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강원도 동해시의 쌍용양회 동해공장. 단일공장으로는 세계 최대 연산 1,150만톤 규모인 이 공장의 소성로(킬른·kiln) 주변에선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후끈한 열기가 뿜어져 나왔다. 이곳에서 8.4㎞ 떨어진 북평항에는 쌍용양회 북평공장이 있다. 이 공장은 동해공장에서 만든 시멘트 반제품 클링커를 컨베이어벨트로 받아 분쇄·혼합 공정을 통해 시멘트 완제품을 만든다. 쌍용양회가 보유한 12척의 배는 이 제품을 국내외 공급처에 실어 나른다. 쌍용양회는 동해공장과 북평공장을 통해 구축한 해송(海送) 시스템으로 국내외 어디든 제품을 공급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것이 가장 큰 장점으로 꼽힌다. 배가 동해와 남해를 돌아 인천까지 가서 시멘트를 내려줘도 운송비를 포함한 원가 경쟁력 면에서 그 어떤 경쟁업체보다 뒤지지 않는다.
이런 장점 때문에 최근 주목을 끄는 곳이 바로 쌍용양회다. 남북 경제협력이 본격 재개돼 북한 인프라 건설이 시작될 경우 가장 먼저 필요한 기초소재는 다름 아닌 시멘트. 북한에 대량의 시멘트를 값싸게 공급할 수 있는 곳은 바로 한국이고 그 중에서도 동해에서 배로 제품을 실어나를 수 있는 쌍용양회 동해공장이 최적의 공급 거점으로 꼽힌다. 추대영(56·사진) 공장장은 서울경제신문과 만나 “쌍용양회는 북한 공급에 대한 독보적 능력을 갖고 있다”면서 “경협의 판이 펼쳐지고 당국의 의사결정만 떨어지면 바로 갈 수 있게끔 모든 준비를 마쳤다”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그는 “대북 시멘트 공급에 필요한 세부적인 검토까지 마쳤다”면서 “경협이 본격화만을 기다리고 있다”고 덧붙였다.
쌍용양회는 이런 해송시스템과 고유의 원가절감 노하우를 통해 ‘북한 어느 곳이라도 가장 낮은 가격에 가장 빨리 시멘트를 공급할 수 있다’고 자신한다. 추 공장장은 “만약 북에서 쓰일 시멘트를 정부가 지원하게 된다면 국내 시멘트 7개사가 가격과 운송방법을 놓고 정부조달물품 경쟁입찰을 벌이게 될 텐데 쌍용양회가 우수한 평가를 받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쌍용양회는 대북 제품 공급이 재무적인 측면에서도 회사를 한 단계 점프 업시키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규모의 경제에 따른 효율을 획득하기 위해 공장을 100% 가동하지만 국내 수요가 부족해 제품의 3분의 1가량 수출한다. 그러나 무게와 부피가 커 운송비가 많이 드는 시멘트 고유의 특성상 수출은 이익이 적다. 추 공장장은 “미국·남아메리카·아프리카·동남아시아 등지에 수출하는 연간 400만톤 물량을 지리적으로 가까운 북한에 공급한다면 영업이익이 획기적으로 높아지고 회사가 한 단계 도약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쌍용양회는 지난해 1조 333억원 매출과 1,745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현재도 영업이익률이 상당한 수준이지만 대북 사업을 계기로 이익 규모가 획기적으로 늘어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북한에 대한 정보 면에서도 앞서 있는 게 또 다른 장점이다. 쌍용양회는 지난 1994년 북미 제네바합의 이후 당시 쌍용그룹 차원의 대북사업 일환으로 평양 인근 순천 시멘트공장 업그레이드 프로젝트를 논의하기도 했다. 이후 2002년과 2003년에 북평항을 통해 북한에 시멘트를 보냈고, 2004년 용천역 폭발사고와 2006년, 2007년 수해 때도 시멘트를 보내는 등 총 5차례 제품을 공급한 경험이 있다. 추 공장장은 “구체적으로 공개할 수는 없지만 사내에 북한 시멘트 산업과 시멘트 분야 경협에 대한 자료가 상당히 축적돼 있다”면서 “지난 4월 문재인 대통령의 1차 남북정상회담에 맞춰 사내 자료에 대한 리뷰도 끝낸 상태”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과거 경협 때 재직했던 선배 공장장들에게도 일일이 자문을 구하고 준비를 마쳤다”고 설명했다.
쌍용양회는 중장기적으론 제품 공급을 넘어 북한에 ‘기술’을 수출할 준비도 하고 있다. 추 공장장은 “북한도 기존 시멘트 공장을 고도화하고 신규 플랜트를 짓지 않겠냐”면서 “공장 운영과 효율화, 유지·보수, 가동률 관리, 품질 관리, 원가절감 등에서 세계 톱 클래스인 쌍용양회가 북한 시멘트 산업 발전에 기술 제공자로 활약할 것으로 확신한다”고 밝혔다.
공장에서 만난 쌍용양회 직원들은 “요즘은 직원들끼리 소주 한잔 하는 자리에서도 활발하게 북한 사업 얘기를 할 만큼 기대감에 차 있다”고 입을 모았다. 추 공장장은 “유럽과 일본의 사례를 볼 때 선진국 단계에선 시멘트 산업이 정체·축소되기 마련”이라면서 “한국 시멘트 산업이 정체 상태에 들어간 국면에서 회사가 새롭게 도약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온 만큼 최선을 다해 대북 사업 로드맵을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동해=맹준호기자 next@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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