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털 ‘다음’의 창업자로 ‘벤처 1세대’를 대표하는 이재웅(사진) 쏘카 대표가 ‘공유경제’ 확산을 위해 맡았던 기획재정부 혁신성장본부 민간공동본부장 자리를 약 4개월 만에 내려놓는다.
이 대표는 20일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저를 위촉했던 부총리 및 혁신성장본부 공동본부장이었던 기재부 1차관이 그만뒀고 내부 공무원들도 많은 인사이동이 있을 예정”이라며 “(문재인 정부의) 새로운 경제팀이 다른 사람과 함께 할 수 있도록 이제 민간공동본부장을 그만두겠다”고 밝혔다.
이 대표는 지난 8월 김동연 당시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을 통해 민간공동본부장으로 임명됐다. 당시 혁신성장본부에서 이 대표는 민간 측을 총괄하고 정부 측에서는 고형권 기재부 1차관이 본부장을 맡아 업무를 함께 해왔다. 이 대표는 세종과 서울에서 열리는 혁신성장본부 회의에 ‘무보수’로 참여하며 모빌리티를 비롯해 첨단산업계의 변화 흐름을 현장의 목소리로 전달하는 역할을 맡았다. 이후 김 부총리가 물러나고 홍남기 부총리와 이호승 1차관이 새로 임명된 만큼 원활한 ‘내부 쇄신’을 위해서라도 자신이 사퇴해야겠다는 뜻을 드러낸 것이다.
이 대표는 “(디지털 모빌리티 산업 등) 공유경제는 (문재인 정부의 경제 기조인) ‘소득주도 성장’에도 도움이 되고 사회의 지속 가능성을 높일 수 있는 ‘혁신성장’ 정책인데 그동안 아무런 진전을 만들지 못해 아쉽다”면서 “(택시업계 등) 피해를 보는 분들을 위한 합리적인 대책을 전달하고자 노력했으나 이마저 한 발짝도 못 나갔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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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표가 표면적으로 밝힌 사퇴 사유는 정부 경제팀 교체지만 정치권의 방관과 정부의 소극적인 자세로 모빌리티를 비롯한 공유경제 분야에서 혁신성장의 성과를 내지 못하는 점에 답답함을 느낀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이 대표가 이날 민간공동본부장 사퇴의 뜻을 밝히면서 함께 올린 삽화(사진)에는 한 남성이 마주 앉은 남성에게 영어로 “당신의 제안은 혁신적이지만 받아들일 수 없을 것 같다”면서 “현재의 실패한 절차를 밟는 것이 편하다”고 하는 문구가 적혀 있다. 이는 카풀(출퇴근 승용차 함께 타기) 등 새로운 모빌리티 서비스 출시와 관련해 정부와 정치권이 택시업계의 반대와 현행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오락가락하는 태도를 비꼰 셈이다. 이 대표는 “여기까지가 능력의 한계인 것 같다”면서 “이제 기업에서 할 일을 하며 공유경제를 통한 지속 가능한 혁신성장의 동력을 만들고 사회를 지속하게 하는 데 보탬이 되도록 하겠다”고 마지막 인사를 했다. 이 대표가 지난 18일 처음 기재부에 사의를 표명했을 때 혁신성장본부는 “더 고민해보자”고 만류했으나 택시업계의 대규모 파업이 진행되는 것을 보며 결심을 굳히고 SNS에 글을 올린 것으로 전해졌다.
기재부가 새 동력을 만들기 위해 영입한 이 대표마저 떠나면서 문재인 정부의 혁신성장 정책에도 또 한번 생채기가 났다. 앞서 카카오의 교통전문 자회사 카카오모빌리티는 6일 자사 카풀 서비스를 출시하려 했으나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원회의 ‘카풀 태스크포스(TF)’에서 일정 연기를 요구하는 의견이 나오며 다음날 시범 서비스만 내놓기도 했다. 당시 정보기술(IT) 업계는 “민간기업의 합법적인 사업을 정치권이 막는 것이 올바른 혁신성장 정책이냐”고 토로하기도 했다. 이후 10일 택시기사 최모씨가 분신 사망하면서 카카오모빌리티는 카풀 서비스 정식출시 일정을 결국 무기한 연기했다.
아울러 이 대표가 이끄는 쏘카와 VCNC가 혁신성장본부의 논의 대상에 포함될 수밖에 없는 기업이라는 점도 본인에게 부담으로 작용했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쏘카는 차량공유(카셰어링) 사업을 진행 중이고 VCNC는 11인승 차량을 택시처럼 호출할 수 있는 ‘타다’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8월 이 대표가 민간공동본부장으로 임명됐을 때 택시업계는 공개적으로 “이해관계자가 참여하는 것에 절대 반대한다”는 성명을 내기도 했다. 정부 고위관계자는 “카풀 등 모빌리티 산업이 뜨거운 사회 쟁점이 된 상황에서 차량공유 업체를 이끄는 이 대표가 혁신성장본부에 계속 있는 게 부담이 컸던 것 같다”고 말했다.
/지민구·김영필기자 mingu@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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