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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유니콘 키운다]'창업 성지' 실리콘밸리처럼...정부는 '리스크 테이킹'에 집중을

<1>혁신창업 주체는 정부 아닌 기업

美, 규제보다 기업 자율성 존중

스타트업·신기술 투자 등 활기

애플·구글 등 스타기업 키워내

韓정부도 오픈이노베이션 접목

R&D 성실 실패 면책 확대 등

창업 친화적 환경 조성 나서야

홍종학(앞줄 오른쪽 두번째)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지난 9일 ‘2018 벤처창업 페스티벌’을 맞아 부산 해운대 구남로에 마련된 벤처제품 체험 부스에서 한 업체 제품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제공=중기부




지난 4월 미국의 전자상거래 결제업체인 스퀘어는 온라인 부문을 강화하기 위해 웹 사이트 빌더인 위블리(Weebly)를 3억6,500만달러에 인수했다. 스퀘어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위블리의 웹 사이트 호스팅 및 디자인, 전자상거래와 통합해 오프라인과 온라인 매장을 운영하는 단일 솔루션을 제공하기 위해서다. 스퀘어의 위블리 인수는 실리콘밸리의 혁신 에너지가 녹아든 사례로 손꼽힌다. 에버노트에서 아시아태평양 부사장을 지낸 트로이 말론 위블리 부사장은 실리콘밸리가 혁신 창업 생태계의 대명사가 된 것에 대해 “창업 선배들의 성공 사례 때문”이라고 말한다. 창업 생태계가 제대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창업가와 우수한 인재, 투자자, 대기업이 몰려와야 하는데 이들을 한데 모이게 하는 비결이 바로 ‘나보다 먼저 시도한 사람들의 성공 경험’에 있다는 게 핵심이다. 국내에서도 성공 사례가 속속 나오면서 한국형 혁신 창업 생태계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마스크팩 ‘메디힐’로 유명한 화장품 업체 엘앤피코스메틱은 최근 크레디트스위스로부터 400억원의 투자를 유치했다. 당시 인정받은 회사 가치가 약 1조2,000억원에 달한다. 엘앤피코스메틱은 이번 투자 유치로 기업 가치 10억달러(약 1조1,200억원) 이상의 스타트업을 뜻하는 ‘유니콘’으로 올라섰다. PC 온라인게임 ‘배틀그라운드’로 유명한 게임업체 블루홀, 모바일 음식 주문·배달 서비스 ‘배달의민족’을 운영하는 우아한형제들도 이미 기업 가치 1조원을 훌쩍 넘긴 ‘K유니콘’으로 각광받고 있다.

◇민간의 도전이 쌓아올린 창업의 성지=실리콘밸리는 훗날 세계 최초의 벤처기업으로 기록된 휴렛팩커드(1939년 창업)에서 시작해 1950년대 후반 반도체 업체 페어차일드 출신 인재들이 몰리면서 그 이름이 널리 알려졌다. 이후 애플·구글 등 세계적으로 명성을 얻고 있는 글로벌 기업을 비롯해 우버·에어비앤비·핀터레스트·드롭박스 등 독보적인 기술과 번뜩이는 아이디어로 무장한 혁신 기업들이 성공을 거뒀고 지금은 전 세계 창업가와 투자자가 모여드는 창업의 성지(聖地), 혁신의 대명사가 됐다. 미국의 벤처캐피털 투자액 중 절반 정도가 샌프란시스코와 실리콘밸리를 포함한 ‘베이 에어리어’로 몰린다는 사실만 봐도 실리콘밸리의 위상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혁신 창업 생태계의 대명사와 동일시되는 실리콘밸리가 미국 연방정부나 캘리포니아 주 정부의 주도로 생긴 게 아니라는 점이다. 이영민 서울대 벤처경영기업가센터 교수는 “누군가 창업에 나섰는데 회사가 성장하니까 투자자가 모였고 후발주자가 잇따라 뛰어들면서 실리콘밸리라는 창업 생태계가 만들어진 것”이라며 “민간의 자유로운 도전 속에서 의미 있는 성공 사례가 쌓이면서 창업 생태계가 자연스럽게 조성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엄청나게 거대한 성공보다는 작지만 의미 있는 성공 사례가 쏟아져야 젊은이들이 취직이 아닌 창업을 선택하고 투자자들도 ‘이 사업 될 수 있다’고 판단하면서 몰려들 수 있다”며 “실패하는 과정 중에 끊임없이 도전하고 이들 가운데 의미 있는 성공 사례가 나올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게 정부의 역할”이라고 지적했다.

