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룻밤 동안 전 세계 어린이들에게 선물을 전해주는 ‘기적 같은 할아버지’가 산타클로스뿐은 아니다. 동양에는 산타클로스 못지않은 도술로 사람들을 놀라게 한 신선들이 있었다. 마침 서울 용산구 아모레퍼시픽미술관(APMA)에서 처음 공개 전시된 조선 말기 ‘해상군선도(海上群仙圖)’ 10폭 병풍에 바다를 건너는 신선들이 대거 등장한다. 게다가 1년 6개월 간에 걸친 고난도 복원 끝에 되찾은 붉은색과 초록색이 크리스마스 분위기까지 떠올리게 하는 수작이다.
사연 있는 병풍이다. 고종 임금은 가족처럼 가까이 지내던 독일인 사업가 칼 안드레아스 볼터(1855~1916)가 본국으로 돌아간다는 말을 듣고 만감이 교차했다. 볼터는 대한민국 최초의 외국인 회사인 세창양행의 공동창업주였는데 한국에서 20여 년을 지내며 일곱 남매를 낳아 키운 터였다. 고종과 볼터의 가족이 얼마나 가까웠느냐면 그 집 둘째 딸이 순종의 소꿉친구였을 정도다. 그런데 을사늑약으로 한국이 외교권을 박탈당하자 볼터는 독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고종은 보내야 할 사람에게 선물 하나 챙겨주고 싶었다. 그래서 그림을 그리게 했다. ‘해상군선도’였다. 그림 속 신선들은 신들의 여신 격인 서왕모(西王母)가 사는 요지연(瑤池宴)에 초대받아 참석하러 가는 길이다. 바다를 건너는 신선처럼 볼터의 식구 또한 무사히 대양을 건너 고향으로 가라는 기원을, 가서도 잘 살라는 축복을 그림에 담았다.
통상 동양의 그림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전개되는지라 가장 우측에, 머리가 혹처럼 불룩 솟은 신선부터 보자. 북극성처럼 남극 하늘을 지킨다는 남극성을 의인화한 수노인(壽老人)이다. 항상 보이는 북극성과 달리 남극성은 전쟁이 나거나 나라가 혼란에 빠지면 보이지 않다가 천하태평이 다시 찾아오면 비로소 모습을 드러낸다고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지금의 처녀자리 쯤에 해당하는 남극성이 보이면 얼른 손 모아 행복하길, 장수하길 빌었다. 그러니 수노인은 천하태평을 기원하는 뜻을 담고 있다. 두상부터 개성 있는 그는 도복을 입고 사슴 한 마리를 늘 데리고 다녔다.
그 곁에는 순하게 생긴 산양 한 마리와 함께 황초평(黃初平)이 등장한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어릴 때부터 양치기였던 그인지라 옷은 너덜너덜 남루하고 짚신도 닳고 닳아 발가락이 삐죽 나올 지경이며 한쪽은 그마저도 없어 맨발이다. 도를 닦은 황초평은 흰 돌을 양 떼로 만들었다는 전설도 전한다. 소심하게 생긴 황초평 등 뒤로 터질 듯한 배를 불룩 내밀고, 머리는 양옆으로 쌍상투를 튼 종리권(鍾離權)이 앉아 있다. 손에는 그의 상징인 부채 ‘파초선’이 쥐어져 있다. 전하는 얘기로는, 남편이 “내 무덤의 흙이 마르기 전에는 재혼하지 말라”고 유언하는 바람에 무덤가에 앉아 흙 말리려고 부채질하던 한 과부에게서 얻은 것이라고 한다. 종리권이 신령한 힘으로 부채질해 순식간에 무덤이 마르자 그 과부는 기뻐하며 부채도 둔 채 가버렸다 한다. 그의 파초선은 죽은 사람의 영혼을 되살릴 정도로 영험한 힘의 상징이다.
부리부리한 종리권의 눈길이 닿은 곳에는 깍지 낀 손으로 무릎을 모으고 앉은 제자 여동빈(呂洞賓)이 있다. 당나라 사람이던 그는 과거에 연거푸 낙방하고는 술집을 전전하며 살다가 한 주막에서 도사를 마주하게 된다. 그가 바로 종리권이었다. 재물과 색(色)에 대한 질문 10개를 통과해 그의 제자가 됐고 득도해 신선이 됐다. 앓는 사람들에게는 치료 약을 주기도 하고, 붓글씨 쓰는 먹을 팔아 그 돈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돕기도 했던 서민들의 수호신이었다. 그의 상징은 등에 찬 보검이다. 검법의 진수를 배우고 하사받은 것이라 하며 그 칼로 용도 물리쳤고 세상의 악을 베기도 했다. 여동빈은 세 자루 검을 가졌는데 “하나는 번뇌를 끊고, 또 하나는 분노를, 나머지 하나는 색욕을 끊는다”고 했다 하니 날 선 검이라기보다는 심검(心劍)이었나 보다. 그 아래, 새빨간 호리병을 든 흰 수염의 도인은 서왕모와 더불어 신선계의 큰 어른으로 불리는 인물이며 종리권의 스승이기도 한 동화자(東華子)다. 이렇게 동화자부터 종리권, 여동빈으로 이어지는 사제관계는 ‘삼신도’로 즐겨 그려졌다.
