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핑몰 가운데 도서관인지 서점인지 쉼터인지 카페인지 경계가 모호한 스타필드 코엑스몰점의 별마당 도서관, 이의 성공에 힘입어 새로 생겨난 스타필드 시티 위례점의 ‘별마당 키즈’, 자연을 담은 쇼핑 놀이터를 추구하는 롯데 프리미엄 아울렛 기흥점, 도서관과 쉼터와 쇼핑과 놀이 및 전시 공간이 복합된 세정의 ‘동춘 175’. 최근 선보인 복합쇼핑몰과 아울렛은 과거 유통업체들이 선보여 온 쇼핑몰의 모습이 아니다.
이 같은 한국 유통업체들이 벤치마킹한 ‘원조 콘셉트 몰’ 의 성지인 힙한 도시 독일의 베를린을 다녀왔다.
베를린을 ‘힙스터들의 도시’로만 봤다면 이는 절반만 맞다. 힙한 감성이 묻어나는 이 도시에서는 유통과 패션의 미래도 엿볼 수 있었다. 베를린에서 인기 있는 쇼핑 시설은 뚜렷한 콘셉트몰로 운영되거나 패션과 음악, 이야기 등이 한데 어우러진 복합문화공간이다.
지난 13일(현지시간) 방문한 부스토어는 베를린에서도 힙한 지역으로 꼽히는 ‘크로이츠베르크(KREUZBERG)’ 지역의 문화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었다. 부스토어의 온라인몰은 국내 소비자들도 즐겨 찾는 직구 사이트로 유명하지만 오프라인 매장만큼은 단순한 쇼핑 공간을 넘어섰다.
이날 부스토어는 오픈 8주년 기념 파티를 열고 입점 브랜드의 디자이너 3명과 베를린에서 활동하는 디제이(DJ)를 초청해 관객들과 대화하는 시간을 가졌다. 오후 9시, 영업시간이 종료된 후 또 다른 문화의 장이 열린 것이다.
베를린을 주제로 진행된 토크쇼에서 한 디자이너는 “베를린은 런던, 뉴욕 등 다른 대도시보다 집세가 저렴해 젊은 디자이너들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라면서 “뮌헨과 같은 남부 도시와 달리 도시 분위기도 개방적이라 다양한 출신의 디자이너들이 몰리고 있다”고 말했다.
사전 신청을 통해 입장한 참가자들은 한 손에 위스키를 든 채 매장 안을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부스토어가 풍기는 분위기를 즐겼다. 부스토어 내부 벽면은 군데군데 뜯겨 나간 노출 콘크리트로 디자인됐으며 피팅룸까지 걸어가는 복도는 런웨이를 연상시켰다.
부스토어는 한꺼번에 많은 상품을 진열하기보다 간격을 넓혀 쇼핑 편의를 제공한다. 입점 브랜드도 다양하다. 나이키, 아디다스 등 스포츠 브랜드와 프라다, 미우미우, 마르니 등 명품 브랜드로 구성되는데 다소 독특한 디자인의 상품들로 선별된다.
책, 잡지 등 읽을거리도 진열됐다. 매장 안쪽에는 ‘컴패니온 커피(COMPANION COFFEE)’라는 카페가 자리해 잠시 쇼핑을 멈추고 커피 한잔과 함께 휴식을 취하기 좋은 구조다.
동베를린에 편집숍 ‘부스토어’가 있다면 2014년 문을 연 ‘비키니 베를린(BIKINI BERLIN)’은 베를린 동물원이 바로 옆에 위치한다는 지리적 이점을 활용해 힙스터들을 끌어 모으고 있었다. 동물원이 보이는 자리에 통유리창과 긴 의자를 설치해 고객들이 동물원 경관을 감상하며 쉴 수 있도록 배려한 것. 현지인은 물론 여행객들도 색다른 위치에서 동물원을 구경하기 위해 이곳을 찾는다.
매장 한가운데는 신진 디자이너의 판로로 활용되는 팝업 스토어가 줄지어 있다. 출입문 근처에는 고객들이 직접 구입 물품을 포장할 수 있는 공간도 마련돼 있다. 비키니 베를린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요소를 곳곳에 배치해 재방문율을 높인다.
국내 편집숍과 플래그십 매장도 복합문화공간으로 변신하는 중이다. 서울대 김난도 교수 역시 내년 소비 키워드 중 하나로 상황에 따른 공간의 탄생이라는 뜻의 ‘카멜레존(Chamelezone)’을 제시한 바 있다. 지난 10월 삼성물산 패션부문이 문을 연 메종 키츠네 가로수길 플래그십에는 파리와 도쿄에 이어 세번째로 카페 키츠네가 들어섰다. 이곳에선 음악 사업도 전개하는 메종 키츠네의 음반도 감상할 수 있다.
1월 말에 오픈하는 나우의 플래그십 스토어도 디자이너와 주민들이 소통하는 플랫폼을 지향한다. 나우를 운영하는 블랙야크 관계자는 “독일 등 유럽 편집샵처럼 살롱 문화를 지향하는 공간으로 꾸밀 것이며 카페도 입점시킬 예정”이라고 말했다.
/베를린=허세민기자 semi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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