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큅은 국내 최초로 ‘식품건조기’를 출시해 국내 시장점유율 80% 이상을 기록한 돌풍의 기업이다. 그런 리큅이 이젠 ‘블렌더’ 명가로 거듭날 채비를 하고 있다. 편리하고 품질 좋은 생활 가전을 만들고 있는 하외구 리큅 대표를 만났다. 하제헌 기자 azzuru@hmgp.co.kr 사진 차병선 기자 acha@hmgp.co.kr ◀
서울시 영등포구 당산동에 있는 리큅센터빌딩은 한강변에 자리잡고 있었다. 건물 안 곳곳에는 사진과 그림, 조각상 같은 예술작품들이 놓여 있었다. 그곳 사무실에서 편한 복장을 한 하외구 대표를 만났다. 그는 자리를 옮기자며 건물 맨 위층으로 올라갔다. 탁 트인 넓은 공간에 계단식으로 앉을 자리가 마련돼 있었다. 넓은 창을 통해 한강이 한 눈에 내려다 보였다. 한 켠에는 깔끔한 조리대와 그랜드피아노가 놓여 있었다. 하 대표가 말문을 열었다. “여기서 클래식 음악 공연도 하고 쿠킹클래스도 열고 있습니다. 다양한 목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꾸민 곳입니다.”
하외구 리큅 대표는 대학교를 졸업한 뒤 한 자동차부품업체에 입사해 세일즈·마케팅 업무를 담당했다. 그러던 중 제법 잘 나가던 회사가 국내 중소 생활가전 업체를 인수했다. 그 후 하 대표는 자동차부품과 함께 가전 제품의 미국 수출 업무까지 담당하게 됐다. 하 대표는 서울과 미국을 오가는 과정에서 소형 가전제품 시장에 대해 눈을 떴다. 하 대표는 말한다. “전기면도기나 믹서기 같은 걸 팔았는데 미국 시장에서 생각보다 장사가 잘 됐어요. 이 사업에 관심이 가더군요. 그래서 내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에 과감히 창업을 시도했습니다. 그런데 사업을 시작하고 몇 달 안돼 외환위기가 터져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하 대표는 1997년에 회사를 설립했다. 그는 과일과 채소 즙을 짜내는 주서기를 만들었다. 그는 가격과 성능으로만 승부하기 위해 미국시장을 공략했다. 다행히 미국에서 믿을만한 파트너를 만나 수출에 성공했다. 미국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그는 회사 이름도 리큅으로 지었다. “미국 광고회사에 의뢰해 만든 이름이에요. ‘이큅먼트(equipment)’에 관사 ‘르(le)’를 붙여 프랑스어 느낌의 단어를 만든 거였죠. 리큅은 프랑스어(레퀴프)로 팀(Team)이라는 뜻도 갖고 있습니다.”
기존 주서기의 문제점을 개선하는 데 집중한 리큅 주서기는 2001년 미국 유명 음식 월간지 ‘구르메’가 뽑은 굿아이템으로 선정되는 등 인정을 받기 시작했다. 국내에는 2003년 홈쇼핑을 통해 주서기를 출시해 2007년 대한민국 최고히트 상품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자신감이 붙은 하 대표는 2003년 국내 최초로 식품건조기를 출시했다. 식품건조기는 사과나 호박, 감자 등을 인공적으로 말리는 기계로, 당시 국내 소비자들에겐 생소했던 제품이었다. 판매량도 첫 달 30개, 다음달 50개로 고객 반응이 미적지근했다. 그러다 2000년대 후반부터 웰빙 바람이 불었다. 불량식품과 중국산 고춧가루 파동을 겪었기 때문이었다. 소비자들은 보다 건강하고 믿을 수 있는 식품을 찾기 시작했고, 그 결과 스스로 만들어 먹는 게 좋은 방법이라는 인식이 싹트기 시작했다.
리큅이 내놓은 식품건조기가 입소문을 타게 된 계기였다. 그 후 리큅은 매출이 매년 두 배씩 늘어 식품건조기의 대명사로 자리를 잡았다. 현재는 시장점유율 80% 이상을 기록하며 이 부문 부동의 1위를 고수하고 있다.
식품건조기 성공 후 리큅은 블렌더를 새로운 미래 먹거리로 낙점했다. 하 대표는 2002년부터 해외 수출용으로 개발한 블렌더를 더욱 고급화해 국내 시장에 소개하기로 마음먹었다. 수입 브랜드들이 일부 소비자를 타깃으로 삼고 있던 국내 블렌더 시장에 뛰어들기로 한 것이다. 시장조사기관 마켓엔마켓 따르면, 필립스, 테팔, 일렉트로룩스 등 유명 글로벌 가전기업이 선도하고 있는 세계 블렌더 시장은 2013년 100억 달러에서 2020년 140억 달러 이상 규모로 확장될 전망이다.
