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오롱그룹을 23년간 이끌어온 이웅열(63) 회장이 내년에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겠다고 28일 전격 발표했다. 내년부터 코오롱은 후임 회장 없이 지주회사 중심으로 운영되며, 주요 사장단 협의체를 통해 그룹 현안을 조율하게 됐다. 특히 연말 정기 임원인사에서 이 회장의 아들 이규호 상무가 전무로 승진하며 경영수업을 본격화할 전망으로 코오롱그룹은 머지않아 ‘4세 경영 시대’를 맞을 것으로 보인다.
코오롱그룹은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이 회장이 내년 1월 1일부터 그룹 회장직을 비롯해 지주회사인 ㈜코오롱과 코오롱인더스트리㈜ 등 계열사의 모든 직책에서 물러난다고 전했다. 이 회장은 이날 오전 서울 마곡동 코오롱원앤온리 타워에서 열린 임직원 행사에서 예고 없이 연단에 올라 “내년부터 그동안 몸담았던 회사를 떠난다”며 “앞으로 그룹 경영에는 관여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또 이 회장은 사내 인트라넷에 올린 ‘임직원에게 보내는 서신’을 통해서도 퇴임을 공식화했으며, 별도의 퇴임식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특히 서신에서 “이제 저는 ‘청년 이웅열’로 돌아가 새롭게 창업의 길을 가겠다”면서 “그동안 쌓은 경험과 지식을 코오롱 밖에서 펼쳐보려 한다”면서 창업 의지를 거듭 밝히기도 했다.
이 회장은 “1996년 1월, 40세에 회장직을 맡았을 때 20년만 코오롱의 운전대를 잡겠다고 다짐했었는데 3년의 시간이 더 지났다”면서 ‘시불가실(한번 지난 때는 다시 오지 않는다)’이라는 사자성어를 인용하고 “지금이 아니면 새로운 도전의 용기를 내지 못할 것 같아 떠난다”고 퇴임 이유를 밝혔다.
그는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덕분에 다른 사람들보다 특별하게 살아왔지만 그만큼 책임감의 무게도 느꼈다”면서 “그동안 금수저를 물고 있느라 이가 다 금이 간 듯한데 이제 그 특권도, 책임감도 다 내려놓는다”고 언급했다.
재계는 이 회장의 전격적인 사퇴 선언에 대해 엇갈린 반응을 보였다. 한 재계 관계자는 “그룹 총수가 갑자기 자리에서 물러나 새로운 도전에 나선다는 것만으로도 신선한 충격”이라면서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텐데 잘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그러나 또 다른 관계자는 “전격적인 사퇴 의도가 뭔지 잘 모르겠다”면서 “그룹 경영이 가벼운 일이 아닌데 갑자기 책임을 내려놓는 게 바람직한 일이라고만 볼 수 있느냐”고 되묻기도 했다.
코오롱그룹 창업주 이원만 회장의 아들 이동찬 명예회장의 1남 5녀 중 외아들로 태어난 이 회장은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조지워싱턴대에서 경영학 석사 학위를 받으며 경영 승계를 준비했다. 이후 1977년 ㈜코오롱에 입사한 뒤 12년만인 1985년 임원으로 승진했고, 1991년 부회장에 오른 뒤 1996년 회장에 취임하면서 ‘3세 경영’에 나섰다.
이 회장의 퇴임에 따라 코오롱그룹은 내년부터 주요 계열사 사장단 등이 참여하는 협의체 성격의 ‘원앤온리(One & Only)위원회’를 두고 그룹의 주요 경영 현안을 조율해 나갈 방침이다. 후임 회장 없이 지주회사를 중심으로 각 계열사 전문경영인들의 책임 경영을 강화하겠다는 의도다. 따라서 2019년도 그룹 정기 임원인사에서 ㈜코오롱의 유석진 대표이사 부사장(54)이 대표이사 사장으로 승진했다. 그는 앞으로 지주회사를 이끌며 신설되는 ‘원앤온리위원회’의 위원장도 겸임한다.
아울러 이 회장의 아들 이규호 ㈜코오롱 전략기획담당 상무(35)는 전무로 승진해 코오롱인더스트리 FnC부문 최고운영책임자(COO)에 올랐다. 이 전무는 그룹의 패션 사업 부문을 총괄 운영하게 됐다.
그룹 관계자는 “이 회장이 이 전무에게 바로 그룹 경영권을 물려주는 대신 그룹의 핵심 사업 부문을 총괄 운영하도록 해 본격적으로 경영에 참여하도록 한 것”이라면서 “그룹을 이끌 때까지 경영 경험과 능력을 충실하게 쌓아가는 과정을 중시한 결정”이라고 밝혔다.
한편 이번 임원인사에서는 여성 임원 4명이 한 번에 승진하기도 했다. 코오롱인더스트리 FnC부문에서 ‘래;코드’, ‘시리즈’ 등 캐주얼 브랜드 본부장을 맡아온 한경애 상무가 전무로 승진했으며, ㈜코오롱 경영관리실 이수진 부장이 상무보로 발탁돼 그룹 역사상 여성으로서는 처음으로 재무 분야 임원이 됐다. 코오롱생명과학 바이오신약연구소장 김수정 상무보와 코오롱인더스트리 화장품사업TF장 강소영 상무보는 각각 상무에 올랐다.
/이다원인턴기자 dwlee618@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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