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은 오는 2050년까지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지난 1990년 대비 80% 줄이기로 의견을 모았다. 덩달아 이산화탄소 배출의 주범인 자동차 연비 규제도 강화했다. 2015년 기준 1㎞ 주행당 130g의 이산화탄소 배출이 허용됐지만 2050년에는 10g으로 낮추기로 했다. 내연기관차 판매를 금지하기로 한 나라도 생겨났다. 노르웨이와 네덜란드는 2025년부터 내연기관차 판매를 법으로 금지했고 독일과 인도는 2030년부터, 영국과 프랑스는 2040년부터 내연기관 판매 금지를 시행하기로 했다. 수소차 개발이 자동차 업계의 생존 문제와 직결되는 이유다.
김세훈 현대·기아자동차 연료전지사업부장 상무는 21일 서울경제신문이 반얀트리 클럽 앤 스파 서울에서 ‘수소혁명 잃어버린 10년…성장전략 다시 찾는다’를 주제로 개최한 제10차 에너지전략포럼 주제발표에서 “내연기관은 결국 강화된 환경기준을 맞출 수 없다”며 “(수소차 이외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밝혔다. 연비 규제를 맞추지 못한다면 자동차 판매량에 따라 최대 수조원의 벌금을 내야 하기 때문이다.
김 상무는 수소차 주도권을 쥐기 위해서는 ‘속도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독일의 에센주는 디젤 트럭 운행을 금지했고 프랑스 파리는 2024년 올림픽을 맞아 디젤차 운행을 아예 중단하기로 했다”며 “디젤차 등 내연기관차가 빠진 자리를 대체하기 위해서는 지금부터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보통 신차를 하나 개발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6년이다. 프랑스의 올림픽과 일부 유럽 국가의 내연기관 판매 금지가 시작되는 2020년대 중반까지 가격경쟁력을 갖추고 강력해진 연비 규제를 맞출 수 있는 수소차를 개발하기 위해서는 망설일 시간이 없다.
김 상무는 수소경제에 대한 비전을 가지고 정부의 지원을 쏟아 붓는 일본과 중국을 경계했다. 그는 “일본은 2020년 올림픽 때 수소경제의 위상을 드러내고 싶어 한다”며 “일본은 수소 수요에 대비해 호주와 브루나이 등에서 수소를 사들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2030년까지 수소전기차 규모 100만대, 충전소 1,000기 건설 목표를 밝힌 중국의 ‘수소 굴기’에 대해서는 “지방정부의 지원하에 빠른 속도로 산업을 육성하고 있다”고 밝혔다. 중국이 내연기관차 판매 금지를 선언하고 수소차 육성에 나선다면 자동차 업계에 미치는 파급력이 크다는 게 김 상무의 판단이다.
수소 생산을 위한 신재생 발전의 필요성도 제기됐다. 천연가스를 개질해 수소를 얻는 것이 가장 값이 싸지만 원료를 수입하지 않아도 수소를 얻을 수 있는 ‘P2G(Power to Gas)’ 방식의 수소 생산도 필요하다는 뜻이다. 김 상무는 “현재 태양광 등 신재생 발전은 단가가 비싸 전력망에 들어가지 못하고 있다”며 “이 같은 상황에서는 신재생 발전을 통해 얻은 전력으로 물을 분해해 수소를 만들어 저장하는 것이 낫다”고 밝혔다. 이는 독일의 사례를 언급한 것이다. 풍력과 태양광 등 신재생 발전에 대규모 투자를 쏟아 부은 독일은 잉여 신재생 전력으로 수소를 생산한 후 기존 도시가스망을 통해 수소를 이동해 경제성을 갖춰가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김 상무는 현대차뿐 아니라 공기업과 다른 정유사 등 대기업에서도 수소경제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2017년 글로벌 수소위원회가 생긴 후 회원사가 54개로 늘어났지만 한국 기업은 현대차와 가스공사 두 곳뿐”이라고 지적했다. 글로벌 수소위원회는 자동차 업계와 에너지 업계 13개사로 구성됐지만 최근 54개사로 늘어났다. 일본과 프랑스는 수소위원회 창립 당시 이미 각각 3개사와 4개사가 참여할 정도로 수소경제를 준비하는 기업이 많았다. 인지도가 없는 가스공사의 위원회 가입도 현대차의 도움을 받아 가능했을 정도로 수소 패권 경쟁에서 한국의 위상은 미약하다. 김 상무는 “한국전력공사에서도 다른 나라 발전기업들과 마찬가지로 수소에 대해 관심을 더 가져주셔야 한다”고 당부했다.
다만 김 상무는 가장 먼저 수소차를 상용화한 현대차가 수소차 경쟁에서 우위에 있다는 자신감도 드러냈다. 그는 “2013년 세계 최소 연료전지차를 발표했고 넥쏘는 사전예약이 4,000대를 돌파했다”며 “승용차뿐 아니라 상용차 등도 친환경차에 대한 수요가 많기 때문에 이 분야에서도 새로운 도전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박형윤기자 mani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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