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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기업의 국내 전사들] 차태진 AIA생명 대표

컨설턴트에서 보험왕으로 변신한 CEO

조직 변화로 경영 건전성 대폭 키웠다

<이 콘텐츠는 FORTUNE KOREA포춘코리아 2018년 12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외국계 생명보험사인 AIA생명이 업계에 파란을 일으키고 있다. 지난해 역대 최대 당기순이익, 생보업계 운용자산이익률 1위 등 화려한 경영 성적표를 받았기 때문이다. AIA생명은 컨설턴트로 시작해 보험설계사로 변신한 ‘보험왕’ 출신 차태진 대표가 이끌고 있다. 포춘코리아가 입지전적인 인물 차태진 대표를 만나 그동안 AIA생명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났는지 이야기를 들어봤다.하제헌 기자 azzuru@hmgp.co.kr 사진 차병선 기자 acha@hmgp.co.kr◀

차태진 AIA생명 대표가 회의실에서 포즈를 취했다.




“창문 블라인드를 좀 걷을까요? 사무실에서 보이는 남산 풍경이 아주 좋거든요.” 차태진 AIA생명 대표는 자신감 넘치는 사람처럼 보였다. 인터뷰를 하면서 그가 보인 눈빛과 목소리, 몸짓에는 성공신화를 써 온 인간 차태진의 적극성과 강인함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그는 입지전적인 인물로 알려져 있다. 서강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한 뒤 컨설팅회사 앤더슨컨설팅(현 엑센츄어)과 베인앤컴퍼니코리아에서 5년간 컨설턴트로 일했다. 그는 1995년 컨설턴트를 그만두고 푸르덴셜생명에 보험설계사로 입사해 주위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차 대표는 당시 상황을 솔직하게 얘기했다. “제가 컨설팅 회사에서 일할 경우 파트너가 될 확률은 50% 정도라고 생각했어요. MBA도 다녀와야 했고, 영어도 아주 잘해야 했습니다. 컨설턴트 개인이 가진 사회적 배경도 무시할 수 없는 성공 요소였고요. 고민이 참 많았습니다. 그러던 중 생명보험 에이전트(보험설계사)에 대해 알게 됐어요. 그래서 푸르덴셜생명 직무설명회에 참석한 후 곧바로 이직을 결심했습니다.”

차 대표는 푸르덴셜생명 입사 최종 인터뷰를 마친 후 불합격 통지서를 받았다. 푸르덴셜생명이 미혼자를 보험설계사로 채용하지 않는 원칙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불합격을 순순히 받아들이지 않고 적극적으로 자신의 강점을 회사에 알렸다. “다시 찾아가 해당 본부장과 지점장을 만났어요. 실패를 해도 내가 책임을 질 테니 일할 수 있는 기회를 달라고 했죠. 처음에는 황당해 하더군요. 그런데 제 진심이 통해서였는지 예외적으로 입사를 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 저는 정말로 잘 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는 보험왕을 3차례나 거머쥐었다. 이후 메트라이프로 옮긴 그는 자신의 이름을 딴 대형 지점(CNP·차 앤드 파트너스)을 만들어 업계 최고 영업실적을 올렸다. 메트라이프의 영업 전성기를 이끌던 그는 ING생명(현 오렌지라이프) 영업총괄 부사장으로 이직한 뒤, 2015년에는 또 다시 AIA생명 영업총괄 수석부사장으로 둥지를 옮겼다. 그는 수석부사장이 된지 5개월만인 2016년 2월 AIA생명 대표에 올랐다. 국내 최초 보험설계사 출신 CEO이자, AIA생명 역사상 첫 번째 한국인 CEO로 업계의 많은 주목을 받았다.

차태진 대표와 AIA생명은 지난해와 올해에 걸쳐 큰 변화를 겪었다. 가장 큰 변화는 AIA생명의 법인 전환이었다. 올해 초 AIA생명은 ‘AIA생명 한국지점’이라는 꼬리표를 떼고 한국법인으로 공식 전환했다. 1987년 지점 형태로 한국에 진출한 AIA생명은 독립적 경영이 불가능했고 자체적으로 영업기반을 구축하는 데에도 한계를 갖고 있었다. 차 대표는 AIA생명 대표에 오른 뒤 본사에 법인 전환의 필요성을 강력하게 설득했다.

