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방문한 부산 기장군의 부산기장해양정수센터는 기계가 돌아가는 소리는커녕 시설을 오가는 사람마저 드물어 활기를 찾아볼 수 없었다. 역삼투압 방식으로 세계 최대 규모라는 담수 시설은 먼지를 뒤집어쓴 채 멈춰 있었고 설비를 운영해야 할 직원들도 눈에 띄지 않았다. 시설 유지 관리를 담당하는 두산중공업 관계자는 “해수는 일반 담수보다 부식 속도가 빠르기 때문에 이대로 시설을 방치할 경우 60억원 정도의 추가 비용이 발생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2014년 완공된 부산 기장의 해수담수화 시설은 벌써 4년째 멈춰 있다. 대내외 전문기관에서 400회 이상의 수질검사를 통과했고 자연 방사성 물질인 라돈도 기준치 이내로 나왔지만 소용이 없다. 약 11㎞ 떨어진 곳에 고리원자력발전소가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인근 주민들이 물 공급에 거세게 반대하고 있는 탓이다. 물 부족에 시달리는 우리나라의 안정적인 생활용수 공급을 도울 것으로 기대했던 해수담수화 시설을 둘러싼 논란이 계속되면서 추가 사업은 물론 수출에도 차질이 예상된다.
기장 해수담수화 시설은 하루 4만5,000톤의 식수를 생산해 5만가구에 공급할 수 있는 설비를 갖췄다. 기장 대변항에서 400m 떨어진 바다의 수심 10m에서 바닷물을 채취해 염분과 불순물을 제거한 뒤 미네랄 등을 첨가해 수돗물을 생산한다. 하지만 이곳에서 만든 식수는 주민들에게 단 한 차례도 공급하지 못했다. 주요 공급 대상으로 계획했던 기장군민들이 취수구가 고리원전과 가까워 삼중수소(3H)와 같은 방사성 물질이 식수에 포함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하며 식수 공급을 원천 거부하고 있어서다.
부산시 상수도사업본부 측은 담수화시설에서 만들어진 용수의 수질에는 문제가 없다고 설명한다. 2014년 12월 완공 이후 2016년까지 2년에 걸쳐 국내외 8개 전문기관에서 수질검사를 받은 결과 삼중수소와 세슘·요오드 등의 수치가 식수 기준에 부합함을 확인했다. 2015년 부산시 수질연구소와 대전 한국원자력연구원, 부경대에 의뢰해 방사성 물질을 검사했지만 천연 라돈 물질을 제외한 인공 방사성 물질 33종은 검출되지 않았다. 지층(암석)에서 주로 발생하는 천연 라돈 물질은 미국 수질기준치인 4,000피코큐리(pCi/L)보다 훨씬 낮은 10∼12피코큐리(pCi/L)만 검출됐다.
주민 불안을 해소하기 위한 수질 검사는 지금도 수시로 진행하고 그 결과를 공개하고 있다. 우려가 가장 큰 삼중수소는 매일 검사하고 요오드와 세슘134·137 등은 주 1회 취수구와 온정마을·태종대 등에서 감시한다. 그럼에도 주민들은 요지부동이다. 2016년 민간이 주도한 지역주민 찬반투표(전체 유권자 26.7% 참여)에서 투표자의 89.3%(1만4,308명)가 반대할 정도로 부산시와 입장 차가 크다.
해결책도 보이지 않는다. 부산시 상수도사업본부는 정수를 거쳐 만들어진 수돗물로 친환경 수소 에너지원을 개발하는 방안을 검토했지만 투자비만 18조9,000억원이 들 것으로 보여 현실성이 없다. 식수 외에 농업·공업용수로 활용하는 방안도 고려했다. 가격이 문제였다. 부산 기장해수담수화 시설의 생산 단가는 1톤당 1,187원(2014년 기준)으로 154원에 불과한 상수도 공업용수 비용보다 7배 이상 비싸다. 생산 단가를 낮추기 위해 담수 추출 후 남는 고농도 염분수(하루 5만5,000톤)를 활용하는 방안 역시 경제성이 낮은 것으로 분석됐다.
논란이 계속되면서 우리나라의 물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관련 사업은 물론이고 부산시가 미래 산업의 일환으로 서부산권에 조성할 계획이었던 제2 해수담수화 시설 건립에도 차질이 생길 것으로 보인다. 국제인구행동연구소에 따르면 한국의 1인당 이용 가능한 수자원량은 1,453㎥(세계 153개 국가 중 129위)로 물 스트레스 국가(1,700㎥ 이하)로 분류된다. 오는 2020년 용수부족이 예상되는 지방자치단체는 65개, 2025년에는 74곳으로 늘어날 정도로 물 부족이 심각하다. 정부는 문제 해결을 위해 용수공급의 한계가 있는 도서·해안지역의 경우 해수담수화를 물 부족 해소의 한 방법으로 추진해왔다.
부산시는 시설 가동을 더는 늦출 수 없다는 입장이다. 올해 초 가동이 전면 중단된 후 시설 부식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는 점도 부담이다. 송양호 부산시 상수도사업본부 본부장은 “시설 방치가 계속된다면 부식을 막을 수 없다”며 “주민들을 설득할 수 있는 대안을 찾는 동시에 공론화위원회에서 조정하는 방향 등을 검토해 빠른 시일 내로 결론이 나와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기장=정순구기자 soon9@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