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재계에 따르면 정 수석부회장은 지난 9월 승진 이후 처음 중국을 방문해 현대차그룹 한·중·러 문화예술 프로젝트 개막식에 참가했다. 동남아 공유차 서비스기업 그랩과 투자 계약을 맺기 위해 싱가포르를 방문한 지 하루 만에 중국에서 행사를 진행한 것이다. 이 날 오전 중국 공산당 핵심인물과 미팅도 잡혔던 것으로 알려져 중국내에서 활동의 폭도 넓히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현대차는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보복 이후 중국에서 좀처럼 반전을 꾀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 3·4분기 중국에서 18만1,000여대를 판매해 정치 리스크가 한창이었던 지난해 같은 분기(18만8,000여대)에도 미치지 못했다. 증권업계에서는 추정치이기는 하지만 지난달 중국 판매량도 7만대가량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8만여대)보다 오히려 줄어들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중국 일부 공장의 가동률이 절반에 머물고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며 “현대차의 실적을 결정하는 중국 시장의 회복은 시급한 과제”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현대차가 중국의 변화에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자동차업계의 한 관계자는 “2013년 이후 중국 시장에서도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바람이 불기 시작했지만 현대차는 여전히 세단 중심으로 SUV 믹스 대응에 실패했다”며 “저렴한 로컬 업체들이 급성장하면서 중저가 이미지의 현대차가 타격을 입었고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등 정치적 리스크가 마침표를 찍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최근 현대차의 중국 시장 전략에도 변화가 보이고 있다. 지금까지 중국 시장에서의 현대차 이미지는 ‘기술력과 고급스러움’보다는 ‘대중적이고 가성비가 좋은 차량’ 정도로 인식됐다. 실제로 현대차는 중국 시장에 최고급 브랜드인 ‘제네시스’를 출시하지 않고 있다. 또 중국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모델은 준중형 엘란트라(국내명 아반떼)로 전체 현대차 중국 공장 출하량의 30% 이상을 차지할 정도다. 이 때문에 최근에는 현대차가 보유하고 있는 독보적인 기술력과 품질을 통해 중국 소비자들에 대한 인식을 변화시키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실제 전날 현대차는 중국 베이징의 현대모터스튜디오에서 ‘미래 인류-우리가 공유하는 행성(Future Humanity-Our Shared Planet)’을 주제로 한 예술 전시 개막식을 개최했다. 이번 전시는 세계적인 미디어아트 기관 ‘아르스 일렉트로니카’와의 협업을 통해 베이징을 시작으로 서울과 모스크바에서 차례로 같은 주제의 전시를 열어 내년 2월28일까지 전 세계 19명 작가의 작품 약 25점을 선보인다. 현대차는 이번 전시에서 서울과 베이징·모스크바를 이어 글로벌 네트워크를 확보한 자동차 기업임을 어필하고 동시에 가상현실, 인공지능(AI), 로보틱스, 사물인터넷(IoT), 빅데이터와 같은 4차 산업 혁명의 대표 기술들이 접목된 작품들을 대거 선보여 중국 시장에서 현대차의 미래차 기술력을 알릴 기회로 삼을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현대차는 5일부터 중국 상하이 국가회의전람센터에서 열린 ‘제1회 중국 국제 수입박람회’에 참가해 고성능 라인업 ‘N’과 수소 전기차 넥쏘를 공개하고 ‘N’의 중국 출시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정 부회장 역시 이런 변화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정 부회장은 5일 싱가포르에서 차량호출서비스(Car Hailing·카헤일링) 기업 그랩(Grab)과 2억5,000만달러 규모의 지분투자 계약을 맺은 뒤 중국으로 도착한 직후 베이징 현대모터스튜디오에서 열린 전시회 개막식에 참석해 참여 작가들로부터 작품에 대한 설명을 들으며 높은 관심을 나타냈고 허 서기와 만난 후에는 곧바로 상하이 국제수입박람회장으로 이동해 고성능 ‘N’과 수소전기차 전시장을 들러 관계자들을 격려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늦은 감이 있지만 현대차의 SUV 라인이 중국에서 많이 팔려나가고 있다”며 “수소전기차에 대한 평가가 좋은 상황에서 고성능 차량인 ‘N’ 출시되면 반전의 기회를 잡을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성호기자 junpar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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