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투자 전문가 짐 로저스가 리조트·골프장 사업을 하는 아난티(025980)의 사외이사가 된 배경에 관심이 모이고 있다. 짐 로저스는 북한 투자에 긍정적이고 아난티는 국내 민간기업 중 유일하게 북한에 골프장을 지어 운영한 경험이 있다는 점 때문에 아난티를 선택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아난티 측은 금강산 골프장 재개장은 정치·외교적 환경이 바뀌어야 가능한 만큼 당장 달라지는 것은 없다면서도 중장기적으로 짐 로저스의 합류가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11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아난티는 오는 27일 주주총회에서 짐 로저스를 임기 3년의 사외이사로 선임할 예정이다. 1942년생인 짐 로저스는 1969년 조지 소로스와 퀀텀펀드를 설립해 10년 간 4,200%의 경이적인 수익률을 올렸다. 최근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북한을 1980년대의 중국처럼 투자 전망이 높다고 강조하면서 주목을 받았다. 그는 통일 이후 남북한 관광 인프라 수요가 높아질 것이라면서 대한항공에 투자했다고 공개하기도 했다.
짐 로저스는 아난티의 2대 주주인 중국 민생투자유한공사를 통해 인연을 맺었고 이들의 사업 형태에 공감해 사외이사직을 수락한 것으로 전해졌다. 중국 민생투자유한공사는 2015년 아난티에 1,806억원을 투자했다. 아난티는 투자를 계기로 중국 민생투자유한공사 소유의 골프장과 리조트 경영에 대해 자문을 해주고 있지만 메인 비즈니스는 아니다.
짐 로저스가 사외이사를 맡은 것도 중국 사업보다는 북한에 방점이 찍혀 있다는 게 업계의 해석이다. 아난티는 2008년 김정일 정권 시절 900억원을 들여 금강산에 골프장과 온천 시설을 짓고 회원을 유치했다. 165만㎡(약 50만평)의 대지에 18홀 규모의 골프장을 짓고 자쿠지 빌라 96실, 유황 노천온천 등이 포함됐다. 아난티 그룹은 첫 사업인 남해 리조트에서 번 돈의 상당부문을 금강산에 쏟아부었다.
관련기사
아난티는 국내 기업 중 현대그룹과 함께 유일하게 북한에서 사업을 벌였다. 사업권만 가졌던 현대와 달리 직접 북한에 대규모 자본을 투자하고 시설을 지었다. 당시 실향민을 중심으로 거래된 회원권의 분양가격은 1,700만원(기명)·2,500만원(무기명)에 달했다. 그러나 회원 모집 완료 두달 만인 2008년 7월 금강산 관광객 박왕자 씨 피격 사건이 벌어지며 현대그룹과 아난티 가 운영했던 금강산 관광은 전면 중단됐다. 북한은 2010년 아난티가 운영하던 금강산 골프장과 온천에 대해 자산동결 조치를 취해 지금까지 묶여 있다. 아난티는 900억원을 들여 지은 금강산 골프장의 가치가 현재는 500억원 이하로 떨어졌다고 보고 있다.
금강산 골프장 회원들은 아난티가 국내에서 운영하는 아난티서울CC·세종에머슨CC·에머슨CC·남해아난티를 이용할 수 있다. 중국투자유한공사와 짐 로저스가 주목한 것도 하나의 회원권으로 여러 곳의 골프장을 이용할 수 있는 아난티의 공유 시스템이었다. 금강산 골프장 회원권은 분양가 2,500만원 하던 것이 남북 경색 이후 올해 상반기에는 800만원까지 하락했지만 최근에는 북미정상회담에 대한 기대감이 반영되며 1,700만원까지 상승했다.
다만 남북경협 재개 시점이 언제가 될지 예상할 수 없는 상태에서 금강산 골프장 재개장은 머나먼 일이라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아난티는 2008년 당시 남북 사이의 투자보장에 대한 합의서에 따라 금강산 골프장 등에 대해 50년의 운영권 등을 보장받았지만 2년 만에 휴지 조각이 됐다. 정치적 사건으로 인한 민간기업의 손실이지만 보상받을 길도 없었다.
아난티 관계자는 “세계적인 투자자가 사외이사가 된 만큼 앞으로 사업을 하는데 있어 투자자들의 신뢰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며 “다만 금강산 골프장은 경협이 언제 재개될지 알 수 없고 재개된다고 해도 과거보다 확실한 보장이 없다면 다시 뛰어들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임세원기자 why@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