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하지 않으면 기억도 무력해지기 마련이다. 기록한 자료가 체계적이고 지속적으로 쌓이면 사료(史料)가 된다.
국내 최초의 미술자료 전문 아카이브 기관으로 문 연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이 개관 10주년 기념전시로 ‘아카이브 10년’을 기획했다. 미술관련 단행본과 잡지, 미술인의 육필원고와 사진 등 아카이브 70여 점이 전시장을 빼곡히 채웠다.
고희동을 비롯한 안중식과 조석진 등이 1918년 한국 최초로 결성한 미술인 단체인 서화협회가 1921년 창간호로 펴낸 ‘서화협회회보’는 역사적 가치가 크다. 서화협회는 협회전을 통해 이상범·노수현·나혜석 등의 작품을 선보이고 이여성·이응노·김기창 등의 신인을 배출하며 일제강점기 문화정체성을 지키고자 애썼지만 1937년 조선총독부에 의해 활동이 중단됐다. 한편 조선총독부는 1922년부터 조선미술전람회를 개최해 우리나라 미술 근대화를 이끌었지만 동시에 관전(官展) 성격으로 근대 미술의 일본화에도 한몫했다. 일제가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후로는 정식 도록 대신 약식으로 ‘선전목록’을 발간했는데, 이번 전시에서는 1944년에 조선총독부가 펴낸 ‘제23회 조선미술전람회 목록’을 볼 수 있다. 이외에도 ‘묵란첩’(1910년대), ‘정정 보통학교학도용 도화임본 3권’(1911), ‘이왕가기념 사진첩 초간본’(1919)을 비롯해 위창 오세창이 한국 화가 인명사전 격으로 집필한 ‘근역서화징’(1928)과 안중식의 화집인 ‘심전화보’(1020~30년대), 우리나라 최초의 칼라도록인 ‘오지호·김주경 2인 화집’(1938)도 전시돼 잘려나간 일제강점기의 역사의 한 장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조선박람회’(1929)와 ‘조선미술전람회’(1922~44), ‘대한민국미술전람회’(1949~81) 등은 연구자들의 관심을 끌 만하다.
전시장 한 켠, 보라빛 색 바랜 전시 티켓에도 사연이 있다. 지난 1972년 당시 덕수궁에 있던 국립현대미술관이 개최한 ‘한국근대미술 60년 전(展)’ 입장권이다. 김달진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장은 어려서부터 잡지를 뒤져 서양 명화를 오려 모으곤 했는데, 이 전시를 계기로 우리 근대미술 자료를 수집하기로 결심한다. 이후 국립현대미술관 자료실에 근무하고 가나아트센터 자료실장을 거친 그의 48년 아카이브 인생이 시작됐다. ‘걸어다니는 미술사전’이란 별명으로 통하는 김 관장은 지난 2001년 말 ‘김달진미술연구소’를 열었고 2008년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을 개관했으며 2015년에 지금의 홍지동으로 이전했다. 앞서 2014년에는 공들여 수집한 미술자료 중 사료적 가치가 있는 2만 여 점을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했다. 전시는 내년 4월20일까지.
/조상인기자 ccs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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