국내에서 블렌더는 다소 생소한 생활가전이다. 기능과 생김새는 믹서기와 비슷하지만 힘은 훨씬 더 좋다. 하외구 대표는 블랜더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국내 소비자들은 믹서기(0.1~0.3마력 모터 장착)와 블렌더(2~3마력 모터 장착)의 차이를 잘 몰라요. 블렌더는 분당 3만 번을 회전해서 채소나 과일 껍질, 씨를 분해해 영양소 흡수율을 90%까지 올릴 수 있습니다. 한국에선 저속착즙 방식의 원액기로 주스를 많이 만드는데 사람 몸에 꼭 필요한 섬유질을 너무 많이 버린다는 단점이 있어요. 블렌더를 이용하면 섬유질을 함께 섭취할 수 있고 맛도 더 좋습니다.”
모터만 강력하다고 해서 잘 갈리는 건 아니다. 모터와 컵 연결부위 밀착성이 좋아야 하고 무엇보다 부드럽게 잘 갈리는 게 중요하다. 리큅이 지닌 기술력은 이 부분에서 찾을 수 있다. 리큅이 내놓은 블렌더는 국내보다 해외에서 더욱 호평을 받고 있다. 2011년 미국 컨슈머 리포트엔 고성능 블렌더 부문 4위에 올랐고 독일 등 유럽 쪽에서도 큰 인기를 끌고 있다.
하 대표는 신제품이 출시되면 곧바로 ‘카피캣’이 등장하는 업계 행태에 대비하기 위해 3년 전부터 원천기술 확보에 힘을 기울이고 있다. 핵심은 모터에 있다. 하 대표는 말한다. “BLDC 모터(Brushless Direct Current motor)를 개발하고 있는데 완성 단계에 있습니다. BLDC 모터는 모터 내부에서 마모되기 쉬운 부분(Brush)을 제거해 내구성을 높이고, 고속회전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만든 모터입니다. 일반 모터에 비해 오래 사용해도 소음이 늘거나 성능이 떨어지지 않고, 속도를 정밀하게 제어할 수 있죠. 무엇보다 브러시에서 떨어져 나오는 미세한 먼지가 없어서 안전한 음식을 만들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리큅 블렌더의 강점은 비단 모터 성능에만 그치지 않는다. 내부 온도를 낮게 유지시켜주는 기술도 갖고 있다. 신선한 채소와 과일을 갈아내는 만큼 얼마나 낮은 온도를 유지할 수 있는가는 기술력 수준의 관건이 된다. 리큅 블렌더는 30분을 가동시켜도 28도를 넘지 않아 40도에 육박하는 타사 블렌더를 앞서고 있다. 리큅은 내년 상반기경 이 BLDC 모터를 장착한 새로운 블렌더를 출시할 계획이다.
리큅은 남들과 똑같은 제품은 만들지 않겠다는 의지를 갖고 있다. 하 대표는 “건강을 키워드로, 시장에 나오지 않는 혁신적인 제품을 찾아 틈새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집에서 직접 기름을 만들 수 있는 채유기 ‘오일프레소’ 또한 이 같은 리큅의 의지가 담긴 제품이다. 기존 채유기들은 제품을 씻을 수 없는 데다 고온에서 원재료를 태워 기름을 만들기 때문에 발암 물질 발생을 걱정해야 했다. 하지만 오일프레소는 완전 분리해 물 세척을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저온 착유 방식을 적용하고 있다.
하 대표는 리큅의 제품들이 원천 기술을 바탕으로 제작한 순수 국내 생산품이란 점도 강조했다. 경쟁 업체들은 너도나도 중국산 저가 제품을 수입해 팔고 있지만, 리큅은 소비자 안전을 우선으로 ‘메이드 인 코리아’만을 고집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리큅 제품의 가격은 그리 비싸지 않다. 다른 중소 가전업체들이 톱스타를 모델로 기용해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는 것과는 달리, 리큅은 스타 마케팅을 하지 않아 비용을 절약한 덕분이라는 게 하 대표의 설명이다. “제품의 적정가격을 지키는 것도 소비자와의 약속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리큅이 고객과 오랫동안 같이 성장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어요. 최고의 제품을 합리적인 가격으로 공급하자는 것이 제가 찾은 해답이었습니다.”
돈 되는 사업에 대기업이 무조건 잠식해 들어오는 상황에서 리큅과 같은 중소기업이 브랜드를 안착시키고 해외 수출까지 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더구나 소형가전 시장이 너도나도 뛰어드는 레드오션이다 보니 악착스럽게 최고 제품을 만들고 마케팅을 하지 않는 한 버티기 힘든 환경인 것도 현실이다. 하외구 대표는 이런 상황에 대해 담담하게 말했다. “리큅은 건강한 삶을 이끌어가는 생활문화기업입니다. 제대로 작동하고 오래 쓸 수 있는 세계 최고 제품을 만들기 위해 모든 임직원이 애쓰고 있어요. 그래서 조급한 마음을 갖지 않고 리큅만이 할 수 있는 일들을 묵묵히 하고 있습니다. 독특한 디자인과 차별화된 성능, 실용성과 편의성을 겸비한 제품을 내놓는 것이 리큅이 가장 잘 하는 일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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