병풍 한가운데 시녀와 동자를 거느리고 앉은 이는 자염도사(紫髥道士)로, 붉은 수염이 특징이다. 그 맞은 편에는 복성(福星)·녹성(祿星)·수성(壽星)의 세 별을 의인화 한 ‘복록수 삼성도’가 그려져 있다. 아이들에 둘러싸인 복성과 감투 쓴 록성이 수성 노인의 손바닥에 놓인 복숭아를 에워싸고 있다. 다복하고 출세하고 오래 살기를 염원하는 그림이니, 옛 사람들은 이렇게 삼성도를 걸어만 두고도 흐뭇해했다.
그 옆에, 한쪽 뿔만 높이 자란 사슴 곁에서 피리 부는 소년은 한상자(韓湘子)다. 그가 부는 피리 소리는 만파식적처럼 만물을 소생하게 한다고 전한다. 손에 딱딱이를 들고 관복 차림으로 근엄하게 선 사람은 조국구(曺國舅), 붉은 영지버섯을 손에 든 도인은 지리학에 능숙했던 청오자(靑烏子)라 한다. 중국 후한(後漢) 때 만들어진, 풍수지리의 원전 격인 청오경(靑烏經)이라는 책이 있는데 작자미상의 저자를 청오자라고도 부를 정도로 그는 자체로 풍수를 뜻하며 늘 사슴과 함께 그림에 등장한다.
신선과 그 보좌인물까지 사람이 총 21명이요, 사슴과 양이 합쳐 4마리 등장하는 대작이다. 신선 그림은 중국에서 시작된 도교 중에서도 원나라 때 가장 유행한 ‘전진교’가 중요한 배경이 됐다. 원나라 때 지은 영락궁에는 그래서 여동빈의 일대기와 물을 건너 서왕모를 만나러 가는 팔선(八仙)이 벽화로 전한다. 정조는 신과 인간의 중간 격인 신선을 정치적으로도 이용했다. 하루는 정조가 김홍도를 불러 궁궐 커다란 벽에 바다 건너는 신선들을 그리라 명했다. 김홍도 연구 전문가인 진준현 서울시 문화재위원에 따르면, 김홍도는 관모까지 벗어 던지고 비바람 치듯 붓을 휘둘러 순식간에 그림을 완성했고 이 그림을 본 사람들은 파도가 쳐서 집이 무너질 것만 같고 신선들이 구름을 타고 날아갈 것만 같다고 감탄했다 한다.
그림을 선물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고종은 그런 김홍도 화풍으로 그려달라 주문한 모양이다. 조인수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이론과 교수는 “병풍 속에 등장하는 21명의 인물은 다양한 자세와 옷차림으로 생동감이 넘치는데 인물 표현은 김홍도가 1779년에 그린 ‘신선도 8폭 병풍’(국립중앙박물관 소장)과 똑같다”면서 “아마도 궁중에 전해져 내려오던 김홍도의 유명한 신선 그림을 바탕으로 한 듯하다”고 분석했다. 풍속화 못지않게 생생한 인물의 표정, 넘실대는 파도 위로 물결만큼 부드러운 옷자락을 휘날리는 신선의 모습이 그 영향을 미루어 짐작하게 한다.
이 10폭 병풍을 선물 받은 볼터 가족은 무사히 독일로 귀국했다. 훗날 둘째 딸 마리온 볼터가 병풍을 물려받았고 그녀는 이를 딸인 바바라 미셀 예거후버에게 또 물려주었다. 예거후버는 어릴 적 가족들이 모여 앉아 그림을 보며 조선을 추억했고, 신선들이 고국으로 돌아가기를 바라곤 했다며 이 그림을 한국으로 돌려보냈다. 그리하여 지난 2013년 6월 서울옥션을 통해 병풍이 공개됐고 경합 끝에 6억6,000만원에 낙찰됐다. 구매자는 한국미술에 관심 깊었던 아모레퍼시픽미술관이었고 연구 및 복원을 거쳐 유례없는 병풍 기획전인 ‘조선, 병풍의 나라’를 통해 이 명작을 공개했다.
이렇게 바다를 건너며 각자의 도술을 뽐낸 신선들은 곤륜산 요지연 잔치에 도착해 3,000년에 한 번 열매를 맺는다는 천상의 복숭아인 반도(蟠桃)를 대접받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온갖 축복의 의미를 함축한 이런 그림 품은 병풍을 둘러치고 있으면 그곳이 곧 낙원이라는 뜻이다. 산타클로스가 몰래 전하는 것 못지않은 선물을, 이 그림으로 대신한다.
/조상인기자 ccs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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