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으로 명함을 찍으면 그 속에 적힌 정보가 자동으로 내 폰에 저장되는 서비스, ‘리멤버’는 이용자 200만명 이상을 거느린 ‘국민 명함 어플리케이션(앱)’이다. 지난 2013년 7월 창업에 나서 ‘리멤버’를 세상에 내놓은 최재호 드라마앤컴퍼니 대표는 2017년 말 네이버에 투자자 지분을 매각하며 성공적인 창업가의 명성까지 얻었다. 최 대표는 성공 비결에 대한 질문을 받을 때마다 독특한 사업 아이디어와 그것을 현실화할 수 있는 기술, 든든한 동료, 그리고 팁스(TIPS) 프로그램을 항상 언급한다. 그는 “팁스는 재무적으로 불안정한 창업 초기에 자금조달 고민을 덜어주고 서비스 개발에 전념할 수 있도록 돕는 ‘스타트업의 우군’이나 마찬가지”라고 강조한다.
‘팁스 예찬’은 리멤버에 국한되지 않는다. 어린이집 스마트 알림장 서비스를 제공하는 ‘키즈노트’, 위암 예후 진단 키트를 개발한 ‘노보믹스’, 세계 최초의 동적 모듈 기반의 보안 플랫폼인 ‘에버스핀’ 등 국내외에서 손꼽히는 스타트업이 모두 팁스가 골라낸 원석들이다. 이들은 자신의 성장 가능성을 팁스를 통해 인정받고 후속 투자를 이끌어 내거나 인수·합병(M&A) 기회를 거머쥘 수 있었다고 입을 모은다.
◇기술 스타트업 보육에 최적화=팁스(TIPS) 프로그램은 기술(Tech)과 보육(Incubator Program)의 대상인 스타트업(for Startup)에 집중하기 위한 목적으로 마련됐다. ‘될 성 부른’ 스타트업을 키울 인큐베이터 운영기관을 공개경쟁 입찰방식으로 선정하고, 이들이 지원하고자 하는 기술창업팀을 선정하면 최대 3년까지 투자를 지원한다. 체계적인 보육 과정을 거쳐 성공적인 졸업과 후속투자를 돕는 것이 핵심 목표다. 팁스의 첫 단추는 지난 2012년 3월, 해외의 성공적인 연구개발(R&D) 사례를 조사하기 위해 성공적인 벤처 육성으로 각광 받았던 이스라엘 등지로 견학 갔던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직까지 4차 산업혁명이 주목 받지 못했지만, 정부 차원에서 한발 먼저 물꼬를 트기로 결심하고 이듬해 8월 운용사를 통해 지원 업체 선발에 나섰다. 팁스의 성공 가능성이 높게 점쳐지자 2015년에는 서울 역삼동에 팁스타운을 조성해 투자와 보육 외에도 스타트업이 서로 교류하면서 성장할 수 있는 공간까지 제공하고 있다.
팁스를 담당하는 권혁상 중소벤처기업부 사무관은 “기존 이스라엘에 있던 T.I.(Technological Incubator) 프로그램은 글로벌 시장형 창업 연구·개발(R&D)에 방점을 두고 있다”며 “우리나라는 여기에다 비즈니스 모델의 사업화와 해외 진출 등까지 모두 연계해 패키지 형태로 지원하며 한 단계 더 진화한 지원 프로그램을 선보인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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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밀하게 연결된 창업 지원의 고리는 해외에서도 부러움을 한 몸에 받는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꼽히고 있다. 조영수 창업진흥원 민관협력부장은 “팁스 운용사로 참여 중인 벤처캐피털(VC)이나 엔젤 투자자들이 자신들이 투자한 기업들을 해외 네트워크를 통해 열심히 홍보하고 있어 자연스럽게 팁스 프로그램이 실리콘밸리 등 해외 스타트업계에도 인지도가 높아졌다”며 “태국 정부는 우리 정부와 민간이 협력한 팁스 모델을 배우러 찾아오기도 했고, 한국 주재 외국 대사관 인력들이 자주 찾아와 창업 지원 프로그램을 벤치마킹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현재 팁스타운에는 주한 프랑스 대사관 인력이 별도로 파견돼 한불 스타트업 간 협업을 진행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제대로 따져 대표 선수 골라낸다=정부가 일자리 창출과 산업 혁신을 위해 쌈짓돈을 푸는 지원 사업은 팁스 프로그램뿐만 아니라 여럿 있다. 