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변호사업무 전반은 물론 법조계 곳곳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대한변호사협회(변협) 차기 협회장 선거가 막이 올랐다. 변호사업계에서는 극심한 후보 기근 속에 이찬희(53·사법연수원 30기)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의 사상 첫 단독 출마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예상했다.
변협은 2일부터 제50대 협회장 선거를 위한 후보 등록을 시작했다. 오는 6일까지 후보를 받은 뒤 7일부터 내년 1월20일까지 총 45일간 선거운동 기간을 갖는다. 선거일은 내년 1월21일로 만약 전체 유효 투표 수의 3분의 1 이상을 득표한 후보가 없을 경우 같은 해 1월23일 결선투표를 진행한다. 차기 협회장의 임기는 내년 2월부터 2021년 2월까지다.
변협은 1952년 창설 이후 대의원을 통한 간선제로 협회장을 선출해 오다 지난 2013년부터 직선제로 처음 방향을 틀었다. 대의원이 가장 많은 서울지방변회 추천 후보가 협회장을 지나치게 독식한다는 지적 때문이었다. 첫 직선제에서는 무려 4명의 후보가 출사표를 던진 가운데 1·2위 후보가 붙는 결선투표에서 위철환 전 협회장이 김현 현 협회장을 제치고 최종 당선됐다. 2015년 제48대 협회장 선거에서는 4명의 후보가 충돌해 하창우 전 협회장이 35.77% 득표로 결선투표 없이 바로 당선됐다. 지난해 치러진 제49대 협회장 선거에서는 2명의 후보가 출마해 김 회장이 결선투표 없이 59.22%의 득표율로 당선을 확정지었다.
하지만 법조계에서는 이번 변협 협회장 선거가 직선제 도입 이후 사상 첫 단독 출마로 치러질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 출마 가능성을 여러 차례 시사한 이 회장 외에는 다른 경쟁자가 전혀 보이지 않아서다. 실제로 이날 변협에 후보 등록을 한 후보자는 아무도 없었다.
이 같은 후보 기근 현상은 서울지방변회가 전체 변호사 회원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상황에서 다른 지방변회의 세력이 무너졌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첫 직선제 도입 때만 해도 경기중앙지방변호사회 출신의 위 전 협회장이 지방 표심을 등에 입고 파란을 일으켰지만 하 전 협회장부터는 다시 서울지방변회 회장 출신이 자리를 독식하는 모양새다. 최근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출신 변호사가 급증하는 등 업계 구조 자체가 달라짐에 따라 지방 출신으로는 인지도를 쌓기 어려워 선거판이 다시 서울 중심으로 회귀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법조계에서는 나아가 최악의 경우 협회장 후보가 전혀 없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고 진단했다. 지금처럼 열기가 떨어진 상태에서 단독 출마하게 되면 기탁금 등 선거비용 부담을 해당 후보 혼자 고스란히 부담하게 돼 망설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특히 사법고시 폐지 등 업계 내 거대담론이 사라진 뒤부터는 로스쿨 출신 변호사들의 응집력이 떨어져 투표 유인책도 없이 당선 기준인 전체 유권자의 3분의 1 이상을 투표장으로 끌어오기도 만만찮다는 전망이 나온다.
이 회장도 이 같은 위기를 의식한 듯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단독 후보가 총 유권자의 3분의 1 이상 득표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라며 “현실과 너무나 동떨어져 있는 변협 회칙과 선거규칙으로 인해 선거 자체가 무산될 위험이 매우 높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회원들에게 불편함만 가중시키는 무의미한 선거의 반복은 막아야 한다”며 “뜻있는 분의 출마를 호소한다”고 역설했다.
변협은 민간 협회지만 법무부로부터 변호사 등록·징계권을 위임받은 이유로 변호사업무의 준(準)행정기관으로 불린다. 특히 협회장의 경우 특별검사를 비롯해 수십 가지의 추천권을 행사하는 데다 법조인을 대표해 사회 곳곳에 목소리를 낼 수 있어 위상이 남다르다는 평가다. /윤경환·백주연기자 ykh22@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