차태진 AIA생명 대표는 말한다. “국내 보험시장 환경에 유연하게 대처하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선 법인 전환이 필요했다고 생각했습니다. 법인 전환은 미래의 더 큰 성장을 위한 중요 포석이기 때문이죠. 법인 전환은 AIA그룹이 한국 시장에 대해 갖고 있는 책임감과 의지를 보여주는 또 다른 신호라고 생각합니다. 본사로부터 재무와 경영 독립성을 확보하면 유연하게 영업전략을 펼칠 수 있으니까요.”

국내에서 보험업은 성장세가 꺾이고 있는 산업이다. 2014년경부터 새로운 보험계약건수가 떨어지고 있다. 과거 한국은 AIA그룹이 관리하는 18개 해외 시장 중 톱6에 꼽히는 곳이었다. 한국에서 AIA의 비즈니스는 2004년에서 2007년까지 4년 간 정점을 찍었다. 이후 AIA의 한국 시장 성적은 계속 추락했다.

차태진 대표는 말한다. “저희가 톱6에서 밀려난 지는 꽤 오래됐습니다. 한국 보험시장은 수요보다 공급이 많은 상황입니다. 경쟁이 치열한데도 모든 회사들이 거의 비슷한 마케팅을 하고 있죠. 차 별화가 되지 않는 시장이라는 얘기죠. 새로 사회에 나와서 경제활동을 하는 인구가 줄어들고 있는 것도 하나의 원인이라 할 수 있습니다. 1인당 국민소득은 제자리인데 가처분 소득이 줄고 있기도 하고요. 한마디로 말해 보험에 새로 가입할 여력이 있는 인구가 줄고 있는 것입니다. 보험 업계 전체가 우울한 상황이죠.”

차태진 대표 합류 전 AIA생명은 부진한 영업 실적과 직원 이탈 때문에 철수설이나 매각설에 시달릴 정도로 고전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차태진 대표 취임 이후 사정이 서서히 달라지기 시작했다.



현재 AIA생명은 총자산 규모 15조 원으로 국내 23개 생명보험사 중 14위권에 있지만, 경영 성과만큼은 대형 보험사를 능가하고 있다. 국내 생명보험 시장이 포화 상태임에도 AIA생명은 당기순이익이 2년 연속 두 자릿수로 성장했다. 지난해 당기순이익은 2,876억 원으로, 1987년 한국 시장 진출 이후 최대였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AIA생명의 총자산 대비 수익성 지표인 총자산수익률(ROA)도 1.87%로 생명보험업계 평균 0.5%보다 높았고, 자기자본 대비 수익성 지표인 자기자본수익율(ROE) 또한 15.5%로 업계 평균 5.7%를 웃돌았다.

이 같은 실적은 2016년 2월 차 대표가 CEO에 오르며 밝힌 영업 중심 경영과도 맥을 같이 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그는 취임식에서 “보험사의 가장 큰 장점이자 근간은 영업에 있다”며 “21년간 생명보험 영업현장에서 얻은 경험을 바탕으로 회사의 체질을 바꿔 AIA생명을 새롭게 도약시켜 나가겠다”고 밝힌 바 있다.



차태진 대표가 취임 후 가장 먼저 시도한 건 ‘혁신’과 ‘성과주의’였다. 그는 취임하자 마자 ‘편안한 회사’로 여겨지던 AIA생명을 뒤집어 엎었다. 차 대표는 본인을 뺀 전 직원 680명에 대해 인사 발령을 냈다. 급진적이고 충격적인 조치였다. 차 대표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회사 경영 사정이 엄청나게 나빴어요. 뭔가를 천천히, 안일하게 바꿀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조직은 초기에 세게 변화를 주지 않으면 바뀌지 않아요. AIA생명은 30년 동안 한국에 있었습니다. 과거 AIA생명 직원들은 겉으로 보면 자유로운데 생각은 보수적이었어요. 누가 얘기하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는 직원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보신주의가 만연해 있었어요.”

그는 이와 동시에 영어로 되어 있던 부서 이름을 모두 한글로 바꿨다. 달랑 직원 한 사람이 책임자로 있는 부서는 없애버렸다. 역할과 책임이 불분명했던 리더급 직원들 일부는 직급을 아래로 내리거나 퇴출시켰다. 이렇게 업무를 재배치하는 데 세 달이 걸렸다.

