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올해 초 법정 최고금리를 연 24%로 인하하자 대부업체 이용자들이 9월 말 현재 전년 동기 대비 17만명이나 급감한 것으로 나타났다. 저신용자의 경우 부실위험이 크기 때문에 기본 조달금리에 위험 가산금리를 더 높게 반영해야 하는데 24%로 금리 캡을 씌워놓다 보니 대부업체들이 7등급 이하 저신용자 대출을 꺼린 결과다. 대부업체에서 대출승인이 거절된 저신용자의 대부분은 고금리 사채시장으로 내몰린 것으로 추정된다. 서민들의 이자상환 부담을 덜어주겠다며 법정금리를 인하했는데 오히려 급전이 필요한 서민들이 사채로 몰리는 엉뚱한 결과를 낳은 것이다. 이른바 ‘선의의 역설’인 셈이다.
19일 한국대부금융협회가 주최한 세미나에서 박덕배 국민대 교수가 발표한 ‘최고금리가 대부업 순기능에 미치는 영향’ 자료에 따르면 올 9월 기준 대부업체의 신규 신용대출자 수는 62만4,927명으로 전년동기 대비 21%(16만5,649명) 감소한 것으로 조사됐다. 박 교수는 이날 “올해 초 법정 최고금리를 기존 27.8%에서 24%로 3.8%포인트나 대폭 인하한 영향으로 오히려 서민층의 신용경색 현상이 심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이 같은 추세라면 연말까지 25만명의 저신용자가 합법적인 대부업조차 이용하지 못하고 사채시장으로 쏠릴 수 있다고 경고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대선 기간 중 ‘100대 국정과제’의 하나로 최고금리를 20%까지 내리겠다고 공약했고 올해 초 법정 최고금리를 24%로 인하한 데 이어 임기 내 20%까지 내릴 방침이다. 박 교수는 “금리 인하에 따라 대부업 대출 기회를 상실한 저신용자들은 불법 사채시장으로 내몰릴 것”이라며 “최고금리 추가 인하에 대한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7월 기준 신용등급 7~10등급의 저신용자 차주들이 대출을 빌린 금융기관 중 대부업체 비중은 50.6%에 달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대부업체의 승인거절 등으로 불법 대부업체로 밀려나는 저신용자도 급증할 전망이다. 금융당국은 시중은행이나 저축은행 등에 저신용자를 위한 중금리 대출을 활성화하라고 압박하고 있지만 저축은행을 이용한 저신용자 비율은 전체 28.9%이고, 은행은 겨우 3.4% 수준이다. 반면 대부업체 이용자 수는 250만명, 대부잔액이 16조5,000억원에 이른다.
대부업체가 신규 대출을 꺼리는 것은 연 24%의 법정 최고금리에 맞춰 대출을 내줄 경우 역마진이 발생할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금융연구원 자료에 따르면 2016년 대부업체 원가금리는 조달비용 4.5%, 관리비용 9.1%, 대손비용 12.6%를 합해 26.2%로 추정된다. 적어도 연 26%의 대출금리를 받아야 본전인데, 법정 최고금리가 24%이다 보니 신규 대출을 내 줄 수록 손해를 볼 수 있다는 얘기다. 대부업체의 한 관계자는 “올해 들어 시장금리 인상으로 조달금리가 올라간 데다 차주 부실에 따른 대손비용이 증가하면서 원가금리는 더 오르는 추세”라며 “대형 대부업체들이 신규 대출을 거절하면서 신규 대출 규모가 급감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렇다 보니 영업환경 악화를 이유로 폐업을 선택하는 대부업체도 속출하고 있다. 박덕배 국민대 교수는 “금리인하 등의 영업환경 악화로 신규 대부업자 중 3년 이내 폐업하는 비율이 88%에 달한다”면서 “무리한 최고금리 인하는 금융에서 소외된 서민의 금리부담을 완화시키기 보다는 오히려 이들의 금융 접근을 어렵게 만들 수 있다”고 꼬집었다.
문제는 금융 당국이 저신용자보다는 중신용자 위주의 신용공급 정책에 집중하고 있어 대부업체에서 배제된 저신용자가 다른 금융기관으로 흡수되지 못하고 불법 사채 시장으로 내몰릴 수 있다는 점이다. 일부에서는 폐업한 대부업체들이 불법 사채시장의 수요를 보고 ‘전업’을 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저신용자의 불법사채 시장 쏠림이 가속화되자 최근 금융위원회는 중금리대출을 확대하기 위해 업권별로 금리요건을 충족할 경우 민간 중금리대출 상품을 가계부채 총량 관리 대상에서 제외하기로 했다. 저축은행의 경우 연 평균금리 16.0% 이내로 대출을 내줘야 총량규제를 받지 않는다. 저축은행의 한 관계자는 그러나 “금융 당국이 연 20% 이상의 기존 고금리 대출마저 축소하라고 압박하는 상황인데, 당국이 제시한 금리에 맞추려면 7등급 이하의 저신용자는 아예 대출이 불가능하다”고 토로했다. 대부업체에 이어 저신용자의 주된 자금조달처인 저축은행마저 저신용자를 외면하고 대신 부실 우려가 적은 중신용자 위주 대출로 빠르게 전환하고 있다는 것이다.
현장에서는 이처럼 ‘선의의 역설’이 현실화되고 있지만, 금융 당국은 저신용자를 서민금융으로 흡수함으로써 불법 사채 시장으로의 이탈을 막겠다는 원론적인 입장만 되풀이 하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이를 위해 지난 2008년 미소금융으로 시작된 서민금융 체계를 10년 만에 전면 개편할 계획이다. 미소금융·햇살론·바꿔드림론·새희망홀씨 등 4대 정책서민금융상품이 저신용자 위주로 공급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4대 정책 상품이 8등급 이하의 저신용자를 대상으로 공급된 비중은 9.2%에 불과하다. 금융 당국 관계자는 “저신용자의 불법 사채 이용 우려를 불식시킬 수 있도록 조속히 서민금융 체계를 확 바꾸겠다”고 얘기하지만 현실적인 대안이 마땅찮아 고민이 커질 전망이다. /김기혁기자 coldmetal@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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