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GM의 R&D 법인 분리 가능성이 높아졌다. 2대 주주인 산업은행이 ‘찬성’ 입장으로 돌아서면서다. GM 본사는 신설 법인을 준중형 SUV(스포츠유틸리티차)·CUV(크로스오버유틸리티차) R&D 거점으로 지정하고, 제3국에서 물량을 들여와 최소 10년간 유지한다. 또 산은은 오는 26일 한국GM 경영정상화를 위해 예정대로 4,045억원을 추가로 출자할 예정이다.
산은은 18일 GM과 이같은 내용으로 합의를 봤다고 이동걸 산은 회장이 발표했다. 산은은 GM의 일방적인 법인 분리 강행에 반대해 법원에 가처분 신청을 냈고, 서울고등법원이 최근 이를 인용하면서 법인 분리는 중단됐다. 그러나 산은은 GM으로부터 법인 분리 사업계획서를 받아 외부 용역기관에 검토를 맡긴 뒤 찬성으로 선회했다.
검토 보고서는 법인 분리로 생산법인과 R&D법인 모두 영업이익이 증가하고, 부채비율도 개선되는 등 경영 안정성이 높아지는 측면이 있다고 봤다. 법인 분리는 또 비용절감 효과를 거둘 것으로 전망됐다. 이외 산은이 법인 분리 관련 계약 당사자가 아니어서 본안소송의 승소 가능성이 작다는 점도 고려됐다. 그 결과 산은은 법인 분리에 찬성하고 GM은 신설 법인을 글로벌 차원의 준중형 SUV·CUV 거점으로 지정해 최소 10년간 유지하기로 합의했다. ‘10년 이상의 지속 가능성’이나 ‘추가 R&D 물량 확보’를 위해서 노력한다는 문구도 합의문에 담았다.
이동걸 회장은 “GM의 요청으로 구체적인 수치를 밝힐 수 없지만, (국내 업체의) 부품 공급량이 증가하고 생산유발 효과가 기대된다”고 밝혔다. 산은은 GM과의 합의를 바탕으로 이날 오전 한국GM 이사회와 오후 임시 주주총회에서 법인 분리에 찬성표를 던졌다. 이 회장은 법인 분리와 관련한 절차가 끝나면 가처분 신청도 취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국GM 노동조합에 대한 고발도 함께 취하될 것으로 보인다.
산은은 한국GM이 생산법인과 R&D법인으로 분리돼도 두 법인에 대한 2대 주주 지위는 유지한다고 설명했다. 앞으로 한국의 R&D법인은 ‘거점’ 역할을 위해 다른 국가의 R&D 물량을 끌어온다. 다만 어느 나라에서 얼만큼의 물량을 끌어오는지에 대해 이 회장은 “말씀드리기 곤란하다. 잘못하면 (해당 국가와) 분쟁이 생길 수 있다”며 답변을 거부했다.
반면 노조는 이날 주총이 열리자 보도자료를 내고 “결론적으로 노동조합은 철저하게 배제된 채 정부와 여당, 산업은행 간 밀실협상이 이뤄진 것”이라고 반발했다. 노조는 또 “기습 주주총회는 대국민 사기극”이라며 “30만 노동자 고용생존권을 지키기 위해 제안했던 한국GM의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한 노사협약체결’에는 묵묵부답으로 일관해오던 정부와 여당, GM자본의 행태를 강력하게 규탄한다”라고 주장했다. 노조는 즉각 중앙쟁의대책위원회 회의를 열고 최후의 수단인 총파업을 포함한 강도 높은 투쟁방안을 마련해 강력하게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지난달 30일 중앙노동위원회는 한국GM 노조가 제기한 2차 쟁의조정신청에 대해 행정지도 결정을 내려 법인분리 결정에 맞서 쟁의권을 확보하려던 시도가 또다시 불발된 상황이다.
/박원희 인턴기자 whatamov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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