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수학을 기반으로 한 암호학이 사이버 세상에 질서를 부여하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소프트웨어를 보호하는 암호 기술은 아직 충분하지 않고 블록체인은 투명성을 위해 암호화를 사용하기 어렵다는 문제가 있어요.”
천정희(49) 서울대 수리과학부 교수는 5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세상의 질서를 물리 등 여러 과학 법칙이 규정한다면 사이버 세상에서는 수학이 그 역할을 하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KAIST 수학 학·석·박사 출신으로 한국전자통신연구원을 거쳐 미국 브라운대에서 박사후연구원(포닥)을 했다. 세계적 암호학회인 유로크립트에서 최우수논문상을 받은 데 이어 지난해 미국 게놈데이터보호 경연대회에서 우승했다.
사이버 시대 개인정보 보호·보안 이슈와 함께 빅데이터 활용의 필요성이 공존하는 상황에서 양쪽을 모두 만족시킬 수 있는 수학 암호 개발이 필요하다는 게 그의 입장이다. 그는 “사이버 세상에서는 암호화폐의 복제를 제한하거나 나만의 고유한 데이터를 확보해야 하고 동시에 개인정보를 암호화해 보호하면서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게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를 위해 우선 현재까지 최고의 암호 체계로 꼽히는 다중선형함수의 허점을 파고들어 좀 더 완벽한 암호 개발을 유도하고 있다. 다중선형함수는 지난 2002년 댄 보네 교수와 앨리스 실버버그 교수가 제안한 뒤 다중 키 교환 등 여러 암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지며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난제인 난독화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으로 꼽히며 암호학의 연금술로 여겨지고 있다.
하지만 천 교수는 이창민·류한솔·김지승·한민기 등의 학생 연구원과 함께 다중선형함수의 설계에 약점이 있음을 증명했다. 실제 세계적으로 다중선형함수를 기반으로 한 100여개의 연구성과의 암호를 풀어 무력화했다. 그의 연구를 미국 국방고등연구원(DARPA)에서도 지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는 “4세대 암호 기술의 총아인 암호학적 다중선형함수를 해독해 더 안전한 암호를 만드는 데 기여하는 게 목표”라며 “학회에서 암호학자들을 만나면 ‘다중선형함수를 활용한 암호 연구를 또 깬 것이 있느냐’고 묻고는 한다”며 웃었다.
천 교수는 항상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가’ ‘가치 있는 일은 무엇인가’를 자문한다. 그중 동형암호를 활용해 블록체인 기술을 안전하고 편리하게 구현될 수 있도록 만들기 위해 실리콘밸리에 스타트업도 차렸다. 한미 공동연구를 통해 이론과 현실 모두에서 연구 효과를 높이기 위해서다. 그는 “블록체인에서 화폐 가치를 부여하고 개인정보를 보호하며 정보를 투명하게 관리하기 위해 동형암호 방식으로 솔루션을 모색하고 있다”고 밝혔다.
무엇보다 천 교수는 한 사람의 재능이 아닌 세계 최고의 암호 그룹을 만들고 싶다고 포부를 피력했다. 그는 “동형암호 기술을 실용화해 개인정보 보호와 데이터 분석이라는 일견 상충하는 두 목표를 완전히 융합하기 위해서는 암호그룹 간 국제연구가 활성화돼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 /고광본 선임기자 kbgo@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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