왔다.
업계에서는 바이오시밀러가 오리지널 의약품과 경쟁하려면 일단 가격이 저렴해야 하기 때문에 임랄디를 비롯한 휴미라 바이오시밀러 4종 모두 가격 인하가 불가피할 것으로 내다본다. 적자를 감수하면서 ‘울며 겨자 먹기’로 제품을 팔아야 하는 처지에 내몰릴 수도 있다는 얘기다.
삼성바이오에피스 관계자는 “북유럽국가는 유럽 전체 의약품 시장의 5% 수준이어서 일단은 별다른 영향이 없을 것으로 본다”며 “다만 가능성이 낮긴 하지만 유럽 의약품 시장 ‘빅5’로 꼽히는 영국, 프랑스, 독일, 스페인, 이탈리아에서도 가격 공세에 나서면 상황이 달라질 수밖에 없을 것”고 말했다.
바이오업계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오리지널 의약품의 전방위적인 저가 공세로 이어지지 않을까 노심초사하고 있다. 막대한 비용을 들여 바이오시밀러를 개발했지만 오리지널 의약품의 가격 인하로 정작 수익성이 담보되지 않는 이른바 ‘치킨 게임’ 양상으로 치달을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최악의 경우 이제 막 성장세에 접어든 글로벌 바이오시밀러 시장 전반이 위기를 맞을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애브비의 이번 전략은 오리지널 의약품인 ‘휴미라’의 경쟁력과 영향력을 대외적으로 공표하는 상징적인 사례”라며 “바이오시밀러의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에 동일한 효능을 환자에게 제공하는 것인데 최대 장점으로 내세웠던 가격 경쟁력이 무너지면 바이오시밀러 존립 기반이 흔들릴 수도 있다”고 말했다.
/우영탁기자 ta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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