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간제와 파견근로자를 보호하는 비정규직법 시행 이후 정규직은 증가했지만, 전체 고용 규모는 줄고 용역이나 도급 등 법의 ‘사각지대’에 있는 기타 비정규직은 도리어 증가했다는 국책연구기관의 분석이 나왔다. 노동시장의 이중 구조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비정규직 보호와 더불어 정규직의 근로조건 경직성을 완화하는 노력을 병행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박우람·박윤수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19일 이 같은 내용의 ‘비정규직 사용 규제가 기업의 고용 결정에 미친 영향’ 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는 비정규직법(기간제법·파견법) 시행 이전(2005년)과 이후(2007~2011년)로 기간을 나눠 고용상황을 비교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비정규직법 시행 전 기간제·파견 근로자 비중이 다른 기업보다 10%포인트 높은 곳은 법 시행 이후 전체 고용 규모가 약 3.2% 줄어들었다. 정규직 고용 규모가 11.5% 가량 증가하고, 전체 비정규직은 34.0% 감소하면서다. 다만, 사용 기간 제한의 영향을 받지 않는 용역·도급 등 기타 비정규직 고용은 오히려 10.1% 늘어난 것으로 조사됐다. 박윤수 연구위원은 “비정규직 규제로 정규직이 증가하고 비정규직은 줄었다”면서도 “동시에 법의 보호를 받지 않는 기타 비정규직이 늘어나는 ‘풍선효과’도 발생했다”고 설명했다.
비정규직의 풍선효과는 노조 유무에 따라 격차가 났다. 노조가 없는 사업장은 정규직 증가가 두드러진 반면, 노조가 있는 곳은 정규직보다는 기타 비정규직이 늘어나는 모습이었다. 다만, KDI는 노조의 유무보다는 근로조건 변경 경직성이 기업에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꺼리는 주된 요인이라고 분석했다.
보고서는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근로자가 필요로 하는 고용 안정성과 기업이 원하는 노동 유연성을 균형 있게 추구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박윤수 연구위원은 “비정규직 사용 규제가 없다면 기업에서 이를 악용해 비정규직을 남용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규제는 필요하다”면서도 “법적 규제만으로는 고용의 양과 질을 동시에 추구하기 힘든 만큼, 정규직의 근로조건을 유연화하는 방안도 함께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세종=정순구기자 soon9@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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