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는 중국과 동남아시아에 이은 투자의 블루오션입니다. 루블화 가치 하락으로 달러 기준 자산가치가 크게 떨어진데다 러시아가 중국보다 한국 투자를 선호하는 지금이 최적의 기회죠.”
황규상 변호사와 이화준, 알렉산드라 토브스틱 러시아 변호사는 3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율촌 본사에서 시그널팀과 만나 “최근 국내 기업들은 러시아를 포함한 중앙아시아의 내수시장을 바라보고 투자를 늘리고 있다”며 “내년 초 주요 대기업의 투자 소식이 기대된다”고 말했다.
세 사람은 현대중공업그룹이 롯데그룹에 다양한 러시아 사업을 넘기는 작업을 함께했다. 현대중공업은 지난 2017년 12월 연해주에 있는 여의도 땅 40배 크기의 농장을 롯데상사에 320억원에 매각했다. 올 4월에는 블라디보스토크에 있는 현대호텔을 롯데호텔에 팔았다. 이들 거래는 두 그룹이 각각 사업재편을 위해 직접 접촉해 이뤄진 것으로, 국내 로펌 중에는 러시아 법률자문에 강점이 있는 율촌이 처음부터 끝까지 마무리했다.
러시아 연해주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이 변호사는 “이번 거래가 진행된 블라디보스토크는 원래 해삼위(海蔘威)라는 이름을 갖고 있었던 중국 영토였는데 러시아로 넘어갔고 역사적으로는 항일운동의 중심지”라며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20여년 전 한국 기업의 북방 진출을 위해 지었고 이제는 롯데그룹이 경영하면서 현지에서도 최고급 호텔로 유명하다”고 말했다. 현대가 해외 기업이 아닌 롯데에 매각을 타진한 것도 한국인을 위한 호텔이라는 명분을 살리기 위해서라는 후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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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촌은 거래 과정에서 한국과 다른 러시아의 규제, 비교적 덜 알려진 국내 대기업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데 힘을 쏟았다. 황 변호사는 “러시아는 외국인 자본이 농장 지분의 49% 이상을 보유할 수 없으며 지분을 매각할 때는 우선매수청구권을 갖고 있는 러시아 주주의 서면 동의를 받아야 한다”며 “호텔 역시 옛 도심 보전을 위한 규제 때문에 페인트칠조차 하기가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이 변호사는 “러시아 주주는 롯데그룹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에 매각에 동의하기를 꺼렸지만 서울 제2 롯데월드타워에 초청해 국내에서 차지하고 있는 위상을 직접 보여주면서 설득시켰다”고 말했다.
이들은 CJ그룹 역시 러시아 진출에 관심이 높다고 귀띔했다. 이 변호사는 “CJ대한통운은 박근태 대표가 한러기업협의회장을 맡고 있고 대통령 직속 북방경제협력위원회도 참여하는 등 투자 기회를 속속 엿보고 있다”고 전했다. CJ대한통운은 러시아 내륙철도 운송업체인 페스코와 협력해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나오는 수산물을 가공해 해외에 수출할 기회를 모색하고 있다.
이들의 관심은 러시아를 넘어 북한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 변호사는 “올해 8월 열흘간 북한을 방문했더니 외국자본이 들어와 평양에 쇼핑몰을 운영하고 있었다”며 “북한 법이 러시아 법과 유사한 점이 많아 러시아에 진출한 한국 기업이 검토할 만하다”고 조언했다. 다만 황 변호사는 “해외에 진출하려는 국내 기업 입장에서는 한국과 해당국이 양자투자 조항과 이중과세 조항이 맺어져 있는지가 가장 중요하다”며 현실적인 제약을 말했다. 이 변호사는 “한국 기업이 북한에 직접 투자하기보다 러시아나 중국과 손잡고 들어가면 정치적 위험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면서 “북한 입장에서도 한국 이외의 다른 우호국을 내치기는 부담스럽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임세원·강도원기자 why@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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