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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 KT 블랙아웃과 초연결사회

김능현 경제부 차장





기가급 데이터를 주고받을 수 있는 5세대(5G) 이동통신이 보편화한 2020년, 이른 아침 황창규 KT 회장이 승용차에 탑승한다. 황 회장이 “사무실”이라고 말하자 승용차는 최적 경로를 산출해 스스로 주행한다. 이동하는 사이 황 회장은 외국 기업 최고경영자(CEO)들과 화상 회의를 한다. 통역은 필요 없다. 대화 내용이 실시간으로 자동 번역되기 때문이다. 회의가 끝나자 황 회장은 사랑하는 손녀의 바이올린 연주 장면을 홀로그램으로 감상하며 잠시 휴식을 취한다.

황 회장이 지난 2015년 모바일월드콩그레스(MWC) 기조연설에서 제시한 5G 시대의 미래상이다. KT 회장 취임 직후 ‘기가토피아’를 모토로 내세운 그는 당시 연설에서 “십억 대의 자율주행자동차가 동시다발적으로 정보를 주고받기에 현재의 4세대(LTE) 네트워크는 턱없이 부족하다”며 “방대한 미래의 데이터 트래픽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네트워크(5G) 구축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만일 황 회장의 비전이 실현된 2020년에 24일 발생했던 ‘정보기술(IT) 블랙아웃’이 재발한다고 가정해보자. 유무선 인터넷과 전화통화, 문자 메시지, 카드 결제 등의 중단으로 단순히 경제활동이 마비되는 데 그치지 않을 공산이 크다. 도로를 달리던 자율주행차는 순간적으로 주변 신호를 읽지 못해 길을 잃고 엉키면서 수천~수만 명의 사상자가 발생할 것이다. 하늘을 날던 무인 드론이 인구밀집지인 주택가나 학교에 떨어질 수도 있고 원격진료로 치료를 받던 환자의 생명이 위태로워질 수도 있다.



적국으로부터의 군사적 공격이나 사이버 공격(해킹)이 아닌 통신구 한 곳의 단순 화재만으로도 핵 공격에 버금가는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는 얘기다. 단순한 사물인터넷(IoT)을 넘어 모든 것이 연결되는 초연결시대에 어쩔 수 없이 감당해야 하는 안보·경제적 위험이다.

문제는 우리가 너무 앞만 보고 있다는 점이다. 다음달 세계 최초로 5G 이동통신망 상용화에 나선다는 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지만 정작 화재 방지 시설은 물론 비상사태 때 우회선로도 제대로 갖추지 않은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무엇보다 국가 기간시설인 초고속인터넷망을 사실상 KT 한 기업에만 의존하는 것도 문제다. 무선 분야 점유율이 30%에 불과한 KT가 기가토피아를 외칠 수 있었던 것도 기가급 통신이 가능한 초고속인터넷망에 대한 사실상의 독과점 지위가 바탕이 된 것이다. 유선이든 무선이든 기간통신망의 절반 이상을 한 기업이 좌지우지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를 이번 사태는 깨닫게 해줬다.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은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열 가지 아이디어’로 ‘공유경제’를 꼽았다. 공유경제의 전제조건인 초연결사회로 진입하기 전에 안전한 통신망 구축이라는 ‘비용’에 대해서도 깊이 생각해볼 때다.
/ nhkimch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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