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 곳 잃은 돈이 달러 상품에 기웃거리고 있다. 주식시장과 부동산시장이 급격하게 위축돼 마땅한 투자처가 없는 상황에서 한미 금리 차가 역전돼 원화보다 운용 수익이 높은 달러 투자가 부각되는 모습이다.
4일 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올해 10월까지 달러 환매조건부채권(RP) 일평균 매입 잔량은 1조5,715억원으로 지난해 일평균 잔량(1조4,047억원)보다 15% 이상 증가했다. 미국 금리 인상이 본격화되던 지난 6월에는 달러 RP 일평균 매입 잔량이 2조529억원으로 2016년 4월 이후 2년여 만에 2조원을 넘어섰다. 달러 RP 매입 잔량이 많다는 것은 RP거래가 시작돼 환매가 돌아오지 않은 거래 잔액이 크다는 것으로 그만큼 달러 RP 발행이 활발하다는 의미다.
기존에 달러 투자가 예금 등 주로 보관 용도였다면 지금은 자산을 불리는 수단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목소리다. 이와 관련해 달러 RP는 이자수익과 환차익을 동시에 얻을 수 있는 상품으로 뜨고 있다. 달러 RP는 증권사가 보유하고 있는 달러 표시 채권을 투자자에게 매도하고 일정 기간 후 약정 가격으로 증권사가 다시 매수하는 것이다. 즉 투자자가 증권사에 돈을 빌려준 뒤 약정 기간 후 원리금을 되돌려 받는 상품이다.
신한금융투자가 지난달 말 내놓은 연 3% 금리의 달러 RP가 대표적이다. 이는 달러 RP로 연 3% 금리를 내세운 첫 상품이다. 총 2억달러(2,000억원) 한도인 이 상품은 출시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자산가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며 최대 가입한도 100만달러 내에서 고액의 가입 문의가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신증권 달러 RP도 높은 금리로 인기를 끌고 있다. 연 최저 1.7%에서 최고 2.3%를 제공하며 잔액은 올 1월 1억달러에서 이달 현재 1억6,560만달러로 60%가량 늘었다.
증권가에서는 미국이 추가로 금리 인상에 나설 가능성이 높아 달러 상품 투자가 더 많아질 것으로 본다. 6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2008년 이후 10년 만에 기준금리 2% 시대를 열었는데 올해만 세 차례 인상했다. 운용사 관계자는 “연준이 12월에 이어 내년에 세 차례 금리를 올릴 경우 기준금리 3% 시대를 목전에 두게 된다”며 “달러 투자에 대한 수요는 한동안 재테크 시장의 한 축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미국달러선물지수를 기초로 달러의 방향성에 투자하는 미국선물 상장지수펀드(ETF) 투자도 늘고 있다. 달러화 강세로 달러선물지수 상품의 가치도 올라가기 때문이다. ‘삼성KODEX미국달러선물레버리지특별자산상장지수투자신탁’의 경우 연초 이후 수익률은 11.55%에 달하고 ‘미래에셋TIGER미국달러선물레버리지특별자산상장지수투자신탁’과 ’키움KOSEF미국달러선물레버리지특별자산상장지수투자신탁’의 수익률도 각각 11.36%, 10.35%다.
달러 상품이 인기를 끌자 오랜만에 달러주가연계증권(ELS) 상품도 등장했다. KB증권은 지난달 말 3년 만기, 최고 연 7.7% 수익률을 내건 달러 ELS를 내놓았다. 달러 ELS는 2015년 대신증권의 히트상품이다. /김보리기자 bori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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