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원회가 금융감독원의 내년도 예산안을 확정짓자 금감원 내부에선 반발이 터져나오고 있다. 예산안은 올해 수준으로 유지돼 애초 금감원이 우려했던 대대적 예산 삭감은 피했으나 금감원 직원들의 실질임금은 삭감됐다는 불만이다. 급기야 금감원 노조는 “금융위에 민형사상의 책임을 묻겠다”고 예고했다. 금융당국의 두 수장도 같은 날 금감원 예산안에 대해 극명한 온도 차를 드러내는 등 양 기관의 갈등은 이어질 전망이다.
19일 금융당국에 따르면 최 위원장과 윤 원장은 이날 열린 금융위 정례회의에서 내년 금감원 총예산을 3,556억원으로 편성, 올해 대비 2%(70억원) 삭감했다. 내년 총인건비는 올해보다 0.8% 늘어난 2,121억원, 사업예산은 7% 증가한 292억원이다. 다만 업무추진비 등 경비만 5% 삭감된 764억원으로 편성돼 전체 예산은 줄게 됐지만 전체적으로 내년도 금감원 예산을 올해와 비슷한 수준으로 결론난 셈이다.
당초 금융위는 금감원이 처음 제출한 예산안에 대해 업추비 등 경비를 대폭 깎으라고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더해 최근 금융위가 금감원의 2017년도 경영평가등급으로 방만경영을 했다는 의미의 ‘C등급’을 주면서 압박은 커졌다. 그러나 결과를 까보니 예상보다 높은 수준의 예산이 책정된 것이다.
하지만 금감원은 총인건비가 증가했다지만 실질임금은 오히려 줄었다고 불만을 드러냈다. 0.8% 인상은 직원들의 근속연수 누적(호봉제)에 따른 자연증가분을 포함해서 인건비를 0.8% 인상하는 거니 실질적으로는 임금삭감이라는 것이다. 또 금감원 노조는 이날 성명을 통해 “실제로는 1.5%인 예산 인상률을 2%로 반올림해 (자료에) 표시하는 유치한 행태도 보인다”며 “금융위 (실질임금 삭감 등) 예산갑질에 민형사상의 책임을 물겠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노동법상 불이익하다고 판단되는 임금 삭감은 노조 조합원 과반 동의를 받아야 하는데 이를 어겼으니 노조 차원에서 불법을 교사한 금융위에 법적 책임을 묻겠다는 것이다.
앞서 금융권에선 금융위가 금감원의 내년 예산안을 올해 수준으로 확정짓고 두 기관의 해묵은 갈등이 봉합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왔다. 하지만 금감원이 예산안에 대해 불만과 비판을 제기하자 갈등설은 재점화 됐다. 두 기관은 앞서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감리 결과를 두고 갈등을 빚고, 금융위가 금감원이 주도하는 모든 태스크포스(TF)의 진행상황을 일일이 보고하라고 요구하면서 갈등의 골은 깊어져왔다.
이외에도 금감원 안팎에서는 금융위가 일부러 갈등의 불씨를 남겼다는 지적도 나온다. 금융위가 내년도 예산심의에 포함된 총인건비 인상률에 금감원의 상위직급(1~3급·팀장 이상) 감축 이행상황을 심의대상에 넣지 않고 내년 예산심의로 넘겼기 때문이다. 또 금융위는 앞으로 매년 금감원의 조직 감축 진행상황을 지켜보기로 했다. 금감원은 앞서 상위직급 비중을 현재 43.3%에서 35%까지 줄이는 쇄신안을 내년 예산안에 담았다. 그러나 금융위는 30% 이하로까지 내리라고 요구한 바 있어 이 문제가 내후년 예산안 심사에 또다시 등장할 수 있게 됐다.
한편 금융당국의 두 수장은 같은 날 금감원 예산안 문제에 대해 극명한 온도 차를 드러냈다. 최 위원장은 정례회의에 앞서 기자들과 송년 오찬간담회를 갖고 “예산으로 금감원을 통제한다는 것은 하수”라며 “우리가 하는 일의 상당 부분은 금감원과 함께하는 일들인데 그럴 수 없다”며 갈등설을 부인하는 데 애쓰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윤 원장은 이날 정례회의를 마치고 기자들과 만나 “방만경영이라는 지적에 따라 원에서 많이 개선했는데 이런 점이 감안됐으면 하는 바람이었다”고 아쉬워하며 “직원들의 사기가 저하되지 않도록 잘 추슬러서 업무 지장이 없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손구민기자 kmsoh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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