하지만 수많은 사업 중에서도 팁스가 대표적인 성공이자 ‘브랜드’화에 성공한 결정적인 비결은 ‘될 성 부른’ 떡잎을 골라내 이들을 집중적으로 육성하고 단시간에 크게 키우는 ‘선택과 집중’에 있다. 팁스에 선발된 스타트업은 운영사의 엔젤 투자 1억원에 R&D 자금 최대 5억원, 추가로 사업화 1억원과 해외마케팅 비용 1억원, 엔젤 투자 매칭 펀드 2억원 등 최대 10억원에 달하는 지원금을 받을 수 있다. 여기에다 성공한 벤처인의 보육과 멘토링은 기본적으로 제공되는 혜택이다. 한 기업당 5,000만원~1억원 수준의 기존 사업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풍부한 자금력이 뒷받침되기에 선발 과정부터 치열한 경쟁이 벌어질 수밖에 없다. 지난 9월 기준 팁스 운영사 44곳이 발굴, 선정한 창업팀은 537곳이다. 현재까지 이들 기업이 받은 엔젤 투자는 1,092억원 규모로 정부는 여기에 매칭 방식으로 R&D 자금 1,930억원, 창업자금 235억원 등을 지원했다. 빵빵한 지원은 기업 가치를 높이는 데 일조해 후속 투자도 자극했다. 팁스 선정팀은 국내외 민간영역에서 총 8,344억원의 후속 투자를 받아 정부 지원금보다 3.5배나 많은 투자를 이끌어 냈으며, 이중 글로벌 VC 등으로부터 받은 해외 투자금은 약 900억원에 달한다. 변태섭 창업진흥정책관은 “만약 팁스가 기존 정부 주도의 공모사업처럼 여러 기업에 지원금을 잘게 쪼개 지원하는 방식을 택했다면 지금처럼 명성을 얻지 못했을 것”이라며 “특정 업체에 지원금을 몰아준다는 지적도 있지만 글로벌 시장에서도 통할 만한 ‘K유니콘’으로 키우기 위해 ‘선별과 집중’을 팁스의 핵심 키워드로 삼았다”고 강조했다. 중기부는 앞으로 팁스 성공기업의 후속 성장(Scale-Up) 지원을 위한 ‘포스트 팁스’ 사업을 본격적으로 시행한다는 방침이다.
◇“민간주도 살길” 오픈 이노베이션 성공 방정식=팁스가 내세우는 장점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시장 논리가 지배하는 스타트업계에서 철저하게 민간이 주도하는 방식을 취한 것도 스타급 스타트업을 키워낼 수 있는 요건이었다. 팁스의 주체는 크게 창업팀과 운영사, 정부 이렇게 세 곳이다. 운영사로부터 1억원 가량의 자금 지원을 받는 창업팀은 기술 아이템을 기반으로 실패에 대한 부담 없이 창업할 수 있다. 스타트업의 지분을 일부 보유한 운영사는 향후 성장이익을 공유하며, 후속투자 대상의 포트폴리오 역시 확보할 수 있다. R&D 지원금 5억원 이내를 지원하는 정부는 이 과정에서 고급 기술창업을 촉진하는 동시에 일자리를 창출하는 역할을 해내게 된다. 또한 참여 스타트업의 성공 시 기술료를 10% 내에서 상환받을 수 있다는 점도 정부가 취할 수 있는 이득이다. 이같이 삼박자가 맞아 떨어질 때, 팁스는 진정한 오픈 이노베이션으로 거듭나게 된다.
팁스 운용사 한 관계자는 “기본적으로 시장을 제일 잘 아는 시장전문가가 투자자이자 운영사이며 그들이 선발한 기업 위주로 재차 선별하기에 팁스 기반 자체가 탄탄할 수 밖에 없다”며 “민간이 주도하고 정부는 거드는 식으로 창업 생태계 전반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고 언급했다. 성과 역시 눈부시다. 전체 TIPS 선발 기업의 창업자를 분석하면 석·박사 출신이 934명으로 전체 1,651명의 57%를 차지하며 국내외 대기업 출신이 474명(29%), 전문직이 135명(8%)으로 프로그램 설계단계에서 노렸던 고급 기술창업 지원의 역할을 제대로 해내고 있다. 여기에 사업 지원 후 신규로 직원을 채용한 규모는 총 2,193명으로 기업당 5.3명의 고용 창출 효과도 기록했다. /이수민기자 noenemy@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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