중국의 ‘창업 엔진’ 중관춘(中關村) 창업 거리 역시 민간의 역할에 방점을 찍었다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중관춘에만 창업지원 서비스 기관이 45개 있고 중국 벤처투자의 약 3분의1이 중관춘에 쏠린다. 중국의 스타트업 지원 정책은 정부가 계획을 세우지만 민간이 주도하는 방식이다. 제2·제3의 TAB(텐센트·알리바바·바이두)를 통한 경제 부흥과 일자리 창출을 위해 중국 정부는 창업과 관련된 다양한 지원책을 내놓고 있다. 창업 등기비용을 철폐하고 창업 행정절차를 지역 정부에 이양하는 등 창업 절차를 간소화한 덕에 중국 스타트업들은 아이디어만 있으면 원하는 제품과 서비스 구현이 가능하다. 이처럼 창업 친화적인 환경 속에서 중국의 젊은이들은 앞다퉈 창업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지금은 글로벌 기업의 반열에 오른 샤오미 같은 중국 기업 역시 중국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을 자양분 삼아 중관춘에서 성장했다. 홍종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취임 후 첫 해외 출장지로 중관춘을 낙점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후발주자로서 혁신 창업 생태계를 조속히 만들기 위해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 배우기 위한 행보였다.



◇민간은 기업가정신, 정부는 규제혁신=‘혁신 성장’을 경제 성장의 동력으로 삼고 있는 우리 정부는 지난해 11월 ‘혁신 창업 생태계 조성방안’을 내놓았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난 지금 창업 생태계에서 작지만 의미 있는 변화가 나오고 있다. 하지만 가시적인 성과물을 얻기 위해서는 보다 적극적이며 열린 접근 방식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업계에서는 정부 스스로 혁신의 DNA를 체화하는 한편 정부와 민간이 개방형 혁신(오픈이노베이션)으로 창업 생태계 조성에 힘써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특히 그 과정에서 정부가 하나부터 열까지 챙기기보다 민간에 넘길 부분은 과감하게 넘기고 창업가들이 맘껏 도전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지적했다. 임정욱 스타트업얼라이언스센터장은 “스타트업 투자가 활성화되고 신기술 분야에 대한 투자도 늘고 있지만 아직까지 여러 가지 규제로 자율주행차나 원격진료 등 혁신 서비스의 진화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창업 현장의 관점에서 어떤 것이 필요하고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할지를 세밀하게 고민하면서 창업 생태계 자체가 안게 될 여러 외부적 위험 요소를 최소화하는 ‘리스크 테이킹(risk taking)’ 역할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조언했다.

홍 장관 역시 창업가의 도전을 장려하고 실패를 끌어안으면서 동시에 ‘오픈이노베이션’을 접목한 창업정책에 적극 나서겠다는 의지를 밝히고 있다. 홍 장관은 “도전적인 연구개발(R&D)을 지원하고 성실 실패에 대해서는 면책을 확대하겠다”면서 “부동산 투자자금을 벤처투자로 유인해 2022년까지 10조원 이상의 혁신모험펀드를 조성하겠다”고 약속했다. 전문가들은 여기에 더해 민간의 도전정신과 정부의 규제개혁이 맞물려야 한다고 조언한다. 이 교수는 “정부가 노력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것이 바로 규제”라면서 “공유자동차의 사례와 같이 사업기회 자체를 못 갖는 것이 문제지 (정부가 나서) 투자 자금을 늘리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현대자동차가 동남아 차량공유 서비스 업체 그랩에 3,000억원을 투자한 사례를 들며 “한국에 그런 사업이 활성화돼 있다면 굳이 거기까지 가서 투자했겠냐”면서 “(신사업의) 이해관계자와 기득권자 설득이 어렵기는 하지만 정부 역시 ‘창업가의 도전정신’을 갖고 이런 어려움을 적극적으로 돌파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안건준 벤처기업협회장은 “정부가 신규 창업 개수 등 숫자를 챙기다 보면 어려운 창업, 즉 기술창업에 대한 지원이 소홀해질 수 있다”면서 “쉬운 창업과 어려운 창업이 공존하면서 조화를 이루는 생태계가 올바른 방향”이라고 강조했다.
/맹준호기자 next@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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