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국민연금 개편안은 두 번의 연기 끝에 원래 계획보다 세달 늦게 공개됐다. 보험료 인상을 뼈대로 한 개편 방향에 대해 문재인 대통령이 “대통령이 보기에도 납득할 수 없는 일”이라거나 “국민 여론을 더 충실히 반영하라”며 두 차례 퇴짜를 놓은 결과다. 마침내 공개된 정부 안에는 보험료를 아예 안 올리거나 세금으로 주는 기초연금을 대폭 높이는 안 등 총 4개 선택지가 담겼다. 돌고 돌아 내놓은 개편안이 “결국 연금개혁 안 하겠다는 것”이란 비판을 듣는 이유다.
◇기초연금·소득대체율↑…세대간 형평성 후퇴= 정부가 내놓은 1~2안은 정작 국민연금에는 손도 안 댔다. 특히 2안은 기초연금만 일괄적으로 40만원까지 인상해 ‘월 100만원’ 연금을 달성하자는 것이다. 보험료 인상 없이 받는 돈만 늘어나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세금 청구서’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복지부가 뒤늦게 공개한 재정소요 추계를 보면 2안이 선택될 경우 내년도 11조5,000억원인 기초연금 예산은 2026년 28조6,000억원으로 2.5배 급증한다. 복지부는 2026년까지만 공개했지만 고령화가 진전되는 2088년에는 소요예산이 1,416조원까지 늘어난다는 전망도 있다. 윤석명 보건사회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현세대 국민 눈높이에만 따른 안”이라며 “기초연금은 취약계층 중심으로 차등지급해야 하지만 그런 구상은 없다”고 지적했다.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을 45~50%로 높여 ‘더 받자’는 3~4안도 전문가들은 “오히려 개악”이라고 평가한다. 소득대체율이 40%로 떨어지는 현행법상으로도 보험료를 올리지 않으면 기금이 바닥나는 2057년부터는 한꺼번에 약 29%의 보험료를 내야 한다. 3~4안은 보험료도 동시에 높이자고 했지만 당장 더 받는 비용을 메우는 수준이어서 미래세대 부담 완화에는 효과가 없다.
오히려 기금 소진 후 자식세대 세금으로 적자를 메워야 할 위험만 커졌다. 국가가 적자를 보전하는 식의 ‘지급보장’을 법에 명시하겠다고 정부가 약속하면서다. 보험료를 제때 올리지 않아 적립기금이 바닥나면 연금지급액은 결국 세금을 걷어 마련할 수밖에 없다. 제4차 재정추계에 따르면 현행법이 유지될 경우 국민연금 적자 규모는 기금이 소진되는 2057년 첫해에만 123조8,810억원이다.
이처럼 ‘더 내고 덜 받는’ 방안이 제외되면서 국민연금의 장기재정 균형 유지를 위해 정부가 지속적으로 급여·보험료를 조정해야 한다고 명시한 국민연금법상 의무조차 저버렸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민연금제도발전위원장이었던 김상균 서울대 명예교수는 “국민연금법이 5년마다 제도 개선을 하도록 한 것은 제도의 성숙과 지속가능성을 도모하기 위한 것”이라며 이번 정부안에 대해 “연금개혁의 취지가 사라졌다”고 평가했다.
◇투자수익률 대책 뒷전= 보험료 인상을 통한 재정안정화 방안이 사실상 제외된 만큼 기금 투자수익률을 높이기 위한 노력이 더 절실해졌지만 이번 정부안에도 이에 대한 언급은 부실하다. 복지부는 “자산배분을 더 공격적으로 하고 기금운용 거버넌스를 효율화하는 방안을 곧 발표할 계획”이라며 기금운용 수익률 제고방안은 재차 미뤘다. 대강의 윤곽을 담기는 했다. 위험자산 투자 비중을 50%에서 60% 안팎으로, 해외투자도 30%에서 45% 안팎으로 높이고 기금운용본부장 권한 강화, 기금운용직 보수인상·채용 확대 등 기금운용 노력을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캐나다 공적연기금(CPPIB·79%), 네덜란드 공적연금(ABP·62%) 등 높은 수익률을 올리는 세계 연기금들은 위험투자 비중이 70% 안팎이라는 사실을 고려하면 ‘60% 내외’ 목표도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올 상반기 국민연금의 투자수익률은 0.9%에 그친 반면 CPPIB는 6.6%, ABP는 2.3%를 기록했다. 기금운용본부의 독립성·전문성을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에도 부응하지 못하고 있다. 복지부는 ‘옥상옥’ 지적을 받는 기금운용위원회의 정부 당연직위원을 6명에서 3명으로 줄이는 대신 전문가가 아닌 근로자·사용자 대표를 더 늘리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장기 재정목표도 삭제= 당초 제도발전위는 ‘70년간 적립배율 1배’ 유지를 재정목표로 명시할 것을 권고했다. 앞으로 연금개편을 할 때마다 향후 70년 뒤에 1년치 연금지급액이 남아있을 수 있도록 제도를 손질하자는 것이다. 정권이나 여론에 흔들리지 않는 ‘연금개혁의 원칙’인 셈이다. 미국(75년 후 수지균형), 일본(100년 후 적립배율 1배) 등 대부분의 나라가 재정목표를 정해두고 있다. 하지만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이에 대해 “많은 분이 잘 이해를 못하신다” “70년 뒤를 목표로 두는 것은 비현실적”이라는 이유로 정부안에 반영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세계 추세는 장기계획을 바탕으로 연금개혁을 하고 그 안에서 중단기개편을 지속하는 것인데 우리는 반대로 가고 있다”며 “목적지도 정하지 않고 비행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빈난새기자 binther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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