차태진 대표는 AIA생명 내부 조직을 정비하면서 강력한 성과주의를 도입했다.


차태진 대표는 말한다. “저는 조직 성과의 절반은 조직 구조에서 나온다고 믿는 사람입니다. 조직구조와 리더를 어떻게 세팅하느냐에 따라 성과가 달라진다고 보는 거죠. 저는 AIA생명 조직을 구조화하고 리더십을 세우는데 성공했다고 자부합니다. 저는 한 달에 한 번 팀장급 이상 리더들을 모두 모아 1시 간 반씩 회의를 합니다. 이들과 제가 회사를 공동으로 경영한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 결과 새로 선임된 리더들이 CEO와 같은 곳을 바라보는 회사가 될 수 있었죠. 전체적인 방향성이 조율되어 있는 회사를 만들었다고 자부하고 있습니다.”

그는 직원들에 대한 보상 또한 최대화했다. “성과를 내도 정당한 보상이 없고, 치열한 경쟁 환경에도 노출되지 않으니 또박또박 돈만 타가는 직원들만 계속 늘어나는 상황이었죠. 내부 조직을 정비하면서 강력한 성과주의를 도입했습니다. 치열한 경쟁 사회에서 두각을 나타내려면 성과에 따른 합당한 보상이 이뤄져야 합니다. 그래야만 회사도 발전할 수 있어요.”

차 대표는 기존 보험 판매 방식에도 변화를 주었다. 보험사들이 외면해온 고령자, 유병자를 새로운 고객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보장 범위는 좁히되 보험 가입 심사 문턱은 대폭 낮췄다. 이 같은 상품은 보험 사각지대에 있던 사람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새로운 경로를 열어 주었다.

올해 9월 초 새로 출시한 ‘AIA바이탈리티’ 보험도 이처럼 틈새시장을 공략해 탄생한 상품이다. 많이 걸어 다니는 가입자에게 월 보험료를 최대 10% 깎아주는 이 상품에 가입하고 스마트폰에서 앱(AIA바이탈리티)을 다운로드 받아 실행하면, 가입자의 걸음 수가 자동으로 측정돼 포인트가 제공된다. 하루 7,500보를 걸으면 50포인트, 1만2,500보를 걸으면 100포인트를 지급하는 식이다. 많이 걷기만 하면 총 납입 보험료를 1,000 만 원 이상 아낄 수 있다.

AIA생명 고객이나 SK텔레콤 고객이라면 이 앱을 이용할 수 있는데, 바이탈리티 포인트를 쌓으면 브론즈· 실버·골드·플래티넘 멤버십 등급을 부여 받고 그에 따라 보험료를 최대 10%까지 할인 받을 수 있다. 그 밖에도 통신비 할인, 커피음료 할인권 등이 주어진다. 차태진 대표는 이 상품에 대해 “고객에게 제공하는 혜택을 뚜렷하게 만들어 기존 프로그램과 차별화를 꾀했다”며 “고객은 건강해져서 좋고, 그에 따라 보험금 청구가 줄면 보험사도 좋고, 의료비 지출 등 사회적 비용도 감소하는 일석삼조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보험 상품 AIA바이탈리티 홍보사진.


AIA생명의 변화는 이미 본사에 훌륭한 ‘성공 스토리’로 알려지고 있다. 차 대표는 말한다. “본사도 2010~2015년 한국에서 비즈니스 성과가 하락하는 걸 지켜보고 있었어요. 그 과정을 극복하려고 저를 CEO로 선임한 것이었고요. 저는 이미 두세 번 본사에 가서 한국 AIA의 조직 변화에 대해 발표를 했습니다. 내년 6월에는 본사에서 임원 150명이 한국을 방문해 벤치마킹 세션을 열 예정입니다.”

AIA생명은 대형사를 압도하는 탁월한 경영 성과를 거두면서 내실 있는 보험사로 확실하게 자리매김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차 대표는 말한다. “한국 시장의 경쟁 강도가 세다는 건 AIA그룹에서도 잘 알고 있습니다. 메이저 플레이어가 아닌 회사가 좋은 성과를 내려면 남들과 다르게 행동해야 합니다. 경쟁자들이 미처 생각하지 못 한 틈새를 공략해야 하죠. 저는 AIA생명이 고객들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스마트한 회사로 성장할 것이라 믿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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